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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아나운서의 언어의 스윙] 골프에 숨어 있는 언어의 힘

  • 정정혜 기자
  • 입력 : 2025.12.10 09:08
  • 수정 : 2025.12.10 09:27

골프와 언어는 멀리 있는 두 세계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사진설명

처음 만난 사람들과의 라운드, 그 1번 홀 티샷은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어마어마한 티샷을 하게 됐다. 골프 행사에서 ‘시타자’로 나서며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첫 샷을 맡은 것이다. 15년 넘게 골프 아나운서로 활동했지만 1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직접 샷을 해야 한다는 긴장은 전혀 달랐다. ‘공이 안 맞으면 어쩌지?’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현장에 도착한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일부러 사람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연막구는 원래 볼이 무거워서 잘 안 뜬대요.”

“저는 골프채보다 마이크 잡는 게 전문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렇게 농담처럼 말을 하다 보니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그래, 내가 선수도 아닌걸.’ 하지만 잠시 후, “시타자는 이제 티잉 그라운드로 올라와 주세요.” 이 안내 멘트가 울려 퍼지는 순간, 심장은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을 건넸다. ‘시타가 안 떨리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잘 치려고 하지 말고 스폿만 맞추자. 공에서 연기만 잘 터지면 돼.’ 이 짧은 ‘셀프 토크’ 한마디가 이렇게 힘이 되다니!

말은 스윙보다 먼저 리듬을 만든다

“3! 2! 1! 시타!”

“불꽃 연기가 시원하게 터졌습니다! 굿샷입니다!”

‘휴, 잘 끝났다.’

돌아보면 그날 내 샷을 바꾼 건 스윙이 아니라 언어였다. 골프와 언어의 특별한 관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 컨디션이 별로야”라는 말 한마디가 리듬을 흔들고 “괜찮아, 이번 홀은 새로 시작이야”라는 말이 다시 스윙을 세운다. 15년 넘게 투어 현장에서 지켜본 수많은 선수들의 언어를 보며 배우고 느낀 점도 같았다.

프로는 언어도 다르다

그들은 스윙만큼이나 스스로에게 건네는 언어 루틴을 갖고 있었다.

타이거 우즈의 “Winning takes care of everything (이기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 로리 매킬로이의 “Control what you can control(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라)”, 박인비의 “기록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이 말들은 인터뷰용 문장이 아니라 그들의 루틴이고 멘털의 언어이다. 스윙을 잡는 것도, 흐트러진 마음을 회복시키는 것도 결국은 말 한마디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골프는 ‘대화가 스며든 스포츠’

골프의 언어가 가진 특별한 매력은 ‘셀프 토크’에서 끝나지 않는다. 골프는 기술의 경기 같지만 실제로는 대화의 시간이 훨씬 많다. 몸을 움직이는 시간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고, 늘 누군가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린 위에서 나눈 짧은 대화, 티샷 전에 건네는 말 한마디, 나의 샷을 바라보는 동반자의 표정과 눈빛까지 그 모든 것이 플레이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일까? 골프는 대화가 스며든 스포츠이다. 그래서 처음 만난 사람과 칠 때와 편한 사람과 칠 때의 라운드는 마치 전혀 다른 코스를 도는 듯 다르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스윙이 아니라 관계의 온도다. 어색함이 풀리는 순간, 샷도 부드러워진다.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면 바람도 도와주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리고 그 변화를 만드는 출발점에는 언제나 언어가 있다. 골프를 치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결국 그 사람의 언어를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배려하는 말, 조용히 응원하는 말, 삼가야 하는 말, 골프는 그 사람의 언어를 담고 있다.

스피치 기술과 골프의 기술은 닮은 점이 많다

골프와 언어에 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피치 기술’ 자체도 골프와 닮은 점이 아주 많다는 사실이다. 골프 스윙의 간결함이 강력한 파워를 동반하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피치도 쉽고 간결한 것이 중요하다. 또한 스윙의 ‘톱 멈춤’은 스피치에서 핵심 메시지를 앞두고 청중의 집중을 끌기 위해 멈추는 짧은 호흡과 닮아 있다. 대화의 기술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골프도 마찬가지. 잘 치는 사람보다 더 기억에 남는 사람은 굿샷에 아낌없는 박수를, 실수에 조용한 응원을 건네는 동반자이다.

‘언어의 스윙’의 시작

골프와 언어의 특별한 관계, 이 시리즈는 그 교차점에서 출발한다. 라운드를 더 행복하게, 관계를 더 따뜻하게, 그리고 자기 언어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골프 속 언어의 힘’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골프와 언어는 멀리 있는 두 세계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스윙을 잡는 것도, 멘털을 다시 세우는 것도, 동반자와 편안한 라운드를 만드는 것도 결국 한 마디, 한 호흡에서 시작된다. 골프가 스윙의 예술이라면 이 연재는 ‘언어의 스윙’에 관한 이야기다. 아나운서로,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관찰해온 ‘골프 속에 숨어있는 언어의 미학’을 이제부터 풀어보려 한다.

[writer 김미영]

JTBC Golf 아나운서 출신으로 KPGA·KLPGA·LPGA 정규투어 현장에서 골프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영 스피치 컨설팅(Young Speech Consulting)’ 대표이며 스피치 및 미디어 인터뷰 코칭, KPGA 투어 프로 입문 교육과 클래스 A 커뮤니케이션 과정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15년 차 골프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골프와 말의 리듬이 만드는 심리의 균형을 탐구한다
JTBC Golf 아나운서 출신으로 KPGA·KLPGA·LPGA 정규투어 현장에서 골프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영 스피치 컨설팅(Young Speech Consulting)’ 대표이며 스피치 및 미디어 인터뷰 코칭, KPGA 투어 프로 입문 교육과 클래스 A 커뮤니케이션 과정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15년 차 골프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골프와 말의 리듬이 만드는 심리의 균형을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