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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쾌활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일과 가정, 골프와 즐거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올리비아를 만나 골프에 대한 에피소드를 나눴다.



올리비아는 방송인이자 교육인, 아이 셋의 워킹맘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한국에 정착한 그는 현재 국립외교원 소속 프랑스어 강사로 외교관 후보자들을 양성한다. 프랑스어, 영어, 한국어에 능통해 굵직한 국제행사의 진행을 도맡는가 하면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의 패널로 출연해 대중을 만난다. <요즘 육아, 금쪽 같은 내 새끼>에서 똑소리 나는 프랑스 육아법으로 오은영 박사에게 인정받은 자타 공인 ‘슈퍼맘’이기도 하다.

올리비아는 인스타그램에 ‘골프’ 하이라이트를 따로 모아둘 정도로 소문난 골프 마니아다. 출산과 육아로 골프를 6년간 쉬었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스윙 실력을 과시한다.

골프를 어렸을 때부터 쳤다고 들었다. 여섯 살 때 어머니가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문화정책관으로 일하셨다. 덕분에 미군부대 출입이 가능했는데 주말이면 부대에 들어가 가족들과 미니골프를 쳤다. 잘 안 보이지만 이마에 흉터도 그때 생긴 거다. 땅에 엎드려 퍼팅 라인을 보다가 오빠가 들어올린 퍼터에 정통으로 맞았다. 내 골프 인생 첫 상처였다. 골프와 그리 좋은 인연은 아닌 셈인가.(웃음)

열 살 때 프랑스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골프를 쳤다. 당시 골프장 멤버십 가격이 1년에 2000유로 정도였다. 아버지가 회원이면 자녀는 이용이 무료다. 거기다 소속 주니어팀에 들어가면 클럽에서 골프 수업을 지원해줬다. 10대절 거의 주니어 선수급으로 훈련을 한 거다.

팀으로 골프를 즐기다니 색다르다. 겨울마다 파리 전역에서 윈터 골프대회가 열리곤 했다. 지역별로 여자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였다. 나는 열두 살부터 시합에 나갔다. 골프를 개인 종목이 아닌 팀 스포츠로 시작했다. 아마 혼자 쳤으면 이만큼 흥미를 못 느꼈을지도. 영하의 날씨인데도 어려서 그런지 추운 줄도 몰랐다. 이때 경험으로 정신력이 강해졌다. 이기든 지든 팀원이 날 서포트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페어플레이 정신도 배웠다. 너무 소중한 추억이다.

또래끼리 골프를 치며 배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 150m를 쳐야지 하면 보폭으로 거리를 쟀다. 아이들끼리 서로 캐디가 되어 점수 계산해주고, 라이도 봐주고. 골프 치면서 수학 실력이 늘었다. 골프백 안에 늘 노트를 넣어 갖고 다녔는데 점수 계산, 내 스윙 분석, 그런 것들을 깨알같이 기록했다. 처음 가보는 골프장에서 경기가 잡히면 미리 가서 코스를 연구하곤 했다. 코스와 지형은 어떤지 공략법 등등… 프랑스 집에 아직 그 노트들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지난 파리올림픽이 열렸던 르 골프 나시오날 골프장 메모도 있나. 물론. 르 골프 나시오날은 굉장히 난이도가 있는 골프장이다. 특히 16, 17, 18홀이 죽음이다. 곳곳에 해저드와 솟은 그린… 코스가 워낙 까다로워서 까딱하단 이 세 홀에서 타수가 더블로 늘어날 수 있다. 직접 경험해본 코스여서 올림픽 경기가 더 흥미진진하게 와닿았다.



프랑스 골프장은 한국과 어떤 점이 다른가. 프랑스 골프장들은 해저드가 많고 좁다. 자연과 주변 환경을 그대로 살려 코스 중간중간 성이나 빌라가 있는 곳도 많다. 처음 가본 사람들은 ‘이거 OB 나면 옆집으로 날아가는 거 아니야’ 한다.

