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F IS LIFE] 축구 레전드 이동국 “상대와 싸우지 않는 골프, 가족과 라운드에서 행복 느낀다”
골프엔 볼을 막아서는 이도, 피지컬적인 우위도 없다. 스코어 욕심 없이 몸이 흘러가는 대로, 소중한 이들과 라운드하며 추억을 쌓아가고 있는 축구 레전드 이동국의 골프 스토리.

전 국가대표, K리그 역사상 최초 70-70 클럽 가입, 전북 현대 모터스 최초 영구 결번 선수. 축구 레전드 이동국이 써 내린 기록이다.
이동국은 1998년 포항 스틸러스 입단을 시작으로 광주 상무, 성남 일화를 거쳐 전북 현대 모터스에서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K리그에서 MVP를 비롯해 신인상과 득점상, 도움상을 모두 기록한 선수는 오직 이동국뿐이다.
은퇴 후 축구 해설위원이자 방송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동국은 막내 시안의 태명을 딴 ‘대박드림스’ 대표로 축구 및 골프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다. 프로 못지않은 명승부로 예능 프로그램 <골프왕>의 우승을 차지했던 그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골프 마니아다.
송도에 위치한 이동국 골프킹 아카데미에서 이동국을 만났다. “골프는 축구와 달리 볼을 막는 사람이 없다.” 이동국은 축국인의 시각에서 자신만의 골프 지론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요즘 근황은 어떤가. 축구 예능 <뭉쳐야 찬다 4>에서 라이온하츠FC를 이끌고 있다. 현재 1위긴 한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웃음). <뭉쳐야 찬다>는 전체 5라운드를 마치고 플레이 오프에서 우승팀을 가린다. 지금 3라운드까지 끝냈다. 다른근황이라면, 이곳 송도에서 이동국 골프킹 아카데미와 이동국FC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아카데미에 종종 나와 골프를 치곤 한다.
내년 창단하는 용인FC의 테크니컬 디렉터를 맡게 됐다. 테크니컬 디렉터는 구단의 행정적인 부분과 기술적인 부분을 다 총괄한다. 내가 가진 축구 경험을 더해 어떤 팀이 완성될지 궁금하다. 그런 궁금증이 용인FC를 선택하게 한 것 같다. 선수단 구성부터 구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계속 논의하는 중이다. 용인에 골프장이 많아 골프의 메카일수 있겠지만 축구인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용인FC에 내가 가진 노하우를 녹여 용인을 축구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최근 발간한 <축구를 생각하다>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신간까지 총 세 권을 썼다. 은퇴 이후에 선수 시절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해보자 싶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 방송 활동도 그중 하나고 유튜브 채널도 마찬가지다.
은퇴 이후부터 골프에 푹 빠졌다고 들었다. 2021년 골프 예능 <골프왕> 출연이 계기가 됐다. 코로나19 때라 골프를 치지 못했던 시기였는데 대리만족을 느끼셨는지 많이들 좋아해 주시더라. 이왕이면 잘하고 싶단 생각에 꽤 열심히 했다.
골프는 언제 처음 시작했나. 2005년 무렵이다. 축구 선수 생활할 때 선배들이 빨리 골프 쳐라, 나이 들어 시작하면 또 다르다,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는 게 돈 버는 거다, 재촉했다. 스무 살 때 하석주, 김병지 선배가 골프숍에 데리고 가서 클럽을 골라줬다. 별로 재미가 없어서 5년쯤 골프채를 그대로 묵혀뒀었다. 나중에 골프를 좀 치긴 했는데 라운드는 한달에 한 번 나갈까 말까였다. 은퇴 후 1년 동안 라운드 한 횟수가 은퇴 전 15년보다 훨씬 많을 거다. 일주일에 필드를 한두 번씩 나갔다.

골프에 어떤 매력을 느꼈나. 축구 같은 스포츠는 피지컬에서 우위가 있다. 그런데 골프는 피지컬이나 운동신경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초등학생 아이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한테 질수도 있는 거다. 자기만의 노하우나 경험, 이런 것들에 의해 실력이 좌우되는 느낌? 골프는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무조건 이길 수 없는 스포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축구와 다른 면에 끌렸나 보다. 축구는 상대를 넘어뜨려야 골대에 볼을 집어넣을 수 있다. 골프에선 내 볼을 막는 사람이 없다. 과격한 몸싸움도 할리우드 액션 같은 눈속임도 없다. 축구는 공이 날아올 때 영 점 몇 초 안에 순간적 판단을 빠르게 해야 된다. 골프는 거리를 계산하고 생각할 여지가 있다.
다만 이런 건 있다. 축구는 내가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옆에서 동료가 좀 도와줄 수 있다. 골프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다 해야 된다. 홀컵에 볼을 넣기까지 오로지 나 혼자다.
