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URE
골프웨어의 백화점 자리 전쟁
2024.10.16
백화점 골프 조닝에서 치열한 위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백화점 골프 매장에 가면 골프웨어 트렌드가 한눈에 읽힌다. 새롭게 메인 자리를 꿰찬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그새 크기가 축소되거나 구석으로 밀린 브랜드도 있다. 팝업 등 이벤트를 통해 몰랐던 신생 브랜드를 발견하기도 한다. 여느 때처럼 시장조사차 백화점을 누비던 중 궁금증이 생겼다. 골프웨어 브랜드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골프 조닝의 매장 위치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백화점 내 골프웨어의 치열한 자리싸움을 들여다봤다.
골프는 중층에 남성 가까이 있다
먼저 백화점에서 골프 카테고리를 찾아가보자. 백화점별, 지점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골프는 중층에 위치한다.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여성 의류와 영 패션을 거쳐 몇 층 올라가야 골프 카테고리가 나온다.
백화점 입장에서 매장의 위치는 매출과 직결된다. 따라서 모든 배치는 구매를 더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도록 유도하고 상하향 에스컬레이터를 층마다 지그재그로 배치해 돌아 올라가게 만든 것도 매장과 상품을 더 많이 둘러보게 하기 위해서다. 백화점 1층에 화장실이 없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하도록 시계와 창문을 두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골프가 중층에 자리하는 건 구매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서울대학교 경영정보연구소의 연구 <백화점 매장의 효율적 배치>에 따르면 남녀에 따라 구매 프로세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은 분명한 구매 목적을 가지고 매장으로 직행하는 반면 여성은 층마다 매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구하려는 경향이 크다. 저층부에 여성 의류가 그 위에 남성 의류가 위치하는 이유다.
와이셔츠를 구매한 남성이 골프 티셔츠를 하나 더 사려고 마음먹었다 가정해보자. 남성 의류에서 몇 개 층을 거쳐 여성 의류나 란제리 옆에 골프 매장이 위치한다면 구매 욕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성 의류와 골프, 스포츠는 배치 연관도가 높은 매장군이다.
실제 주요 백화점의 층별 카테고리를 보면 골프와 남성 의류가 같은 층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 앞 ‘명당’을 노린다
이제 백화점 골프 조닝에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바로 보이는 매장이 있을 것이다. 소위 ‘명당’으로 꼽히는 자리다.
백화점 유통 관계자에게 매장 선정 기준을 물었다. “에스컬레이터 앞자리 싸움은 정말 치열하다. 매출과 마진율, 백화점의 지향점에 따라 기 준이 달라지는데 바이어 입장에선 브랜드와의 관계도 얽혀 있다 보니 선정 기준을 말하기 쉽지 않다. 민감한 부분이다.”
에스컬레이터 앞은 고객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을 수 있는 자리다. 브랜드는 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백화점은 본사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한 골프웨어 브랜드 관계자는 결국 ‘매출’에 달렸다고 말한다. “백화점은 부동산 임대업으로 봐야 한다. 좋은 자리를 주면 매출이 올라가니 매출이 높은 브랜드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이 외 브랜드의 입장에서 선호하는 자리는 어딜까. 골프웨어 콘셉트와 타깃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전면 벽 쪽을 선호한다. 벽면 인숍 매장은 벽면이 있어 매장 디스플레이가 용이하고 매출이 잘 나온다. 일반적인 독립 매장처럼 안정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일랜드’ 매장은 벽면이 아닌 중앙에 섬처럼 자리한 매장을 뜻한다. 옆 브랜드와 가벽 또는 벽이 없이 붙어 있어 집기나 인테리어 시 고려 사항이 생긴다. 하지만 아일랜드 매장도 자리 나름이다. 고객이 지나다니는 주 동선상에 있다면 오히려 눈에 잘 띈다. 보통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우측으로 돌기 때문에 상향 엘리베이터 기준 오른쪽에 위치하면 좀 더 유리할 수 있다.
골프웨어 매장 판도를 좌우하는 것들
백화점 유통 관계자는 “골프웨어 매장 위치를 결정하는 조건이 매출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동일 매출을 올리는 두 브랜드가 있다고 치자. 백화점은 둘 중 어느 쪽에 더 좋은 자리를 내줄까.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할 수 있다. 브랜드의 전통과 역사, 고객의 니즈와 트렌드, 백화점의 기조 등이 다양하게 얽힌다. 같은 백화점이라도 지점 방향성에 따라 선정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동일 매출의 유행 브랜드라 할지라도 럭셔리를 지향하는 지점은 하이엔드 골프웨어를, 대중성을 추구하는 지점은 스타일리시한 퍼포먼스 골프웨어를 택할 수 있다. 골프 정통성을 중요시해 브랜드가 가진 골프 DNA 정도를 따지는 바이어도 있다.
입점도 마찬가지다. 골프웨어 브랜드 관계자는 “신규 브랜드가 백화점에 입점할 때 자사 기존 브랜드의 후광 효과를 보기도 한다”며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한 기업 파워가 기대 효과를 주는 것”이라 말했다. 타 백화점의 매출이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백화점 업계에서 서로 간의 매출 성적표가 공유되기 때문이다.
백화점 골프 조닝의 자리싸움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치열하다. 백화점을 방문하면 미묘하게 달라지는 골프웨어 지형도를 눈여겨보자. 브랜드 간 격전의 결과가 매장에 드러나 있다.
