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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식·장종필의 법을 알면 부동산이 보인다 - 2조 원짜리 섬 ‘골프장 하나’로 끝나다 개발계획의 허상과 법의 역할

  • 장종필
  • 입력 : 2025.12.09 17:46

인천 영종도의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는 2조 원의 비전을 품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골프장 하나만 남았다. 민간이 주도했더라도 세금이 투입된 순간, 그 사업은 공공의 감시와 법의 책임 아래 놓인다. 법의 시선으로 이 사업을 다시 들여다봤다.

영종도 한상드림 아일랜드 조감도(LH)
영종도 한상드림 아일랜드 조감도(LH)

10년 넘게 ‘조성 중’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인천 영종도의 ‘세계한상드림아일랜드’. 해양수산부가 국내 첫 민간 항만재개발 사업으로 지정했던 대형 프로젝트다. 호텔, 쇼핑몰, 워터파크, 아쿠아리움이 들어서는 ‘해양 복합관광단지’의 청사진은 화려했다. 그러나 지금 그 섬에는 골프장 하나만 남았다.

10년의 세월과 무려 2조 원 투입계획, 그리고 수백억 원의 공공 인프라가 투입된 결과가 이것이라면 한번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업 실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허위 또는 과장된 개발계획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가. 그리고 세금이 투입됐다면, 공공은 어디까지 감시의무와 책임을 져야 하는가.

① 민간사업이라도 ‘공공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프로젝트는 명목상 민간 항만재개발 사업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도로, 교통, 전력 등 기반시설에는 국비와 지방비가 투입된다. 세금이 한 푼이라도 들어가는 순간, 사업은 더 이상 ‘순수한 민간사업’일 수 없다. 따라서 행정기관은 단순 인허가권자가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감독자’의 위치에 선다. 사업자의 자금조달 능력, 리스크 관리, 계획의 현실성을 검토할 의무가 있다. 만약 그 역할을 소홀히 했다면 행정 역시 “민간의 일”이라며 발을 빼기는 어렵다. 행정청은 사업시행자 선정 및 인허가 단계에서부터 개발계획의 현실성, 자금조달 능력, 리스크 관리계획을 철저히 검토할 의무가 있다. 감독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면 행정기관 역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② 과장된 개발계획, 어디까지 ‘허위’로 볼 수 있나

민간사업자는 투자 유치나 분양 과정에서 구체적인 숫자가 포함된 사업계획서를 제출한다. 이런 계획이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마치 확정된 사실이거나 실현 가능성이 매우 큰 사실처럼 제시했다면 이는 기망행위로 평가될 수 있다. 특히 사회통념상 허용된 수준을 넘는 허위, 과장이 섞인 사업계획을 근거로 투자금을 모집했다면, 민법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 또는 형법 제347조(사기죄)가 적용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처럼 장기개발계획의 경우에는 개발행위 도중에 경제사정에 변화가 생기기 쉽고, 분양 부진 또는 자금조달 난항 등으로 사업 추진이 어려움을 겪어 참여자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게 되면 현실에서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다” “시장 여건이 달라졌다”는 등의 사유로 서로 책임을 회피하는 경우가 흔하다. 손실 보전을 위한 민사상의 다툼은 별론으로 하되, 형사책임까지 부담하는 경우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개발계획 수립 시에는 누구도 경기 악화나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을 예상할 수도 없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국 시행사 선정 시 개발계획의 현실성을 충분히 심사하고, 개발계획 인허가 시에 엄격한 이행조건을 부가하여 개발 완료 시까지 인허가청이 공공성을 무기로 개입할 명분을 남겨두는 방법이 실효적 견제 수단이 될 수 있다.

③ ‘골프장 전용 섬’이 된 이유… 사업 부진이 ‘행정적 미봉책’으로 덮이는 구조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섬의 일부 부지는 체육공원용지로 바뀌고 인근 주민을 위한 파크골프장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업의 출발점이었던 관광·복합단지 비전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골프장 전용 섬’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동안 당국은 사업자의 요청에 따라 준공기한을 수차례 연장해줬다. 10년 넘게 측면 지원을 해왔지만 준공기한 연장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필요 시 계획 미이행에 따른 시행자 지정 취소 등 법적 조치도 검토했어야 한다.

④ 세금이 들어갔다면, 법의 감시도 따라야 한다… ‘공공책임’의 핵심

민간 주도의 개발사업이라도 공공 인프라에 세금이 투입됐다면, 그 집행내역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세금이 들어갔는가”가 가장 본질적 질문이다. 만약 투입된 예산이 골프장 진입도로·전력·상수도 등 특정 민간시설의 편익에만 쓰였다면, 이는 공공재정이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투입된 것이므로 당국은 그에 상응하는 요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투명성이 무너지면, 아무리 큰 프로젝트라도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⑤ 법은 실패를 막을 수 없지만, 재발은 막을 수 있다

대형 부동산 개발사업은 흔히 “비전이 현실을 압도하는 순간”에 시작된다. 하지만 실패의 기록은 제대로 남지 않고 책임은 공동의 것이 되어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만다. 누가 계획을 세웠고, 어떤 근거로 가능성을 확신했는지, 그 검증은 어디서 이루어졌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법은 책임을 묻기 위해서 적절히 기능할 때도 있지만, 한계 또한 명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와 가드레일처럼 비록 잠깐 충돌이 있더라도 차가 도로 밖으로 이탈하지는 않도록 하는 역할은 단단하게 해주어야 한다.

‘2조짜리 섬’이 결국 골프장 하나로 끝난 이유는 단순히 투자 실패가 아니다. 개발사업에 내재된 필연적인 과대희망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으로 더 정교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공공의 재정 손실을 최소화하고, 거액의 민간자본이 투입된 사업이 파산으로 끝나지 않도록 민간부분을 돕는 길이기도 하다.

계획은 실패할 수 있으나,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개발의 허상을 걷어내는 첫걸음은 법의 이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writer 장종필 변호사]

장종필
장종필 변호사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UC 데이비스 로스쿨에서 연수(LL.M.)를 마쳤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인천도시공사 등 주요 공기업의 자문 및 소송을 맡았으며, 현재 법무법인(유한) 에이펙스의 파트너 변호사로서 건설·부동산 기업과 신탁사, 상장 법인 등의 법률 자문 및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
김재식
김재식 변호사는 법조계 24년 차로, 주택정책과 부동산 분야에 정통한 ‘생활 밀착형’ 전문가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동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국토부 장관정책자문위원,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 공동주택우수관리 심의위원 등 부동산과 주택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현재 법무법인 에이펙스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한국주택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