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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상원 “골프 인생 40년, 나의 첫 프로암은 매경오픈”

  • 정정혜 기자
  • 입력 : 2026.01.08 09:52
  • 수정 : 2026.01.08 15:00

배우 박상원은 ‘환갑’을 ‘세 번째 스무살’이라 말했다. 어느 덧 네 번째 성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그에게서 필 미켈슨이 겹쳐 보였다.

사진설명

“박상원과 엄홍길과 함께 하는 도봉산 투어 티켓은 1장에 100만 원입니다.” 며칠 전 국립암센터 후원회장으로 경매에 참여해 암환자를 위한 기금 마련한 것을 상기된 얼굴로 숨 가쁘게 이야기하는 대한민국 대배우 박상원은 현재 서울 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의 역할은 시민들이 예술을 즐기기 좋은 또는 예술가가 예술하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입니다. 또 천만장학회 이사장은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좀 더 확장성 있게 그들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것이고요. 국립암센터 후원회장은 암이라는 재난 재앙에 가까운 것을 치유하고 예방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 월드비전이나 다일공동체 이사장은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 강남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은 구민과 시민과 대한민국 국민 들이 요즘 전 세계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문화선진형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좀 더 풍성하고 좀 더 글로벌한 상식으로 전 세계인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대배우 박상원은 대중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갚으려고 여러 사회 봉사 명예직을 맡았는데 오히려 갚아야 할 빚이 커져가고 있다며 본인이 맡은 일들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관록 있는 교수님이며 연기자인 진짜 박상원을 만난 것은 몇 년 전 1인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연습 중이었던 남산극장에서다. 그의 연기 몸짓 눈빛 하나하나가 마치 깊은 바닷속처럼 그에게 빠져들게 했던 기억이다. 그런 그를 만나 골프 이야기를 청했다.

2025년 우간다에서.
2025년 우간다에서.

골프는 언제부터 치기 시작하셨나요. 제가 40년 골프를 쳤습니다. 아주 오래 쳤고, 엄청난 장타거든요. 예전에 비해서는 당연히 거리가 많이 줄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젊은 친구들보다 훨씬 더 나갑니다. 그래서 골프 대회 나가면 롱기스트홀에 항상 힘이 많이 들어갑니다.

실제로 롱기스트는 많이 못했습니다(웃음). 힘이 들어가면 거리는 많이 나가도 페어웨이 안착률이 낮은 법이니까요. 제가 체격이 아주 좋은 편도 아니고 골프를 자주 나가는 편도 아닌데, 왜 거리가 많이 날까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현대무용, 발레, 한국무용 등 배우로서 다양한 트레이닝을 많이 해서 그런지 유연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연기자들은 항상 카피하고 모방하는 본능적인 능력이 있거든요. 슨을 받거나 골프 방송을 즐겨 보지는 못하지만 깔끔하게 잘 치는 듯 멋진 스윙을 연기해냅니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루틴이 되면서 장타가 나오는 거 아닌가 생각해요.

저는 특히 기본적으로 룰과 자존심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필드에 나가는 되는 경우, 딱 하나 양해는 구합니다. “멀리건은 그냥 주세요. 저는 오늘 하루 피크닉 나온 사람입니다”라고요. 멀리건이 양해되면 어떤 게임이든지 재밌게 즐깁니다. 골프라는 것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돈을 쓰러 오는 시간이다 하고 언제나 소풍 나온 것으로 생각하면서 골프를 칩니다.

저는 질투심도 많은 편인데 골프장에서는 질투 안 합니다. ‘당신은 골프를 많이 치고 자주 나오니까 잘 치는 거 당연하고, 나는 잘 안 나오니까 이 정도 치면 잘 치는 거다, 내가 당신만큼 골프장에 자주 나온다면 과연 나와 내기가 될까’ 하는 숨은 자신감도 있습니다(웃음).

무슨 운동을 제일 좋아하시고 잘하세요? 저는 뭐 다 하죠. 하늘서부터 땅속, 물속까지 다요. 딱히 어떤 한 가지에 빠지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그냥 저라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운동이고 무용이고 다양한 재주들을 가져다 붙입니다. 철인 3종도 하고 수영도 하고 승마도 하고 패러글라이딩도 하는데 무엇 하나에만 엄청나게 시간을 들여서 완전히 올인했던 적은 없습니다. 그거는 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연기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다 해봐야 되고 다 익혀야되고 다 할 줄 알아야 되니까요.

