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펀(Fun) 골프, 내기 골프의 세계
한국 골퍼들은 필드에서 다양한 내기 골프를 즐긴다. 과한 도박성이 아니라면 내기 골프는 라운드에 활력과 긴장감을 주면서 동반자들과의 재미있었던 기억들로 오래 남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펀 골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골프는 오랫동안 ‘신사의 스포츠’ , ‘정중한 경기’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한국에서 골프는 경기와 동시에 놀이가 되었다. 이곳에서의 라운드는 단순히 스코어를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 웃음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게임의 장(場)’이다.
승부와 재미가 공존하는 문화, 그것이 바로 한국의 ‘펀 골프’다.
한국 골프장의 공기에는 종종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는 프로 대회가 아닌 아마추어들의 라운드에서조차 나타난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기 때문이다.
내기는 단순히 돈의 문제를 넘어, 라운드 전체를 활력 있게 만드는 장치다. 동반자들은 서로의 티샷과 퍼팅을 지켜보며 한순간도 긴장을 놓치지 않는다. 한 타의 실수가 곧 웃음의 소재가 되고, 기적 같은 파 세이브는 동반자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라운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내기 골프
필자는 골프업계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골프 칠 때마다 어떤 게임을 할지 제안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았다. 그 덕분에 게임의 종류를 많이 알게 되었고, 적절한 장소와 동반자들의 골프 성향 등을 감안해 가장 적합한 게임 방식을 제안해왔다. 그렇게 종합적으로 판단해 게임을 제안했을 때 재미있다며 칭찬을 받을 때가 많아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내기 골프의 종류 및 방법을 알려주고자 한다. 한국의 내기 골프 게임에는 크게 실력 위주의 스트로크형과 운과 눈치싸움, 게임 운용 능력이 좌우하는 랜덤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 스트로크: 내기 골프의 가장 기본으로 1타당 정한 금액에 각자 스코어 차이를 곱해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주는 방식이다. 하수에게 불리한 편이고 핸디캡 차이를 고려해 핸디캡에 해당되는 금액을 미리 지불하고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로 핸디캡 없이 하는 경우는 ‘스크래치’라고 한다. 여기에 트리플 보기, 버디, 3명이 동타인 경우는 더블판(배판)이라 해서 다음 홀에서는 타당 금액이 두 배가 된다.
● 스킨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하는 방식으로 각 플레이어가 일정한 금액을 사전에 내놓고 홀마다 가장 적은 타수를 친 사람이 홀 상금을 얻는 방식이다. 만약 최저타 동타가 나오면 상금은 다음 홀로 이월된다. 니어(near)와 롱기(longest)를 더하기도 하는데, 니어는 그린에 올렸을 때만 적용되며, 니어를 하고 버디를 못하거나 파를 못하면 벌금을 물기도 한다.
● 조폭 스킨스: 기본 스킨스 방식을 따르는데 보기 또는 더블 보기를 할 경우 이전 홀에서 딴 돈의 절반을, 더블보기 또는 트리플 보기를 하면 딴 돈 전부를 승자에게 빼앗기는 방식의 게임이다. 조폭들이 골프 할 때 마지막 18홀에서 보스에게 돈을 몰아주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라는 설이 있다.
● OECD 스킨스: 스킨스 게임에서 애초 상금으로 자신이 내 놓은 금액이나 사전에 미리 정해둔 금액을 다 챙긴 순간 OECD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친 볼이 오비, 벙커, 스리 퍼트, 트리플 보기 등 이 4가지 경우에 해당할 경우 딴 돈을 그 횟수 만큼 벌금을 낸다. 이를 ‘오빠삼삼해(오비, 벙커, 스리 퍼트, 해저드)’라고 불리우며, 여기에 나무를 맞거나 도로를 맞는 경우를 추가해 ‘오빠나도삼삼해’로 부르기도 한다.