축구를 했던 경험이 골프에 도움이 되기도 하나. 축구 선수들은 하체 밸런스가 잡혀 있어 자세가 흔들리지 않는다. 멘털적으론 승부차기 같은 걸 많이 해봐서인지 결정적 순간에 떨리지가 않더라. 라운드에선 잘못 쳐도 캐디까지 4명이 지켜보는데, 축구 경기 때는 페널티킥 한번 잘못 차면 몇 만 명이 본다. 스포츠 선수들은 자기 분야가 아니면 떨린다고 하지만 퍼팅 꼭 넣어야 될 때, 많은 갤러리 앞에서 드라이버샷을 할 때도 그다지 긴장되진 않는다.
필드에서 플레이 스타일은 어떤가. 보면 축구 포지션을 따라가는 것 같다. 미드필더들은 따박따박 정교하게 가고 수비수들은 안전하게 가고. 나는 공격적으로 그냥 지르는 스타일이다. 항상 투온을 노리고 해저드가 있어도 돌아가지 않고.
경기가 잘 안 풀릴 땐 어떻게 대처하는지. 나는 골프 칠 때 너무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굳이 점수 잘 내려고 무리해서 집중하고 그러지 않는다. 스트레스 풀러 왔다가 스트레스 쌓여서 가면 되겠나. 티샷에 올라가면 바로 볼 놓고 그냥 친다. 동반자들이 ‘구찌’나 훈수를 두려 해도 먼저 빵 쳐버리니까(웃음). 날 몸으로 밀지 않는 이상 옆에서 꽹과리를 쳐도 상관없다. 빈스윙도 잘 안 한다. 한국은 팀 간격이 타이트해서 내가 시간을 짧게 가져가면 동반자들이 그만큼 여유를 가지겠지, 하는 생각도 있다.
인생 베스트 스코어는? 1 오버다. 그날 전반에 버디를 6개정도 해서 ‘언더 칠 수 있겠다’ 싶었는데 후반에 동반자들이 한잔하면서 ‘다같이 못 치자’ 분위기로 흘러갔다. 5 언더를 기록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라베’ 욕심을 냈다면 기록을 깼을 텐데, 사실 베스트 스코어가 다시 똑같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치고 말자, 하고 넘겼다. 라운드에 나가면 ‘오늘도 유쾌하게 하루를 보내야지’ 생각한다.
욕심 안 낸 것 치곤 프로 못지않은 실력이다. 비거리도 많이 나갈 것 같다. 예전엔 많이 나가긴 했다. 평균 한 260m? 한창 땐 멀리 치려고 노력했는데 한 클럽 더 잡으면 되는 걸 왜 그렇게 애를 썼지 싶다.
특별히 친한 골프 선수들이 있다면. 김태훈 프로와는 친해진 지 10년이 넘었다. 태훈이 아버님이 전주에서 프로숍을 하시는데 아버님과 먼저 알게 된 인연으로 가까워졌다. 문경준, 김봉섭, 김영민 프로는 태국에 잠시 있을 때 함께 라운드를 돌며 친해졌다. 넷이서 경기하면 2대 2로 편을 나눠 소소하게 밥 내기를 하는데 이겨야 되니까 다들 맨투맨으로 티칭을 잘 해준다(웃음).
가족들과는 라운드 하나. 함께 필드에 나가면 행복하겠다. 최근에 미국 처형 댁에 갔다가 애들이 라운드 할 때 나는 카트 운전을 했다.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만 계속 보고 있지 않나. 골프 치는 시간만큼은 경기를 통해 승부욕을 가지고 샷 하나하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좋다. 근데 애들은 골프장에 먹으러 가는 것 같다. 카트에 앉아 이동하며 먹는 햄버거, 부리토가 그렇게 맛있다고 한다. 그 재미도 있긴 하다.
자녀들이 운동 DNA를 타고난 것 같다. 모두 골프를 잘 치더라. 재아는 테니스에서 골프 선수로 전향했다. 거리가 이젠 나와 비슷하게 나온다. 스포츠 선배지만 내가 골프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선 딱히 조언하지 않는다. 요즘 훈련에 있어 벽에 부딪히는 시기인 듯한데 골프로 전향한 지 2년도 안돼 언더를 친다는 건 잘하는 거다. 시안이도 골프 쪽으로 가면 좋은데 잘 안 넘어오고 있다. 골프와 축구 재능은 둘 다 있는데, 축구는 아무리 잘해도 아버지가 뒤에 따라붙어 본인이 힘들 것 같다.
가족과의 추억 외에 가장 기억에 남는 라운드는.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가 기억에 남는다. 그때 미국 어바인에 있었는데 페블비치에 가려고 차로 7시간을 달렸다. 당시 페블비치에선 AT&T 대회를 준비 중이었다. TV에서만 보던 장소가 여기구나, 잔디를 직접 밟아보니 좋더라. 클럽하우스에서 산 키링을 캐디백에 달고 있다. 페블비치 골프 링크스 옆에있는 스패니시 베이, 스파이글라스 힐도 너무 예쁜 골프장들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골프와 인생의 공통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골프는 쉽게 놔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을 이기는 능력은 경험에서 온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실패를 줄이기 위해선 코스를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조언을 들을 필요도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