재미있는 골프 에피소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의 첫번째 프로암은 매경오픈에서 김종덕 프로, 당시 레이크사이드CC 윤맹철 대표님과 같은 조에서 쳤습니다. 협회장 하셨던 강춘자 프로, 최경주 프로, 최나연 프로 등 좋은 분들과 함께 라운드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여자 프로 선수들이 저랑 한팀으로 골프 라운드 하게 되면 그 다음부터 훨훨 납니다. 삼천리 프로암에서 박성현 프로도 그랬고, 전인지 프로도 그랬고. 이거는 제가 막 이야기하고 다닙니다(하하). 이번에 오로라CC 프로암에서 삼천리 소속 신인 프로선수 한 명이 저랑 같이 운동했는데 그 친구한테도 그랬어요. 이제 잘될 것이라고, 훨훨 날 일만 남았다고.

사진설명

‘박상원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요. 가장 최근에 <화이트래빗 레드레빗>이라는 이란 작가 나심 술리만푸르의 실험적인 작품을 했습니다. 대본이 없는 1인극으로, 참여하는 배우들은 다른 배우들의 공연을 봐서도 안 되고, 사전 대본 없이 무대 위에서 대본을 처음 받아 오직 배우와 관객 사이의 즉흥성으로 무대를 이끌어가게 됩니다. 박정자 선생님이 첫 공연을 하시고 제가 마지막 공연을 했습니다. ‘이머시브’라고 할 수도 있는 70분 정도의 즉흥 공연인데, 제가 공연 마치고 들어오니 제작자가 “선생님 기록입니다. 3시간 5분 최장시간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전 세계적으로 2000여 명의 배우들이 참여한 공연인데 제가 최장으로 3시간 5분을 쉬지 않고 공연을 한겁니다.

그리고 역시 <콘트라바쓰>. 제 인생 최초의 모노드라마였습니다. 1977년생 <약장수>라는 오태석 선생님의 공연을 보면서 ‘배우가 1시간 반 이상 저걸 다 외워서 한다고? 가능한가?’ 했던 의문을 제가 몸소 무대에서 시연해낸 하나의 역사적이고 두렵고 짜릿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모든 작품이 저에게는 의미가 있습니다. 똑같이 최선을 다하거든요. 연극을 할 때는 스스로 200일 금주, 100일 금주 같은 생활규칙도 만들어요. 연극 작업은 저에게 또 하나의 제례 의식 같은 겁니다.

1988년 드라마 <인간시장>의 장총찬이 대중들에게 박상원이라는 한 연기자를 알렸다고 하면, <여명의 눈동자>의 장하림은 그걸 좀 더 각인시켰다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또 <모래시계>의 강우석은 진정한 연기자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사실 저는 히트 치지 않았던 작품들이 더 기억에 남습니다. 왜냐면 항상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인간시장>이라는 드라마는 저에게 그 반대 급부의 어떤 영향력을 충분하게 선물 해준 셈이고. 히트 치지 못한 작품들도 전똑같이 했거든요. 근데 그 작품이 대중들에게 평가를 못 받았으니까 굉장히 아쉬운 점이 있죠. 오히려 묻혀버린 작품들이.

학교에서 오랜 기간 동안 후학 양성을 하셨는데 연기와 강의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이신가요. 1998년부터 27년간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작년에 정년 퇴임했습니다. 최근 열심히 활동하는 박서준, 진주, 금새록, 설인아, 정유민이 다 제자들이죠. 강의와 연기는 완전히 다른 근육이라서 둘 다 그 맛이 있습니다. 제가 3시간 5분 <화이트래빗 레드 래빗> 세계 최장 시간 공연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27년 동안 강의를 했던 구력이 크게 발휘되었을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그날 그런 수업을 한다는 느낌으로 한 부분이 꽤 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3시간 5분이라는 공연 시간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27년 동안 모노드라마를 한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4시간짜리 수업도 저는 휴식 없이 합니다.

