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GOLF & CULTURE] 침묵이냐 축제냐, 갤러리 문화는 달라도 매너는 같다
골프 관전 문화에도 정답은 없다. PGA투어의 다양한 대회와 4대 메이저 대회, 라이더컵, 프레지던츠컵과 LIV골프는 모두 다른 관전 문화를 갖고 있다. 조용히 침묵하며 보는 것에 집중하든 축제처럼 떠들썩하게 즐기든,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주최 측의 방침을 지키며 선수들이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내는 것이 올바른 관전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어느 곳도 한국처럼 골프 방송을 많이 하는 나라는 없다. 골프의 종주국인 미국도 24시간 골프 프로그램을 트는 방송국은 ‘Golf Channel’이 유일하다. 나머지는 ABC나 NBC 같은 지상파 방송국의 스포츠 채널에서 다른 운동과 같이 내보낼 뿐이다. 일본의 경우에도 ‘골프 네트워크’가 유일한 골프 전문 채널이다.
반면 한국은 SBS골프, SBS골프2, JTBC골프와 스크린골프존에서 종일 골프 방송을 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채널에서 타 스포츠와 함께 골프를 방영한다. 한국 골퍼들은 24시간 골프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고, 전년도 마스터스와 디오픈의 재방송을 볼 수 있으며, 국내외 남녀 프로 대회와 메이저 대회를 생방송으로 즐길 수 있다.
1998년 7월 US여자오픈 대회에서 역전 드라마를 썼던 박세리 선수의 경기를 기억하는가? TV 대신 신문기사로 그 짜릿한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TV의 역할은 골프 관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골프사에서 관전 문화의 혁명을 일으킨 변화는 TV의 발명을 포함해 총 네 번 있었다.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기관과 가정용 TV의 보급은 골프 외적인 요인이었고, 스타디움(Stadium) 코스의 탄생과 LIV골프는 골프 이벤트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진화로 시작된 골프 내부의 필요에 의한 변화였다.
골프 관람 문화 이끈 산업혁명과 TV 보급
골프는 600여 년 전 스코틀랜드의 바닷가 목초지에서 양떼를 몰던 목동이 지팡이로 돌멩이를 토끼 굴에 넣었던 것이 시초였다. 그리고 훗날 귀족들에 의해 규칙이 정해지고 클럽이 설립되며 스포츠의 모습을 띠기 시작했다. 이들의 라운드를 시중들던 캐디들이 상금을 걸고 경쟁하는 프로 골퍼가 되었고, 최초의 프로 대회는 1860년 스코틀랜드 서남 해안의 링크스인 프레스트윅 골프클럽에서 열렸다.
20세기 들어 영국 사회에 중산층 계급이 생겼고, 산업혁명 후 증기기관차로 골프 경기를 보러 여행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갤러리 문화가 시작되었다. 당시의 관전 문화는 선수들을 따라다니며 현장에서 직관하는 경험이었고, 경기 결과를 신문과 라디오를 통해 전해 듣는 수준이었다. 산업혁명이 초래한 이동의 자유와 중산층의 탄생이 골프 관전 문화를 확장시킨 것이다.
이후 유럽과 미국에선 1, 2차 세계대전 사이의 20년간 거대한 골프 붐이 불었다. 특히 부가 집중된 미국의 동부와 서부에 경쟁하듯 명문클럽이 설립됐고, 뛰어난 선수들이 배출되었다. 그리고 골프의 종주국인 영국과 우위를 가르기 위해 대회를 치르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올드 톰 모리스에서 시작해 해리 바든과 제임스 블레이드, 월터 헤이건과 벤 호건으로 이어져 온 프로 골퍼의 역사 중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최초의 셀럽 골퍼는 아널드 파머였다. 1958년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며 전성기를 누렸던 그의 커리어는 당시 미국 가정에 널리 보급된 텔레비전을 통해 확장되었다.
사실 골프만큼 TV 방영에 불리한 스포츠는 없다. 규격화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구기 종목과 달리, 골프는 광활한 벌판에서 작은 공을 치며 걷는 느린 템포의 스포츠이다. 18개 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경기를 수십 개의 카메라에 담아 라이브로 송출하는 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이런 한계 속에서도 시청자들을 TV 앞에 끌어들인 인물이 바로 아널드 파머다. 야구 배팅을 하는 듯한 역동적인 스윙,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공격적인 플레이, 할리우드 배우같이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와 뛰어난 패션감각을 뽐낸 그는 ‘아니의 군단(Arnie’s Army)’이라는 팬클럽을 끌고 다니며 그만의 서사를 써 내려갔다.
