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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아나운서의 언어의 스윙] 일파만파·오케이·멀리건 속 숨어 있는 진짜 의미

  • 김미영
  • 입력 : 2026.06.05 16:29
  • 수정 : 2026.06.05 16:57

골프는 냉정한 숫자의 스포츠지만 그 숫자 사이사이에는 사람의 따뜻한 언어가 스며 있다.

사진설명

“오케이! 그 정도면 충분해. 홀컵 다 갔는데 뭐.” “멀리건! 괜찮아 한 번 더 쳐봐.”

정식 경기의 언어는 아니지만 골프장 안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는 이 말들이 난 참 재미있었다. 어떤 스포츠도 기회를 다시 주는 경우는 없다. 축구의 페널티 킥을 보라. 숨막히는 단 한 번의 기회! 볼을 잘못 찼다고 다시 치라고 할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골프는 첫 홀은 몸풀기라며, 모든 사람을 파로 기록하기도 하고 공이 실수로 엉뚱한 곳에 가면 다시 칠 기회를 준다. 홀컵까지 거리가 남아 있어도 기꺼이 오케이를 준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보면, 사실 하나의 말이 숨어 있다. “괜찮아, 다시 해봐.” 승부를 가르는 스포츠에서 어떻게 이렇게 따뜻한 배려의 말이 가능할까?

심판 없는 스포츠에서 동반자는 친구이자 심판이 된다

골프의 독특함은 룰의 구조에서 먼저 드러난다. USGA와 R&A의 골프 규칙 1조를 보면 ‘모든 플레이어는 정직하게 룰을 따르고 스스로 페널티를 적용하며 다른 플레이어를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하고 있다. 이 지점이 골프를 특별하게 만든다.

골프장에는 늘 내 옆에 경기위원이 있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동반자가 그 역할을 함께 맡는다. 따라서 골프에서 동반자는 단순히 같이 걷는 사람이 아니다. 때론 냉정한 심판이 되고 때로는 든든한 응원군이 된다. 이 독특한 구조 안에서 어쩌면 우리가 진짜 배우는 것은 스윙의 기술만이 아닐지 모른다. 상대의 실수를 어떻게 받아줄 것인가. 어디까지 허용하고, 어디부터 지켜야 하는가.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과연 괜찮은 동반자인가. 골프는 라운드 내내 우리에게 이 질문들을 조용히 던진다.

“괜찮아, 다시 해도 돼”라는 말의 힘

멀리건·오케이·일파만파, 이 말들을 다시 들여다보면 사실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이번 한 번으로 당신을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실수했지만, 라운드는 계속됩니다.’ ‘오늘의 즐거움을 첫 실수 하나로 망치지 맙시다.’ 이것이 골프 언어의 매력이다.

골프는 냉정한 숫자의 스포츠지만 그 숫자 사이사이에 사람의 따뜻한 언어들이 채워져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양파를 해도 즐겁고 어떤 날은 버디보다 멀리건 한 번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계의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골프는 혼자 잘 친다고 끝나는 운동이 아니다. 매번 혼자 라운드를 완벽하게 싱글로 하면, 과연 재미있을까? 내가 친 샷을 누군가 응원해 주고 실수했을 때 날아오는 농담 한마디에 깔깔대고, 내 긴장을 누군가가 풀어줄 때 라운드는 훨씬 깊은 기억이 된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좋은 동반자는 어떤 사람일까?

오케이를 많이 주는 사람이 꼭 좋은 동반자는 아니다

얼마 전, 라운드 때의 일이다. 그날 나는 퍼팅을 끝까지 마무리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컨시드를 계속 받으니 자꾸 기회가 없어졌다. “저 연습해 볼게요”라고 말하고 오케이를 받은 뒤 계속 치는 것도 왠지 죄송스러웠다. 그때 동반자 한 분이 그런 마음을 읽으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건 오케이 드려도 될 거리인데, 한번 해보실래요?” “오늘 퍼트 연습 중이시면 쳐보셔도 좋고요.” “편하게 하세요. 저는 들어간 걸로 봅니다.” 그 말이 좋았다. 오케이를 주면서도 도전할 기회를 남겨두는 배려. 좋은 동반자는 실수의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하지만 게임의 의미까지 없애지는 않는다. 골프에는 승부와 배려가 함께 있어야 한다.

배려는 기준을 잃지 않아야 하고, 승부는 사람을 잃지 않아야 한다

첫 홀을 꼭 ‘일파만파’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말을 통해서 우리는 동반자의 기준을 엿볼 수 있다. 첫 홀도 정확히 기록하고 싶은 사람인지, 조금은 편하게 몸을 풀며 시작하고 싶은 사람인지. 컨시드도 마찬가지다. 어디까지를 오케이로 볼 것인지, 어디부터는 직접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그 거리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의 기준을 배운다. 어쩌면 이것이 골프의 또 다른 매력이다. 스코어를 맞추는 재미 너머에 서로의 선을 맞춰가는 재미. 골프는 스코어를 적는 스포츠다. 하지만 동시에 사람의 태도를 읽는 스포츠다.

라운드가 끝난 뒤, 우리는 늘 이렇게 묻는다. “오늘 나는 몇 타를 쳤지?” 거기에 질문을 하나 더 얹어보자. “오늘 나는 좋은 동반자였는가?” 스코어카드에는 기록되지 않지만, 어떤 멀리건과 오케이는 버디보다 오래 남는다.

writer 김미영(아나운서·영 스피치 컨설팅 대표)

JTBC Golf 아나운서 출신으로 KPGA·KLPGA·LPGA 정규투어 현장에서 골프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영 스피치 컨설팅(Young Speech Consulting)’ 대표이며 스피치 및 미디어 인터뷰 코칭, KPGA 투어 프로 입문 교육과 클래스 A 커뮤니케이션 과정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15년 차 골프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골프와 말의 리듬이 만드는 심리의 균형을 탐구한다.
JTBC Golf 아나운서 출신으로 KPGA·KLPGA·LPGA 정규투어 현장에서 골프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영 스피치 컨설팅(Young Speech Consulting)’ 대표이며 스피치 및 미디어 인터뷰 코칭, KPGA 투어 프로 입문 교육과 클래스 A 커뮤니케이션 과정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15년 차 골프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골프와 말의 리듬이 만드는 심리의 균형을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