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정의 와인 이야기] 규칙을 어긴 와인이 새 기준이 되다 - 솔라이아와 그랜지가 바꾼 와인의 역사 -
서울에서 펼쳐진 세계 최고급 와인들의 향연 아영FBC, 이탈리아 ‘슈퍼 투스칸’ 티냐넬로, 솔라이아 금양인터내셔날, 호주 와인의 대명사 ‘펜폴즈’ 그랜지
“인생은 짧다. 최고의 와인을 마셔라.”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최고의 와인은 어디에서 만들어질까. 한때는 모두가 프랑스를 떠올리던 시절이 있었다.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밖에서도 세계 최고의 와인이 만들어졌다.
하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안티노리, 다른 하나는 호주 애들레이드의 펜폴즈였다. 최근 한국에서 아영FBC는 안티노리의 티냐넬로와 솔라이아를, 금양인터내셔날은 그랜지 등 펜폴즈의 대표 와인들을 선보였다. 세계 최고의 와인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이탈리아 안티노리가 만든 ‘슈퍼 투스칸’
와인수입사 아영FBC는 이탈리아 와인명가 안티노리(Antinori) 시음회를 반포 세빛섬 위에 설치한 무드서울(Mood Seoul)에서 열었다. 안티노리는 1385년 피렌체 와인 길드에 공식 등록된 이후 26대에 걸쳐 가족 경영을 이어온 세계 최장수 와인 가문이다. 지금도 피에로 안티노리 후작의 세 딸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안티노리가 만든 슈퍼 투스칸을 이해하려면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키안티 와인에 대해 먼저 설명을 해야 한다. 짚으로 감싼 피아스코 병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이탈리아 키안티 와인을 대표했다.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토스카나 키안티 지역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기념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피아스코 와인이 대량 생산되면서 품질은 떨어졌다. 결국 키안티는 값싼 대량 생산 와인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기 시작했다.
당시 키안티 와인생산 규정은 대표 포도 품종인 산지오 베제를 중심으로 청포도 품종의 사용을 허용했고, 실제로 많은 생산자가 청포도를 섞었다. 안티노리는 “왜 레드 와인에 청포도를 섞어야 하지”라고 의문을 품는다.
안티노리는 1971년 청포도를 과감히 빼버리고 프랑스산 작은 오크통인 바리크도 적극 사용했다. 당시로서는 거의 금기시되던 양조법이었다. 안티노리는 이후 청포도 대신 산지오베제와 카베르네 소비뇽을 블렌딩한 전혀 새로운 방식의 와인을 탄생시켰다. 키안티의 토착품 종인 산지오베제를 중심으로 보르도식 블렌딩을 더한 것이다.
토스카나에서 보르도를 흉내 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안티노리의 새 와인은 키안티의 와인양조 규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최저 등급인 ‘비노 다 타볼라(Vino da Tavola·테이블 와인)’를 받아야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소비자들이 이새로운 토스카나 와인의 맛에 열광했다. 이 와인이 바로 슈퍼 투스칸의 상징, 티냐넬로(Tignanello)다.
티냐넬로를 성공시킨 안티노리는 스스로에게 또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포도밭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만 골라 최고의 와인을 만들 수는 없을까.” 안티노리가 선택한 곳은 남서향 언덕이었다.
토스카나의 태양이 하루 종일 머무는 자리, 그래서 이름도 ‘솔라이아(Solaia)’라 지었다. 이탈리아어로 ‘햇살이 가득한 곳’이라는 뜻이다. 이 언덕은 단순히 햇볕이 잘 드는 장소가 아니었다.
배수가 좋았고, 석회질과 점토가 절묘하게 섞인 토양을 품고 있었으며, 일교차는 포도의 산도를 지켜주었다.
안티노리는 이곳에서 산지오베제와 카베르네 소비뇽,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했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영혼 위에 프랑스 보르도의 구조감을 더한 셈이다. 현재 솔라이아는 티냐넬로 에스테이트 내 솔라이아 단일 포도밭(해발 350~400m, 20헥타르)에서만 생산된다. 이탈리아 와인을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린 와인이 바로 안티노리 가문의 솔라이아다. 이탈리아 와인 사상 최초로 와인 스펙테이터 ‘올해의 100대 와인’ 1위를 차지한 와인이기도 하다. 2000년 와인 스펙테이터 1위에 오른 것이 1997년 빈티지 솔라이아였다. 솔라이아는 카베르네 소비뇽을 중심으로 산지오베제와 카베르네 프랑 등을 섞어 만든다.
티냐넬로, 솔라이아, 사시카이아, 오르넬라이아, 마세토는 오늘날 슈퍼 투스칸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와인으로 꼽힌다. 이 다섯 와인은 흔히 ‘5대 슈퍼 투스칸’으로 불리며 세계 최고급 와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퍼 투스칸의 성공은 이탈리아 와인 산업 전체를 바꿔 놓았다. 결국 이탈리아는 규정을 손질했고, 토스카나는 더 이상 값싼 키안티의 산지가 아니라 세계 최고급 와인의 고향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탈리아 안티노리는 미국 내파밸리의 스택스 립 와인셀라(Stag’s Leap Wine Cellars)와 칠레 마이포밸리의 하라스 데 피르케(Haras De Pirque)까지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세계적인 와인생산자로 이름을 알리는 중이다.
호주 펜폴즈만의 철학, 멀티리저널 블렌딩(Multi-Regional Blending)
금양인터내셔날은 호주의 아이코닉 브랜드 펜폴즈(Penfolds) 시음행사를 열었다.
