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GOLF & CULTURE] 한국에서 처음 열린 히코리 골퍼들의 축제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치기 위해 기술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시대에 오히려 100년 전 히코리 클럽을 꺼내 든 사람들이 있다. 불편하고 어렵지만 그 안에서 골프 본연의 재미와 사람 사이의 우정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9월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한국히코리오픈 챔피언십은 그런 히코리 골프의 특별한 매력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 행사였다.
과거 건축대학원 진학을 위한 자기 소개서 마지막 문구에 이런 내용을 썼었다.
‘시(Poetry)는 인간의 생존에 불필요하다. 그럼에도 시가 필요한 이유는 바로 그 불필요성 때문이다. 실용성의 굴레에 묶여 살고 있는 인간에게 예술이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이다. 나는 대학원 과정에서 건축의 실용성과 예술성 사이의 접점을 탐구하고 싶다. 둘 사이의 균형에 어떻게 도전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골프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인류의 생존 앞에 골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바닷가의 골프장은 전투기 착륙장으로 쓰였고, 일본의 골프장은 식량 공급을 위해 논밭으로 변했다. 골프는 대다수에게 취미의 한 종류일 뿐이다.
하지만 골프에는 다른 스포츠, 다른 오락에서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골프에 열광한다. 나는 30년 골프인생 중, 최근 몇 년 동안 히코리 골프에서 그 매력을 다시 찾았다.
100년 전 클럽을 다시 꺼내 든 이유
지난 9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간 포천 힐마루 골프앤리조트에서 제1회 한국히코리오픈 챔피언십이 열렸다. 히코리 골프는 1920년대까지 세계적으로 쓰였던 나무 샤프트를 장착한 클럽인데 1929년 R&A에서 스틸샤프트를 공인하면서 사라진 골동품 채이다. 스틸샤프트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품질 관리가 용이했기 때문에 까다로운 수작업으로 만든 히코리 클럽을 대체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수집용 골동품으로 여겨지던 채를 1980년대부터 수집가들이 치기 시작했고, 지금은 세계 20개국에서 2,000여 명 정도가 히코리 클럽으로 플레이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19세기 말 원산에서 영국인들이 골프를 쳤다는 설이 있고, 1921년 설립된 효창원 9홀 골프코스는 1924년 청량리로, 다시 1929년 현 어린이대공원이 있는 군자리 골프코스로 이전되었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사라진 군자리 코스가 1954년 복원되어 서울CC의 구장이 되었고, 1972년 코스가 어린이대공원 부지로 유용되면서 서울CC는 고양에 위치한 한양CC와 합쳐지게 된다. 이런 사료들로 볼 때, 원산의 6홀 코스와 효창원, 청량리, 군자리 코스에서는 감나무 우드와 단조 아이언에 히코리 나무 샤프트를 연결한 골프클럽이 쓰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26년 가을, 나와 10명의 한국 히코리골프협회 회원들이 아마추어 국제 대회를 개최했다.
대체 어떤 계기로 이런 특별한 여정이 시작된 걸까? 3년 전 나는 유럽과 영국에서 40일간 40개의 다른 명문 코스를 플레이하고 책을 썼다. 25일째 되는 날,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의 로열 도노크 GC에서 우연히 만난 유지 나카무라 씨가 히코리 클럽으로 나와 함께 플레이했는데, 그는 그주에 있었던 월드히코리오픈에 참가한 직후였다. 난생 처음 목격한 히코리 골퍼와 친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8개월 후 교토GC에서 재회하여 그가 대신 주문해 준 히코리 클럽 세트로 내 히코리 골프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3년간 나는 스코틀랜드 월드히코리오픈 2회, 차이나 히코리 인비테이셔널 1회, 재팬 히코리클래식에 2회 출전했고, 2024년 가을 한국히코리골프협회를 창단했다.
최신형 드라이버와 아이언으로 더 멀리, 더 똑바로 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신, 빗맞으면 빗맞은 대로, 30~40m가 덜 나가는 감나무 드라이버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즐기는 별난 사람들의 모임이 한국히코리골프협회이다. 새로움에 도전하고 해외 각지의 히코리 골퍼들과 교류하는 멋을 즐기는 이들이다.