이은정 기자
본기사는 매일경제신문 매경GOLF 262호
[2024년 10월호 기사] 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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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골프 매장에 가면 골프웨어 트렌드가 한눈에 읽힌다. 새롭게 메인 자리를 꿰찬 브랜드가 있는가 하면 그새 크기가 축소되거나 구석으로 밀린 브랜드도 있다. 팝업 등 이벤트를 통해 몰랐던 신생 브랜드를 발견하기도 한다. 여느 때처럼 시장조사차 백화점을 누비던 중 궁금증이 생겼다. 골프웨어 브랜드마다 좋은 자리를 선점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그렇다면 골프 조닝의 매장 위치는 어떻게 정해지는 걸까. 백화점 내 골프웨어의 치열한 자리싸움을 들여다봤다.
에디터가 방문한 서울의 한 백화점 골프웨어 조닝
골프는 중층에 남성 가까이 있다
먼저 백화점에서 골프 카테고리를 찾아가보자. 백화점별, 지점별로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골프는 중층에 위치한다.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여성 의류와 영 패션을 거쳐 몇 층 올라가야 골프 카테고리가 나온다.
백화점 입장에서 매장의 위치는 매출과 직결된다. 따라서 모든 배치는 구매를 더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도록 유도하고 상하향 에스컬레이터를 층마다 지그재그로 배치해 돌아 올라가게 만든 것도 매장과 상품을 더 많이 둘러보게 하기 위해서다. 백화점 1층에 화장실이 없는 것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하도록 시계와 창문을 두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골프가 중층에 자리하는 건 구매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서울대학교 경영정보연구소의 연구 <백화점 매장의 효율적 배치>에 따르면 남녀에 따라 구매 프로세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은 분명한 구매 목적을 가지고 매장으로 직행하는 반면 여성은 층마다 매장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구하려는 경향이 크다. 저층부에 여성 의류가 그 위에 남성 의류가 위치하는 이유다.
와이셔츠를 구매한 남성이 골프 티셔츠를 하나 더 사려고 마음먹었다 가정해보자. 남성 의류에서 몇 개 층을 거쳐 여성 의류나 란제리 옆에 골프 매장이 위치한다면 구매 욕구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성 의류와 골프, 스포츠는 배치 연관도가 높은 매장군이다.
실제 주요 백화점의 층별 카테고리를 보면 골프와 남성 의류가 같은 층에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 앞 ‘명당’을 노린다
이제 백화점 골프 조닝에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바로 보이는 매장이 있을 것이다. 소위 ‘명당’으로 꼽히는 자리다.
백화점 유통 관계자에게 매장 선정 기준을 물었다. “에스컬레이터 앞자리 싸움은 정말 치열하다. 매출과 마진율, 백화점의 지향점에 따라 기 준이 달라지는데 바이어 입장에선 브랜드와의 관계도 얽혀 있다 보니 선정 기준을 말하기 쉽지 않다. 민감한 부분이다.”
에스컬레이터 앞은 고객에게 눈도장을 확실히 찍을 수 있는 자리다. 브랜드는 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백화점은 본사가 추구하는 이미지를 전달한다.
한 골프웨어 브랜드 관계자는 결국 ‘매출’에 달렸다고 말한다. “백화점은 부동산 임대업으로 봐야 한다. 좋은 자리를 주면 매출이 올라가니 매출이 높은 브랜드에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이 외 브랜드의 입장에서 선호하는 자리는 어딜까. 골프웨어 콘셉트와 타깃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전면 벽 쪽을 선호한다. 벽면 인숍 매장은 벽면이 있어 매장 디스플레이가 용이하고 매출이 잘 나온다. 일반적인 독립 매장처럼 안정적인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아일랜드’ 매장은 벽면이 아닌 중앙에 섬처럼 자리한 매장을 뜻한다. 옆 브랜드와 가벽 또는 벽이 없이 붙어 있어 집기나 인테리어 시 고려 사항이 생긴다. 하지만 아일랜드 매장도 자리 나름이다. 고객이 지나다니는 주 동선상에 있다면 오히려 눈에 잘 띈다. 보통 사람들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 우측으로 돌기 때문에 상향 엘리베이터 기준 오른쪽에 위치하면 좀 더 유리할 수 있다.
골프웨어 매장 판도를 좌우하는 것들
백화점 유통 관계자는 “골프웨어 매장 위치를 결정하는 조건이 매출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동일 매출을 올리는 두 브랜드가 있다고 치자. 백화점은 둘 중 어느 쪽에 더 좋은 자리를 내줄까.
여러가지 요소가 작용할 수 있다. 브랜드의 전통과 역사, 고객의 니즈와 트렌드, 백화점의 기조 등이 다양하게 얽힌다. 같은 백화점이라도 지점 방향성에 따라 선정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동일 매출의 유행 브랜드라 할지라도 럭셔리를 지향하는 지점은 하이엔드 골프웨어를, 대중성을 추구하는 지점은 스타일리시한 퍼포먼스 골프웨어를 택할 수 있다. 골프 정통성을 중요시해 브랜드가 가진 골프 DNA 정도를 따지는 바이어도 있다.
입점도 마찬가지다. 골프웨어 브랜드 관계자는 “신규 브랜드가 백화점에 입점할 때 자사 기존 브랜드의 후광 효과를 보기도 한다”며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한 기업 파워가 기대 효과를 주는 것”이라 말했다. 타 백화점의 매출이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다. 백화점 업계에서 서로 간의 매출 성적표가 공유되기 때문이다.
백화점 골프 조닝의 자리싸움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치열하다. 백화점을 방문하면 미묘하게 달라지는 골프웨어 지형도를 눈여겨보자. 브랜드 간 격전의 결과가 매장에 드러나 있다.
이은정 기자
본기사는 매일경제신문 매경GOLF 2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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