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정의 ‘앵글’]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의 저자 신지혜 “핫플은 입지가 아닌 사람이 만든다”
상업용 부동산업계 ‘마당발’, ‘핫플 덕후’가 품은 궁금증
“왜 여기가 뜨게 됐나” 풀어내
골프 매장을 열거나, 골프 관련 팝업 이벤트를 할 때 ‘공간’이 주는 가치는 브랜드의 정체성과도 연결이 된다. 국내 골프업체 상당수가 ‘럭셔리’와 ‘하이엔드’를 지향하고 있어 플래그십 스토어를 청담, 도산공원 등 강남 명품거리에서 운용한다. 강남 접근성이 뛰어난 성수동은 젊은 층을 겨냥한 ‘팝업 매장’ 대상지로 골프업계 관계자들의 선호 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상권도 파악하고 수시로 변하는 소비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는 상권을 꽤 뚫고 있는 상업용 부동산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K를 팝니다>의 저자 박재영에 이어 ‘김기정의 앵글’ 두 번째 인물은 신지혜 STS개발 상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신지혜는 자타공인 ‘마당발’이다. 그가 주도하는 모임만 수십 개에 달한다. 업계에선 “신지혜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만난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0년 전쯤 매일경제신문 부동산부 기자일 때 신지혜 상무를 처음 만났다. 명동, 강남역, 홍대 등 대형 상권이 아닌 소위 ‘골목상권’이 주목받기 시작할 때였다. 경리단길 장진우 골목처럼 다소 낯설고 뜬금없는 곳에 상권이 만들어졌다. 마치 물에 잉크 한 방울이 떨어져 퍼져 나가듯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색을 가지고 지역을 물들였다.
이후 필자가 유통부 기자, 컨슈머 전문기자를 거치며 유통채널, 식음료, 패션 등 소비자 분야를 담당할 때도 신 상무는 골목상권 플레이어들과 함께 소위 ‘핵인싸’ 그룹에 있었다. 최근 그는 소위 뜨는 상권, ‘핫플’을 만든 플레이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이를 담은 책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이란 책을 냈다. 다음은 신 상무와의 일문일답.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이란 책 제목에서 말하는 ‘플레이어’는 어떤 사람들을 의미하나. 평범한 골목을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는 ‘목적지’로 바꾸는 데 역할을 한 사람들이다. 책에서 소개한 플레이어들을 살펴보면 F&B 운영자들이 제일 많고, 이 외에도 콘텐츠(공간)기획자, 디벨로퍼 등이 있다. 공간을 ‘점’이 아니라 ‘장소’로 바꾸는 결정을 하는 모든 주체를 이 책에서는 플레이어라고 정의했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20대부터 뜨는 거리, 줄 서는 식당을 찾아다니는 취미가 있었다. ‘핫플 덕후’다. 1990~2000년대의 핫플은 대부분 하이스트리트에 자리한 잘나가는 매장에 한정됐다. 그러다 명동, 강남역, 신촌이 아닌 새로운 거리들이 약속 장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리단길이나 성수동이 식당이나 카페 이름을 대신했다. 경리단길에서 만나 맥파이와 더부스, 장진우식당을 찾았고, 성수동에서는 어니언과 대림창고에 가고, 자그마치에서 사진을 찍었다. 좁은 익선동 골목에서는 익동다방과 동북아를 찾았다. 여러 핫플을 돌아다니다 보니, “여기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왜 여기가 뜨게 되었는지”를 직접 찾아서 기록한 책을 남기고 싶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가장 먼저 깨닫길 바랐던 한 가지는 무엇인가. 핫플은 입지가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는 점이다. 물론 입지는 중요하지만, 입지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 장소들이 분명히 있다. 왜 하필 그 골목이었는지, 왜 그 가게가 첫 번째였는지를 이해하기 시작하면 도시는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핫플레이스도 몇 가지 필요조건은 있다. 교통 접근성, 배후 인구, 집객시설이나 헤리티지(역사와 분위기)의 존재가 그것이며, 여기에 먼저 자리 잡은 가게들(퍼스트무버)의 선택, 그 뒤를 잇는 플레이어(패스트 팔로어)들의 움직임이 겹치며 만들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 과정을 정리하지 않으면, 핫플은 계속 결과만 소비되고 원인은 사라질 것 같았다.