갤러리와 TV 중계 고려해 설계된 TPC 소그래스 17번 홀
TV를 통해 인기가 폭증한 덕에 자연히 갤러리 숫자도 늘어났다. 기존 코스에서 소화해낼 수 없는 인파를 수용하고 TV 중계를 위한 공간 확보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골프장이 필요했다. 프로 대회를 주관하는 미국의 PGA투어가 의뢰하여 토너먼트 플레이어스 클럽, TPC라 불린 코스가 미국 전역에 설립되었는데, 시초는 1980년 플로리다주 폰테 베드라 비치에 건설된 TPC 소그래스이다.
이곳은 최경주와 김시우 선수가 우승해 우리에게 익숙한 더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이 열리는 골프장이다. TPC 소그래스는 페어웨이 주변에 경사진 관람 공간을 배치해 갤러리들의 관전을 도왔다. 무엇보다 이곳의 백미는 거대한 호수 위에 떠 있는 17번 홀 아일랜드 그린과 그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갤러리 공간이다. 난이도 높은 16번 파5홀을 지나 파3, 17번 홀에 이르면, 마치 로마의 원형경기장 같은 공간에 가득 찬 갤러리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선수들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순간이 코스 설계자인 피트 다이와 앨리스 다이 부부에 의해 연출된 것이다. 처음부터 관전을 위해 설계된 TPC는 갤러리 이동 동선과 카메라 앵글까지 고려한 미디어와 TV 중계를 위한 인프라로 진화했다. 골프장은 더 이상 골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라이브 음악, 엔터테인먼트 존… 즐기는 이벤트로 변화시킨 LIV골프
골프 관전 문화는 나름의 안정기를 누리는 듯했다. 유러피언 투어와 PGA투어가 시장을 선도했고, 마스터스와 PGA챔피언십, US오픈과 디오픈이 4월부터 7월까지 매달 전 세계의 골퍼들을 열광시켰다. 그런데 이렇게 잔잔한 호수 같던 관전 문화 한복판에 돌을 던진 건,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LIV골프였다.
2022년 발족된 LIV골프의 ‘LIV’는 로마숫자 ‘54’를 뜻한다. 그때까지 남자프로골프대회가 나흘간 72홀 승부로 순위를 정한 것과 달리 LIV골프는 사흘간 54홀로 순위를 정한다. 이 외에도 18홀 모두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샷건’ 방식과 개인전과 함께 팀을 구성해 경쟁하는 새로운 포맷도 도입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LIV골프가 가져온 새로운 바람은 갤러리 관전 문화였다. 골프장을 거대한 파티 공간으로 보고 골프대회를 다양한 축제의 장으로 변화시켰다. 라이브 음악, 디제잉, 엔터테인먼트 존 등 스포츠에서 놀이와 공연 문화로의 전환은 젊은 층의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보는 이벤트’에서 ‘즐기는 이벤트’로의 전환이 LIV골프가 골프 문화에 가져온 변혁이었다.
전통적으로 골프는 침묵의 스포츠였다. 선수가 경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침묵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이는 긴장감을 극대화했으며, 결과에 드라마를 더했다. 기적과 같은 샷을 한 선수는 영웅이 되었고, 실패는 그 어떤 비극보다 더 처참히 조명되었다. 하지만 ‘침묵이 골프의 본질인가, 아니면 특정 시대가 만든 규칙인가?’라는 질문을 LIV골프가 던진 것이다.
스포츠 경기 중 관중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종목은 극소수다. 1000여 개가 훌쩍 넘는 세상의 모든 스포츠 중 골프, 테니스, 양궁, 사격과 같은 스포츠가 유일하게 침묵을 요구한다. 하지만 골프의 경우 이런 전통이 신규 관객의 진입을 제한했고 소셜미디어와 쇼트폼에 익숙한 젊은 세대와의 단절을 초래했다고 평가되었다. LIV골프는 골프의 전통을 파괴했 다기보다,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 묻고 있다.
휴대폰 금지 등 까다로운 규칙 많지만 가장 인기 높은 마스터스
이와 반대로 1934년 이래 한결같이 같은 골프장에서 동일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메이저 대회가 있다. 마스터스 대회의 주최 측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은 관중을 ‘갤러리’라는 단어 대신 후원자라는 뜻의 ‘페이트런(Patron)’이라 부르기를 고집한다.