중국·일본·홍콩·스코틀랜드 히코리 골퍼들과 함께 한 한국히코리오픈 챔피언십
포천 힐마루 골프앤리조트에서 개최된 2026 제1회 한국 히코리오픈 챔피언십은 첫날 Canadian 포섬 단체전을 치른 후, 둘째 날 스트로크 플레이로 개인전 첫 경기를 시작했다.
중국, 일본, 홍콩 등 각 나라 히코리협회 회원과 멀리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서 온 친구를 포함해 총 32명이 저마다 개성 있는 전통 복장으로 녹색 페어웨이를 누볐다.
저녁 공식만찬에는 국악으로 대통령상을 받은 천주미 단장과 함께 국가 무형문화재 두 명이 아름다운가야금 병창을 선보였고, 중국에서 온 14명의 골퍼들은 자국의 노래와 춤으로 흥을 돋우었다.
화요일 개인전 첫날에 이어, 대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개인전 이틀째 경기가 9월 15일 오전에 펼쳐졌다. 전날 저녁만찬에서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우정을 나눴는데, 아침에 쌀쌀한 공기를 맞으며 새로운 마음으로 경기에 집중했다. 전반 9홀이 끝났을 때, 리더보드 선두는 중국의 탕징쉥.
전반 6오버파로 고전한 나는 후회 없는 경기를 하자는 다짐으로 후반에 임했다. 마지막 두 홀에서 연속 버디를 하면 탕징쉥과 겨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7번 파3홀에서 2m 퍼트를 성공시켜 버디를 하고 맞이한 파5, 18번 홀. 세 번째 70m 웨지샷이 그린을 벗어나 결국 파로 마무리하고 대회를 끝냈다. 결국 개인전 남자 1위는 중국의 탕징쉥에게로 돌아갔다. 겨우 한 타 차로 탕징쉥에게 초대 한국히코리오픈 챔피언 자리를 뺏겼지만, 마음은 흡족했다. 멀리서 온 손님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선의의 경쟁을 펼쳤기 때문이다. 단체전과 개인전 첫날 함께 플레이했던 그는 룰과 에티켓은 지키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동반자를 배려하는 진정한 히코리 골퍼였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았다. ‘뺏겼다’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멋진 경쟁이었고 그곳에 히코리 골프의 정신이 있었다.
히코리 골프가 이어주는 사람 간의 끈끈한 우정
히코리 골프는 관용성과 비거리가 뛰어난 최신형 클럽에 비해 스코어가 6타 이상 더 나오게 된다.
그럼에도 히코리 골프를 하는 이유는 함께 하는 ‘사람’에 있다. 사업상 만나거나 학연으로 엮인 관계가아니고서는 외국인들과 골프장에서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히코리 골프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쉽게 공감대를 만들어 마음을 나눌 수 있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들의 나라에 가서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처럼 진심을 담아 대접 하는 문화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골프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사람과 사람 간의 끈끈한 우정’이 얼마나 값진 선물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경험을 나누기 위해 한국히코리골프협회가 시작됐고 첫 세계대회를 통해 새로운 여정이 열렸다.
시인 문정희는, “한국인들은 너무 상투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남들과 같은 말을 하고 남들과 같은 것을 먹고 남들과 같은 곳에 간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반복하고 있는 골프도 상투적으로 되진 않았는가? 대한민국 골프인구 600만 명 시대에 10명의 히코리 골퍼가 새로운 대안을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초대 한국히코리오픈 챔피언십에서 확인했다.
2026 한국히코리오픈 챔피언십 결과
▶ 단체전 포섬(Canadian Foursome)
1위 탕징쉥/린충화(Tang Jingsheng/Lin Chunghua, 중국), 84타
▶ 개인전
남자 1위 탕징쉥(중국), 162타 / 2위 오상준(한국), 163타
여자 1위 푸롱(Fu Rong, 중국), 172타 / 2위 웨이루이펀(Wei Ruifen, 중국), 181타
▶ 시니어(60세 이상)
1위 션 스미스(Shaun Smith, 스코틀랜드), 171타
2위 제임스 팽(James Feng, 중국), 177타
[writer 오상준(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소장) photo 한국히코리골프협회 제공]
[유희경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