책에 등장하는 플레이어들의 공통점이라면. 이 동네에 왜 이 가게를 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고, 단기 유행보다 거리의 미래를 함께 상상했으며, 공간·콘텐츠·운영을 따로 보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장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예를 들어줄 수 있나. 글로우서울이 익선동을 선택해 한옥을 활용해 온천마을로 만든 배경, 개항로프로젝트가 선택한 개항로거리와 “마계대학”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창길 대표님의 지역에 대한 위트 넘치는 사랑, 주거지역이었던 연희동을 방문객들의 목적지로 만든 쿠움파트너스의 주민 상생전략 등 핫플레이스는 단순한 기획과 전략이 아닌 지역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필수였다. 즉, 핫플레이스에는 그곳을 만든 플레이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핫플레이스는 만들어지는 것인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책에서 다룬 사례들을 보면 거의 예외 없이 누군가(많은 경우 F&B 운영자) 먼저 리스크를 감수했고, 그 선택을 보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모였으며, 그 흐름을 읽은 기획자나 디벨로퍼가 판을 키웠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사결정이 축적된 결과였다.
단순히 ‘사람이 많이 오는 곳’과 ‘지속 가능한 핫플레이스’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람을 많이 모으는 건 이벤트나 트렌드로도 가능하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핫플은 구조가 다르다. 단골이 생기고, 비슷한 결의 가게들이 모이며, 거리 전체가 하나의 목적지가 된다. 한 가게의 성공이 아니라, 상권이 스스로 확장되는 단계로 넘어갔는지가 가장 큰 차이다.
공간을 만드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은 기획력, 실행력, 감각, 자본 중 무엇일까. 자본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 조건은 아니다. 기획이 없으면 방향을 잃고, 실행력이 없으면 아이디어에서 끝날 수 있다. 감각은 차별화를 만들 수 있지만, 시장과 연결되지 않으면 오히려 위험해지는 경우를 많이 봤다. 결국 가장 중요한 역량은 기획을 실제 공간과 운영으로 옮기는 실행력이다. 특히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골목에 먼저 들어가 매장을 차리고, 불확실성을 감수하며 기획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결단과 실행력이 중요해 보인다.
플레이어 개인의 취향과 시장의 요구는 충돌할 때가 많은데, 이 균형은 어떻게 잡아야 할까. 취향을 버릴 필요는 없지만 그대로 밀어붙여서도 안된다. 자신의 취향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책에 등장하는 플레이어들 역시 이 과정을 반복하며 균형을 잡았다.
서울(또는 한국 도시)의 핫플레이스가 해외 도시와 다른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한국은 공간, 업종, 메뉴에 있어서도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소비자의 반응도 빠르고, 평가도 빠르다. 기회도 많지만 준비가 없으면 더 빨리 사라진다. 결국에는 단순한 매장이 아닌 핫플레이스에 위치한 플레이어가 되어야 지속 가능하다.
핫플레이스는 브랜드가 된다고 볼 수 있나. 물론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게 이름보다 동네 이름이 먼저 떠오른다. 그 순간 상권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된다.
공간 비즈니스에서 수익성과 정체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선택이 더 오래갈까. 정체성이 결국 수익성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느릴 수는 있지만, 정체성이 분명한 공간은 팬을 만들고 오래간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나. 억지로 꾸민 느낌이 없고,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 공간을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2016년 무렵 성수동에 오픈했던 초기의 어니언 성수를 특히 좋아했다. 당시 성수동에는 대림창고, 자그마치, 어니언 정도만 자리하고 있었고, 지금처럼 상권이 형성되기 전의 공장지대 안에서 감각적인 공간을 만난다는 점 자체가 특별한 경험이었다.
상업용 부동산 일을 하며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 현장에서 세운 가설이 실제 사람의 움직임과 매출, 거리의 분위기로 증명될 때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상업용 부동산업계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저 개인에게나 시장 전체로 보나 “지금”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생물과 같고, 흐름에 맞춰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좀 더 많은 거리를 걷고, 좀 더 많은 플레이어들을 만나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막 공간·브랜드·콘텐츠를 시작하려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한 문장을 전한다면. 유행을 따라가기 전에, 이 공간이 5년 뒤에도 존재할 수 있는 구조인지 먼저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핫플레이스를 만드는 플레이어들>은 어떤 사람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나. 핫플레이스를 따라다니는 사람보다 왜 그곳이 핫플이 되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다음 책이나 다음 프로젝트에서 더 깊이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핫플이 된 이후의 이야기다. 어떤 상권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어떤 상권은 급격히 소모되며, 또 어떤 곳은 조용히 사라진다. 그 차이를 만드는 요소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