그리고 페이트런들이 지켜야 하는 금지사항이 많다. 본 경기 중 사진 촬영을 금지하며, 선수들이 플레이하는 순간에는 완벽한 침묵을 요구한다. 코스 내에서 뛰는 것이 금지되고, 연습경기를 제외한 본대회에서는 선수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도, 말을 걸어서도, 사인을 요청할 수도 없다. 노출이 심한 옷이나 슬리퍼도 금지되며, 지나친 음주도 금지된다. 연습경기를 포함한 대회 기간 내내 휴대폰은 대회장 내부로 반입할 수 없으며, 연습경기 중에만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스마트 워치와 태블릿 컴퓨터도 금지 항목이고, 이유식이나 의료 목적을 제외한 외부음식물 반입도 금지다.
하지만 이런 까다롭고 지극히 독재적인 규칙에도 불구하고 마스터스는 전 세계 골퍼들이 평생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어하는 최고의 메이저 대회임에 이견이 없다. 일 년 전에 추첨을 통해 행운의 페이트런을 뽑고, 세컨더리 마켓에서 유통되는 하루 입장권은 1인당 수백만 원을 호가한다.
다른 건 몰라도 한시라도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에 사로잡히는 시대에 이를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모든 메이저 대회는 허용하는 휴대폰을 왜 유독 마스터스만 금지하는 것일까? 다른 대회들은 수많은 스폰서가 있다. 스폰서들의 홍보를 위해서는 더 많은 갤러리들이 휴대폰 사진을 그들의 소셜미디어에 실어 날라 올릴수록 효과가 올라간다. 하지만 마스터스는 후원금을 위한 수많은 스폰서가 필요 없다. 일주일 대회 매출 추정치가 2000억 원에 달하는 터라, 자체적으로 대회를 준비하고 실행할 수 있는 경제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스터스는 코스 및 대회의 사진과 영상의 촬영과 사용을 독점하며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신비주의를 고수해 왔다.
그 결과 페이트런과 선수들은 소음의 근원이 원천 차단된 공간에서 오롯이 경기에 집중할 수 있다. 2025 마스터스 우승자인 로리 매킬로이가 시상식 소감에서 마스터스의 ‘휴대폰 금지 정책(No phone policy)’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감사를 표현했다.
“관중 모두가 코스에서 벌어지는 플레이에 깊이 몰입하고, 현재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경기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Just make everyone so present and so into what were doing about out there on the golf course, It’s a pleasure to play in [that] atmosphere.).”
정답 없는 관람 문화, 주최 측의 방침을 따르는 것이 최선
마스터스와 디오픈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프로 경기를 참관해봤고, 2015 프레지던츠컵과 더 CJ컵@나인브릿지를 준비하고 운영해본 나로서도 무엇이 옳은 관전 문화인지 정답을 내리기는 힘들다.
골프에 하나의 관전 문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PGA투어의 다양한 대회와 4대 메이저 대회, 라이더컵, 프레지던츠컵과 LIV골프는 모두 다른 관전 문화를 갖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선수들을 위한 환호와 관객 자신만을 위한 아우성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대회의 성공적인 결과와 나를 포함한 관중 모두를 위한 응원과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흥분된 광기 사이에는 명확한 선이 그어져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스포츠와 응원 문화를 완성하는 방법이다.
무엇이 올바른 갤러리 문화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은 ‘주최 측의 방침을 따르라’는 것이다. 이는 남의 집에 초대받았을 때, 그 집주인이 정한 기준을 따르는 게 사회통념인 것과 같다.
선수가 샷을 준비하고 실행할 때 휴대폰과 카메라를 포함한 모든 소음을 자제하고, 선수의 샷은 결과를 확인하고 ‘굿샷’이라 외치는 인내심을 보이자. 주최 측의 경기 진행요원의 요청에 따라 걸음을 멈춰야 할 때는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협조하며, 남들에게 나를 드러내기 위해 큰 소리를 지르기보다, 샷에 성공한 선수와 실패한 선수 모두의 심정을 헤아리는 성숙한 응원이 필요하다.
선수들이 대회장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뽐낼 수 있을 때, 갤러리들이 골프장의 아름다운 공간과 멋진 경기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때, 골프대회는 멋진 축제가 될 수 있다. 더불어 이런 축제를 준비하는 주관사, 주인공인 선수들을 관리하고 대회를 운영하는 프로골프협회, 그리고 대회를 위해 최고의 코스 컨디션을 제공하는 골프장 모두가 한마음으로 임할 때 골프는 더 멋진 스포츠로 사랑받는다.
writer 오상준(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