골프 치러 가면 그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함께 하는 기분이다. 경기를 하다 사과나무가 있으면 하나 따 먹고, 디봇이 나면 파인 곳 정리하고, 연못에 공이 빠지면 뜰채로 건져 올리고. 그런 게 재미있었다. 골프장 이용도 훨씬 자유롭다. 골프 가방 둘러매고 가서 세 홀이나 다섯 홀만 돌고 와도 된다.

한국에 왔을 때 골프문화가 여러모로 낯설게 느껴졌겠다. 어려운 코스들을 많이 가봤기 때문에 나에겐 평탄한 한국 골프장이 쉽게 느껴지더라. 비거리가 210m 정도인데 레드티에서 치면 남은 치핑 거리가 얼마 안 된다. 도전적인 재미를 위해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화이트티에서 치고 있다. 처음엔 카트도 잘 안 탔었다. 걷는 게 좋아서. 겨울 라운드에선 웜업하려고 세 홀은 뛰어다녔다. 지금은 나만 카트 안 타는 게 이상한 것 같아 그냥 탄다. 이동하며 함께 얘기하는 즐거움도 있으니까. 한국 골프장 문화에 많이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평소 플레이 스타일은 어떤가. 도전적이다. 공격적인 플레이를 즐긴다. 예를 들어 해저드가 앞에 있으면 거리가 애매해도 일단 똑바로 치고 본다. 우회하지 않는다. 해보지 않고는 모른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공이 넘어가면 나 할 수 있네, 자신감이 붙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라운드는 자주 나가나. 최근 세 달 동안 네 번 정도 나갔다. 아이 셋을 케어하는 워킹맘으로 사실 골프를 자주 치긴 힘들다. 하루 종일 시간을 할애해야 해서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배우로 활동하는 남편은 골프를 안 치지만 골프 라운드 시간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이해해준다. 매일 도시에서 운전하고 출퇴근하는데 언제 그런 힐링 타임을 갖겠나.

골프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지금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주니어 때, 실력이 제일 센 여자애랑 결승에서 붙게 됐다. 두 홀을 남겨둔 상황에서 내 공이 그만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나무 사이 좁은 틈을 뚫고 탈출해야 했는데, 그때 멀리서 아버지가 망원경으로 날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칩샷을 날렸을 때 날아간 공이 나뭇잎을 헤치던 ‘샥샥’ 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날 난 마지막 홀 퍼팅을 놓쳐 결국 졌다. 종종 생각한다. 그때 그 퍼팅만 성공했더라면 이겼을까. 중요한 건 내가 온 힘을 다해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런 끈기와 지구력을 골프에서 배웠다. 나이가 들고 나서야 골프를 통해 큰 교훈을 얻었다는 걸 깨닫는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면 가족과 자주 라운드를 하던데. 아버지가 테니스 선수였는데 골프를 무척 좋아하신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골프를 정말 자주 쳤다. 자연에서 오래 함께 있으면 마음이 열리고 하기 힘든 얘기도 털어놓게 된다. 아버지는 골프를 통해 대화하는 법을 아셨던 것 같다. 골프를 치면 가족이 화목해진다.

새해 목표가 있나. 베스트 스코어 갱신이라든지. 한 달에 한 번은 꼭 라운드 나가고 싶다. 한국에서 베스트 스코어는 74타다. ‘라베’는 열여덟 살 때 기록한 2언더. 신기하게도 홀인원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골프와 인생의 공통점은 뭘까. 골프도 삶도 목표를 향해 간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매일 1mm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오늘은 좀 안 돼도 내일은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런 자신감이 필요하다. 작은 성취감을 쌓고 이뤄 나가는 게 골프와 삶의 행복 아닐까.



이은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

본기사는 매일경제신문 매경GOLF 265호

[2025년 1월호 기사]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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