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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이홍렬 “남을 즐겁게 하면 나도 즐거워지는 마법”

  • 이지희
  • 입력 : 2026.02.04 10:36
  • 수정 : 2026.02.04 13:11

후배들의 입을 통해 먼저 들은 이름, 이홍렬.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던 개그계 레전드 방송인을 만났다.

사진설명

“비 온다고 안 치고 눈 온다고 안 치면, 그럼 골프는 언제 치나?”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후배들이 전해준 이홍렬의 한마디는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꼭 한번 만나뵙고 싶다는 생각을 품은 채 3년을 기다렸고 마침내 그와의 특별한 조우가 시작됐다.

이홍렬 골프 인생의 유일하게 남은 100타 탈출 트로피
이홍렬 골프 인생의 유일하게 남은 100타 탈출 트로피
이홍렬 골프공.
이홍렬 골프공.

골프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것으로 압니다. 저는 트로피를 딱 하나 가지고 있어요. 1999년부터 골프를 시작했는데 연습장에도 자주 가고 미국에서도 많이 쳤습니다. 한 신문사에서 저의 골프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연재하려고 서아람 프로를 붙여서 취재를 했어요. 그런데 항상 명랑 골프를 치니 스코어가 줄질 않았어요. 그래서 취재진이 고민하다가 탄생하게 된 게 100타 탈출 트로피입니다. 이글패도 아니고 홀인원도 아니고, 100타 탈출 트로피 가진 사람은 나 하나일 겁니다(웃음).

베스트 스코어는 어떻게 되나요? 82개가 베스트 스코어예요. 동문 골프에서 동기들과 한 팀으로 라운드 중이었어요. 내 공이 파 온으로 그린 위에 잘 올라갔어요. 그런데 그린에 가보니 홀컵까지는 꽤 긴 퍼트가 남아있었어요. ‘이번 게임에서 퍼트를 잘 마무리하면 드디어 싱글패 하나 생기겠구나’ 기대를 했지요. 신중하게 퍼트를 했는데 그만 홀컵을 지나가면서 애매한 길이의 퍼트가 남고 말았어요. 그때 동반자들이 오케이를 줬어야지, 그러면 내가 날 잡고 다 초대해서 싱글 라운드 하지 않았겠어요? ‘멍청이들!’이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그때 그 퍼트가 안 들어가서 82개를 베스트로 기록했습니다.

홀인원 할 때를 대비해서 오래 전에 400만 원짜리 홀인원 보험을 하나 가입했어요. 장기 10년짜리로. 그런데 10년 동안 아무 일이 안 생겼어요. 나중에 현금으로 다 찾았어요. 아쉬운 마음에 보험 원본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습니다.

요즘 근황이 어떠신가요? 방송, 연극, 유튜브 등에 출연하고 강의도 합니다. 2018년 독학으로 유튜브를 시작해, 3년 동안 일주일에 한 편씩 콘텐츠를 만들어 올렸어요. 지금은 이슈가 있을 때 가끔 업로드합니다. 그렇게 7년을 하다 보니 의외의 일들이 들어오더라고요. 무슨 일이든지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해요. 시트콤, 토크쇼에도 출연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디지털배움터 홍보 모델 5년 차예요.

노년 대상 디지털 강의도 합니다. 저는 동기들보다 14년 늦게 34세에 대학을 들어갔어요. 다들 적응 못할 거라고 했는데 무사히 졸업했죠. 100세 시대에 늦은 것은 없어요. 그래서 제 강의 주제도 ‘즐거운 인생, 즐겁게 사는 법’입니다. 저는 눈을 뜨면 오늘도 걱정하지 말고 즐겁게 지내자고 다짐합니다. 즐겁게 사는 법은 매일매일 결심하지 않으면 안 돼요.

1979년 데뷔 후 꾸준히 100개가 넘는 프로그램을 하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이 있나요? 모두 소중하지만 TV 예능 프로그램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송창의 PD와 함께한 ‘한다면 한다’ 코너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그 코너를 통해서 스카이다이빙을 했고 번지점프도 했어요. 당시 40대인 제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번지점프한 것이 화제가 됐어요. 시청자들에게 ‘40대인 이홍렬이 한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줬던 것 같아요.

또 1991년에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유학을 갔어요. 비자 발급이 쉽지 않아서 6개월 뒤에야 가족이 일본으로 합류해 2년간 함께 체류했어요. 프로그램에서 실제 일본 생활을 촬영하고 공항에서 입국 장면도 방영했죠. 당시는 컷으로 찍는 정적인 촬영이 대부분이었는데 무빙으로 연속 촬영을 시도했어요. 추진력 있게 새로운 시도들이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시켰지요.”

사진설명

초록우산 홍보대사로 봉사하고 있으시죠?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한국어린이재단이던 1986년 처음 인연을 맺고, 1998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홍보대사를 맡고 있습니다. 기부금 확보를 위한 자선공연도 수십 차례 했어요. 남수단 어린이에게 자전거를 기부하기

위해 국토종주도 했습니다. 또 에티오피아 어린이 결연 후원 프로젝트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어요. 요즘 저에게 주례 요청을 하면 에티오피아 어린이 한 명을 후원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겁니다. 첫 주례를 봐준 개그맨 한민관도 결혼 후 10년 넘게 후원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를 초록우산으로 이끌어주신 분 중 한 분이 수사반장 최불암 회장님입니다. ‘최불암 회장님이 하시면 무조건이다’ 하고 참여했습니다. 후배들도 ‘이홍렬이 홍보대사면 무조건이야’ 하는 날이 오도록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성장해요. 저는 허참 형님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사람입니다. 허참 형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홍렬아, 나한테 도움받은 걸 나한테 갚을 생각하지 말고 네 후배한테 갚아라. 나도 박상규 형이 그렇게 나를 많이 도와주셨단다.” 그런 취지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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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생이시죠?” 갑자기 서빙하는 학생 앞에서 그가 핸드폰을 꺼낸다. 액정 속에는 현금이 날아다닌다. 핸드폰을 이리저리 돌리자 현금도 따라서 움직인다. 손가락으로 쓱 화면을 잡아 내리니 진짜 현금이 나왔다. 신기한 눈으로 웃음 짓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서빙,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현금을 내밀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성사된 반가운 만남을 마치고 돌아서는데 귓전에 계속해서 그의 말이 맴돌았다. ‘남을 즐겁게 하면 자기도 즐거워지는 마법이 시작됩니다.

[ writer 이지희 ]

현재 국가유산디지털보존협회 부회장. 기획자, 프로듀서, 마케터 등으로 문화예술계 다방면에서 일했다. 베스트 스코어 2 오버 기록을 가진 골프 마니아로 골프와 사랑에 빠진 예술인들의 활동과 에피소드를 연재한다.
현재 국가유산디지털보존협회 부회장. 기획자, 프로듀서, 마케터 등으로 문화예술계 다방면에서 일했다. 베스트 스코어 2 오버 기록을 가진 골프 마니아로 골프와 사랑에 빠진 예술인들의 활동과 에피소드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