사회봉사활동에 대한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월드비전의 친선대사, 다일공동체의 홍보대사를 1993년부터 했습니다. 이 팔찌가 월드비전에서 이름까지 새겨서 만들어준 거예요. 아프리카 지도에 제가 다녔던 지역마다 핀을 꽂아 놓았습니다. 콜롬비아, 아르메니아, 대지진 났던 엘살바도로, 몽골, 인도 쓰나미, 이란 밤 지진, 동티모르 내전기아체험 등 전 세계를 다녔죠. 최일도 목사님이 하시는 다일공동체와 코이카 등 제가 워낙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서 그걸 갚기 위해 채무를 좀 청산하려고 봉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빚이 더 생기더라고요. 제가 연기자로서 지금까지 왔던 것보다 봉사활동을 한 것이 오히려 저의 인생을 훨씬 더 풍성하고 은혜롭게 해준 것 같아요. 제가 얼마 전 SBS <희망TV> 생방송에서 MC를 했어요. 그러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나라도 백발의 할아버지가 젊은 친구들과 더블 아니 트리플로 MC 보는 사회가 되었다.” 저처럼 30년 동안 또는 그 이상 봉사하며 멋지게 할아버지가 되신 분들과 젊은 스타들과 공동 사회를 보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밤 늦게까지 방송을 진행하니 고되지만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합니다.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도 굉장히 보람 있고 기억에 남는 시간을 많이 보내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한 봉사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 퇴임을 했는데, 저는 ‘환갑’이라는 말은 너무 진부해서 이렇게 부릅니다. 세 번째 스무 살이라고요. 첫 번째 성년은 몸이 성장하여 하나의 개체로 성년이 된 것이고, 두 번째 성년은 제 경우로 보면 대학 때 선택한 이 전공을 20년 동안 숙성시키기 위해 도전한 시기이고, 세 번째 성년은 그 업을 완성시키는 챌린징 과정, 그게 60세라고 봤죠.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그 범주에 들어가겠지요. 요즘은 세 번째 성년에서 네 번째 성년으로의 과정인데, 이 과정은 나의 모든 지적인 능력들, 갖고 있는 철학, 생각 들을 사회와 후배에게 환원하는 것입니다. 정책이나 행정도 하나의 환원이 되겠죠. 80세는 네 번째 성년인 셈인데 지금까지의 모든 것을 집약해 사회적으로 국가 연극, 무용, 예술 분야에 덕업일치를 이루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 하고 싶으신 일이 있다면. 서울문화재단은 시민들이 예술을 즐기기 좋은 도시 또는 예술가가 예술하기 좋은 도시로서, 천만장학재단은 꿈을 꾸는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으로 그들의 꿈을 확장성 있게 펼칠 수 있도록 합니다.

또 국립암센터에서는 암 치유의 과정과 예방의 과정들을 수행하도록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월드비전이나 다일공동체를 통해서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이들이 좀 더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천만장학회는 문화재단으로 변모해 전 세계에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젊은 예술가들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저의 어릴 적 장래 희망은 화가였습니다. 저에게 다섯 번째 성년의 기회가 온다면 그리고 건강만 허락한다면 그때는 철저히 개인 박상원에게 집중하여 집에서 그림만 그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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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필 미켈슨이 떠오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오른 손잡이지만 골프만 왼손으로 하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또 특히 30, 40야드 쇼트게임에 능하다. 필 미켈슨은 많은 후배들이 추종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창의적이고 공격적인 플레이를 즐긴다. 장학재단을 만들어 꿈을 좇는 이들에게 기회도 주고 있다. 필 미켈슨은 이야기한다.

“골프의 목적은 단순히 이기는 것이 아니라 신사답게 플레이하며 승리하는 것이다(The object of golf is not just to win. It is to play like a gentleman, and win).” 박상원이라는 배우가 있어 대한민국은 참 깊고도 풍요롭다. 감사한 일이다.

[writer]

현재 국가유산디지털보존협회 부회장. 기획자,  프로듀서, 마케터 등으로 문화예술계 다방면에서 일했다.  베스트 스코어 2 오버 기록을 가진 골프 마니아로 골프와 사랑에  빠진 예술인들의 활동과 에피소드를 연재한다.
현재 국가유산디지털보존협회 부회장. 기획자, 프로듀서, 마케터 등으로 문화예술계 다방면에서 일했다. 베스트 스코어 2 오버 기록을 가진 골프 마니아로 골프와 사랑에 빠진 예술인들의 활동과 에피소드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