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업 X 르 코르뷔지에, 연희정음에서 다시 피어난 두 거장의 대화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김중업과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 이들의 교감을 조명한 전시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이 김중업의 숨결이 깃든 연희정음에서 열린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17-3. 오래된 벽돌 주택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김중업이 1984년 설계한 장석웅 주택, 그 말년의 작업이 40여 년의 세월을 건너 2025년 ‘연희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연희정음은 개관전으로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을 열었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전시는 김중업과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의 운명적 만남을 오늘의 감각으로 되살린다.
전시장이자 작품으로 기능하는 연희정음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은 쿠움파트너스와 사티가 공동 주관하고 윤태훈(사티)과 마리암 스와르크(갤러리 이미지네어 다르키텍튀르)가 기획했다. 전시는 연희정음과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동시에 펼쳐지는데, 주한프랑스대사관 전시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기에 일반 관람은 연희정음에서만 가능하다.
연희정음은 건축이 머무는 플랫폼이자 삶과 예술이 교차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전시가 열리는 이곳은 전시장이자 김중업의 작품 그 자체다. 건물 중심을 관통하는 원형 계단, 2층의 반원형 거실, 입구의 곡선적 볼륨. 연희정음에는 김중업이 말년에 천착했던 ‘원(圓)’이 집약되어 있다. “핵가족 시대에도 함께 모여 둘러앉는 장면을 상상했다”라는 김중업의 말처럼 연희정음은 가족이 둥글게 모였다 흩어지는 삶의 리듬을 형상화한다.
김중업이 직접 설계한 저택 안에서 그의 세계와 코르뷔지에의 세계가 다시 마주하는 장면을 목도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관람객은 원형 계단을 따라 이동하며 전시장 자체가 하나의 건축작품임을 체감할 수 있다.
사라져가는 건축을 동시대 사진과 가구로 되살려
전시는 1952년 베네치아 국제예술가회의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곳에서 젊은 건축가 김중업은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 그의 파리 아틀리에에 입문했고 1955년까지 근대건축의 원리를 체득했다. 이후 김중업은 본인만의 한국적 미감과 구조 감각을 결합해 독자적인 건축 언어를 구축한다. 그 결정체가 바로 1962년 완공된 주한프랑스대사관이다. 프랑스의 합리성과 한국 전통의 공간성이 교차하는 이 건축은 두 거장의 사유가 실체를 얻은 상징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대화: 두 건축가의 운명적 만남>은 스승과 제자였던 두 건축가의 교감을 동시대 작가 세 명의 작업을 통해 조명한다.
건축사진가 김용관은 시간 속에 퇴적된 김중업의 작품들을 포착했다. 그의 작업들은 언젠가는 사라질지 모를 건축이 시간을 건너 살아남는 방식을 보여준다. 전시의 백미 중 하나는 1968년 준공 이후 한 번도 일반에 공개된 적 없던 ‘진해 해군공관’이다. 김용관의 렌즈를 통해 공개된 이곳에는 김중업이 추구했던 공간의 정신성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특히 천장에서 빛과 구름을 끌어내는 천공 디테일은 김중업이 추구했던 건축의 시적 언어를 고스란히 전한다.
프랑스 사진가 마누엘 부고는 김중업이 설계 도면 작업에 참여한 찬디가르 대법원 등 르 코르뷔지에의 인도 작업을 기록한 사진으로 두 건축가의 접점을 담았다. 영화 <기생충>의 가구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디자이너 박종선은 사진과 공간 사이를 매개하는 가구를 선보이며 전시를 단순히 보는 행위가 아닌 앉고 머무는 경험으로 전환시킨다.
보는 것을 넘어 건축을 체험할 수 있는 본 전시는 2026년 2월까지 연희정음에서 이어진다.
이은정 매경GOLF 기자 (lee.eunjung@m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