● 라스베이거스: 게임의 방식이 워낙 즉석에서 바뀌거나 뽑기, 조커 등 확률 요소가 크게 작용해 도박과 환락의 도시인 ‘라스베이거스’를 이름에 상징적으로 붙인 것이다. 4명이 한 팀으로 1등과 4등, 2등과 3등으로 팀을 나누어 즐기는 2인 1조 게임 방식이다. 나뉜 두 팀이 서로의 팀 동료와 타수를 합해 타수가 낮게 나온 팀이 그 홀 승자가 되어 2명이 상금을 타며, 매 홀 팀원이 바뀔 수 있어, 이번 홀 동지가 다음 홀 적이 되는 재미를 누릴 수 있다. 이처럼 랜덤 방식으로 팀을 나누는 또 다른 방법은 각 홀 첫 티샷에서 좌측과 우측으로 간 공을 기준으로 ‘좌탄우탄(좌파우파)’ , 또한 4명이 온 그린 되었을 때 홀컵과 가까이 있는 사람과 멀리 있는 사람끼리 한편을 이루는 ‘가가멀멀’이 있다.
또한 기존 라스베이거스에서 약간 변형된 방식으로 뽑기통에 조커(J)를 하나 넣어 조커를 뽑은 사람은 타수에 상관 없이 무조건 보기 또는 1등 따라가기 방식도 있다.
● 후세인: 왜 후세인일까?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걸프전이 발발했는데, 당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이라크 단독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 연합국과 맞서 싸운 역사적 상황을 비유적으로 차용한 데서 유래되었다. 이 게임은 후세인으로 지명된 1명의 골퍼와 나머지 3명의 골퍼가 대결하는 게임이다. 전 홀에서 2위한 사람이 후세인이 되며 후세인의 스코어에 3을 곱해 얻은 점수를 합산한 나머지 3명의 스코어와 비교해 낮은 쪽이 정해진 금액을 가져가는 방법이다. 이의 변형으로 후세인에 대항하는 3명 중 가장 타수가 많은 골퍼를 제외한 2명의 스코어 합과 후세인 타수 2를 곱해 낮은 쪽이 상금을 얻는 방식도 있다.
● 낫소 게임: 외국에서 많이 하는 내기 방식이며, 국내에서는 별로 즐겨 하지 않는 것 같다. 이 게임은 전반 9홀, 후반 9홀, 전체 18홀 셋으로 구분해 승패를 겨루는 방식이다. 그늘집 내기, 저녁 내기 등과 같이 어떤 내기를 걸고 하는 경우에는 가장 좋은 방식이다.
● 골프칩 게임: 기본적으로 7가지의 테마 칩(시중에 판매, 직접 제작해도 됨- OB, 벙커, 해저드, 나무, 스리 퍼트, 카트 도로, 트리플 보기)을 시작 전에 나눠 갖고 홀마다 마지막으로 해당 실수를 한 사람에게 건네준다. 칩 하나의 금액을 사전에 정해두고 9홀이나 18홀 또는 3홀 종료 후 보유한 칩에 따라 정산하는 방식이다.
● 방송사 이름 골프: 방송사 동료끼리 그날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작된 것으로 일명 ‘OOO룰’ 이라고 한다. 시작하기 전 오늘 상황, 컨디션, 동반자 관계, 코스 난이도 등 다양하게 고려해 전반에 각자가 칠 숫자를 정한다. 가령 어떤 골퍼가 전반 45타를 치겠다고 결정했다고 하자. 하지만 전반 9홀 47개를 쳤으면 +2가 된다. 본인이 정한 숫자에 가장 근접한 사람 순으로 순위를 매겨 그날 비용을 차등해 거둔다.
라운드 후에도 오래 기억되는 추억
이처럼 한국에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내기 방식이 많다. 그리고 내기는 단순히 게임의 규칙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따뜻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내기에서 진 사람은 밥을 사고, 이긴 사람은 술을 사는 과정에서 오히려 동지애가 쌓인다.
또한 기발한 벌칙 수행은 모두에게 웃음을 주고, 라운드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회자되는 추억으로 남기도 한다. 이는 곧 ‘골프는 인간적인 스포츠’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스코어보다 더 값진 것은, 함께 웃고 떠든 기억들이다. 특히 젊은 세대는 ‘경쟁’보다는 ‘경험’을 추구하며, SNS에 올릴 수 있는 재미난 순간들을 중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골프가 경기만이 아닌 놀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골프가 ‘스코어 압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즐거운 하루의 장’이 될 때, 비로소 대중적 스포츠로서의 진정한 힘을 발휘한다.
라운드의 내기와 웃음, 기발한 게임 방법과 소소한 벌칙, 그리고 동반자들과의 재미있었던 기억들. 이것이 바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펀 골프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