펜폴즈는 영국 출신 의사 크리스토퍼 로슨 펜폴드와 그의 부인 메리 펜폴드가 1844년 호주로 이주해 애들레이드 근교 매길(Magill)에 설립한 와이너리의 이름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와인을 건강을 위한 약처럼 마시는 문화가 있었다. 펜폴드 박사 역시 환자들에게 와인을 처방하기 위해 포도를 심고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치료 목적이었지만, 품질이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상업적인 와이너리로 성장했다. 1870년 펜폴드 박사가 세상을 떠나자 아내 메리 펜폴드가 직접 와이너리 경영을 맡았다.
메리는 생산량을 크게 늘리고 해외 수출까지 추진하며 펜폴즈를 남호주 최대 와이너리 가운데 하나로 키워냈다. 시간이 흘러 1950년의 어느 날. 한 호주 청년이 유럽행 배에 몸을 실었다. 그의 이름은 맥스 슈버트. 당시 서른여섯 살이던 그는 남호주 펜폴즈 와이너리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었다. 맥스 슈버트는 유럽을 여행하며 프랑스 보르도의 명문 샤토들을 방문했다. 그가 마신 보르도의 레드 와인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깊이가 더해지고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슈버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호주에서는 이런 와인을 만들 수 없을까.’ 귀국한 슈버트는 여러 산지의 뛰어난 포도를 모으고 새 미국산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며, 그때까지 호주에서는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스타일을 완성했다.
그가 선택한 포도 품종은 호주 쉬라즈(Shiraz). 쉬라즈는 프랑스 론지역 대표 포도 품종인 시라(Syrah)와 같은 포도 품종으로 호주로 오면서 쉬라즈라고 불리게 됐다. 당시 쉬라즈는 오래 숙성시키지 않고 어릴 때 마시는 와인으로 취급받았다. 훗날 이 와인은 펜폴즈 최고의 와인, 그랜지(Grange)가 된다. 그랜지라는 이름은 펜폴드 부부가 남호주 애들레이드 외곽에 구입한 작은 농장 ‘더 그랜지’에서 따왔다.
하지만 슈버트가 만든 와인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심지어 펜폴즈 경영진도 그랜지 생산 중단을 명령했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회사 창고 한쪽에서 극소량의 와인을 비밀리에 계속 만들었다. 훗날 펜폴즈 역사에서는 이 시기를 ‘숨겨진 빈티지(Hidden Grange Years)’라 부른다.
시간이 지나자 처음엔 거칠게 느껴졌던 그랜지가 놀라운 복합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랜지는 국제 와인대회에서 잇따라 최고상을 받았고, 평론가들은 “호주에도 세계적인 장기 숙성 와인이 탄생했다”라고 평가했다.
펜폴즈 그랜지는 호주 최초의 아이콘 와인이자, 뉴월드 최초로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와 로버트 파커 와인 애드보케이트(Robert Parker Wine Advocate)에서 동일 빈티지(2008)에 100점을 동시에 획득한 세계적인 레전드 와인이 됐다.
펜폴즈는 남호주의 여러 산지를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처럼 바라봤다. ‘멀티리저널 블렌딩(Multi-Regional Blending)’, 펜폴즈만의 철학이다. 바로사 밸리의 힘, 맥라렌 베일의 풍부한 과실미, 쿠나와라의 구조감, 이든 밸리의 우아함까지, 그해 가장 뛰어난 포도를 찾아 하나의 와인으로 완성한다.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산지의 포도를 블렌딩함으로써 빈티지와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고, 해마다 일관된 스타일과 뛰어난 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펜폴즈의 강점이다.
펜폴즈 관계자는 “펜폴즈는 설립 초기 주정강화 와인을 생산했는데, 당시엔 다양한 지역의 포도를 블렌딩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이 블렌딩 문화가 펜폴즈 스타일의 청사진이 됐고, 이후 드라이 레드 와인으로 영역을 확장한 뒤에도 같은 철학을 이어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프랑스를 닮으려 했던 두 와인, 기존의 틀을 깨고 최고급 와인으로
이탈리아 안티노리 가문이 만든 솔라이아와 호주 펜폴즈가 만든 그랜지. 지구 반대편에서 태어난 두 와인은 품종도 다르고, 기후도 다르고, 철학도 다르다. 솔라이아는 하나의 언덕을 끝없이 파고들었다. 최고의 햇살, 최고의 토양, 최고의 포도밭을 찾아 테루아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반면 그랜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하나의 장소가 아니라 호주 전역을 무대로 삼았다. 여러 산지의 뛰어난 포도를 모아 완벽한 조화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했다. 한쪽은 테루아를 믿었고, 다른 한쪽은 블렌딩을 믿었다.
방법은 달랐지만 두 와인이 향한 목적지는 같았다. ‘프랑스를 넘어서는 와인.’
흥미로운 사실은 두 와인 모두 처음엔 환영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솔라이아도 티냐넬로와 마찬가지로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최하등급인 테이블 와인 취급을 받았다. 그랜지는 생산 중단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깨닫게 된다. 새로운 역사는 언제나 규칙을 가장 잘 지키는 사람보다, 규칙의 한계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가 티냐넬로와 솔라이아, 그리고 그랜지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비싼 와인을 마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기준에 질문을 던진 사람들, 그리고 끝내 자신의 답을 증명해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마시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