[매경GOLF 편집장 칼럼] 이머시브의 시대, 시험대에 선 LIV 골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페라 <나부코>를 봤습니다. 이날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었습니다. <나부코>의 가장 유명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번 무대는 조금 달랐습니다. 합창단이 촛불을 들고 객석으로 내려와 통로를 가로지르며 노래를 이어갔습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습니다.
요즘 공연예술이 시도하는 ‘이머시브(immersive)’ 방식입니다. ‘몰입하다’란 뜻의 이머시브는 관객을 고정된 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대신 작품 안으로 끌어들여 경험의 일부로 만듭니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역할입니다. 관객이 ‘보는 사람’에서 ‘필요한 존재’로 이동하는 순간, 같은 공연도 전혀 다른 경험이 됩니다.
이 흐름은 미술에서도 뚜렷합니다.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티노 세갈의 전시는 작품과 관람의 경계를 아예 지워버렸습니다. 전시장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 자체가 작품입니다. 관객은 그것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장면을 완성합니다. 작품은 고정된 결과물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들어집니다.
1층 전시장에서는 자전거를 타거나 축구공을 다루는 퍼포머를 마주하게 됩니다. 무대와 관람석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공간에서 공연자와 관람객이 같은 호흡을 공유합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젊은 남녀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바닥을 뒹구는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다소 민망할 수도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침을 삼키는 관객들의 반응조차도, 어쩌면 작품의 일부일 것입니다.
대표적인 몰입형 공연으로는 <슬립노모어>(Sleep No More)가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매일경제신문사 충무로 본사 건물 옆 ‘대한극장’이 이 공연을 위한 몰입형 시어터로 변했습니다. 이 공연에서 관람객은 객석에 앉아 있지 않습니다. 배우를 따라 공간을 이동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경험합니다. 같은 공연을 보더라도 누구도 동일한 서사를 갖지 않습니다. 관객의 선택과 이동이 곧 이야기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골프에서도 변화는 감지됩니다.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LIV 골프는 선수와 관객의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돋보였습니다. 음악과 DJ, 지드래곤 콘서트 등 이벤트를 결합해 골프장을 하나의 축제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단순 관람이라기보다 ‘경험’에 가까운 방식으로 재구성된 셈입니다. 특히 모든 조가 동시에 출발하는 ‘샷건 스타트’는 각 홀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가 동시에 전개되는 구조를 만듭니다. 한 경기 안에서 여러 개의 서사가 병렬적으로 진행되는 셈입니다. 이런 구조는 겉으로 보면 <슬립노모어>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차이가 드러납니다. <슬립노모어>에서 관객은 이동하고 선택하며 자신만의 서사를 구성합니다. 반면 LIV 골프에서 관객은 여전히 경기를 따라다니는 관찰자에 머뭅니다. 공간은 열려 있지만 역할은 제한돼 있습니다. 이머시브의 외형은 갖췄지만 핵심은 비어 있는 셈입니다. 결국 형식은 바뀌었지만, 관객의 자리는 그대로였습니다.
물론 스포츠와 공연은 목적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변화는 하나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관객을 단순한 관람자가 아니라 경험의 일부로 끌어들이려는 시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LIV 골프가 기대만큼의 흥행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한 마케팅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관객 경험의 구조 자체가 충분히 전환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관객 경험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LIV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LIV 골프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습니다. 오는 5월 28일부터 31일까지 부산 아시아드CC에서 열리는 올해 LIV 골프 코리아는 LIV 골프의 또 다른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이머시브의 시대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다만 형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객이 여전히 ‘보는 사람’에 머무는 한, 새로운 경험은 기존의 관람 방식을 반복하는 데 그칠 뿐입니다. 관객이 이야기 안에서 ‘필요한 존재’가 될 때, 비로소 변화는 완성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