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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아나운서의 언어의 스윙] 우리는 왜 쉽게 ‘동반자의 감독’이 되는가

  • 김미영
  • 입력 : 2026.02.11 14:46
  • 수정 : 2026.02.13 14:14

참 신기하게도 골프를 치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누군가의 감독이 돼있다.

사진설명

침묵이 필요한 순간, 응원이라는 이름의 간섭

18번홀 그린 위, 1.5m 남짓한 파 퍼트. 충분히 넣을 수 있는 거리이다. 호흡을 고르고 헤드를 정렬한다. 그런데 그 순간 정적을 깨고 ‘친절한’ 목소리가 훅 들어온다. “김 대표, 이거 무조건 넣어야 해. 알지? 넣으면 오늘 베스트 스코어야. 짧지 않게 쳐야 해, 알았지?” 분명 나 잘되라고 한 말인데, 이상하게 그 말이 귀에 박히는 순간 몸이 굳어버린다. 과연 결과는? “아이고, 아까워라. 김 대표 너무 힘이 들어갔네. 기회였는데”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응원해준 마음은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원망스러웠다.

골프는 참 묘하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우리는 어느새 동반자의 감독이 되어있다.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혹은 안타까운 마음에 툭툭 나오는 조언들. 하지만 타이밍을 잘못 선택한 한 마디는 때로 듣는 사람에게 압박이 되기도 하고, 샷의 리듬까지 흔들어 버린다.

선의가 늘 정답은 아니다

억울할 수도 있다. ‘잘 치라고 응원해준 건데 그게 뭐 어때서?’ 문제는 그 ‘선의’가 종종 빗나간다는 데 있다. 생각해보자. 절호의 버디 찬스에서 터져 나오는 “와!”이건 무조건 들어가지! 버디야 버디! 라는 환호. 하지만 퍼팅 라인에 선 사람에게는 압박이 된다. ‘이 쉬운 걸 못 넣으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몸이 굳어 버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뜨거운 응원이 동반자의 손을 떨게 만드는 부담감으로 바뀌는 건 한순간이다.

반대로 걱정스러운 마음에 건네는 “무리하지 말고 안전하게 끊어가”라는 조언은 어떠할까? 더 좋은 방법을 추천하려는 말인 것은 알겠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듣는 사람의 자존심을 긁을 수도 있다. 오히려 ‘나를 못 믿나?’ 싶은 반발심에 무리한 샷을 하다가 망가지는 경우를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았는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 역시 한때는 ‘열정적인 갤러리’였다. 동반자가 찬스를 잡으면 내가 더 흥분해서 외쳤다. “와! 이글 찬스라니! 꼭 넣어요!” 하지만 내 의도와 상관없이 상황과 타이밍에 따라 응원도, 조언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된다.

응원이 부담으로 바뀌는 결정적 이유

왜 그런 것일까?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는 결과 프레이밍(Result Framing)에 해당한다. 쉽게 말해, 찰랑거리는 물잔을 들고 걷는 것과 같다. 평소라면 편하게 걸어가면 한 방울도 안 흘릴 수 있다.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이거 쏟으면 큰일 나. 절대 흘리지 마!”라고 외친다고 상상해보자. 그 순간부터 멀쩡하던 손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한다. 뇌가 ‘걷는 동작’이 아니라 ‘쏟지 않아야 하는 결과’에 매몰되기 때문이다. 골프도 똑같다. 평소라면 편하게 툭 치면 들어가는 거리다. 몸은 이미 그 동작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동반자가 “이거 무조건 넣어야 해. 라베가 코앞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뇌는 내 앞의 샷을 ‘쏟으면 안 되는 물잔’으로 인식한다.

골프 중계석에서 배운 ‘기다림’이라는 언어

하지만 막상 동반자의 샷을 보고 있으면, 입이 간질거리는 게 사실이다. 특히 너무 좋은 찬스일수록,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그리고 그 해답을 골프 중계석에서 찾았다. 골프 중계를 처음 배우던 날, 선배가 해준 말은 지금도 또렷하다.

“멘트 하지 말고 기다려. 샷이나 퍼팅 할 때는 쉬어주는 타임도 중요해.” 나에게는 이 시간이 너무나 낯설었다. 말을 안 한다고? 5초 이상 정적이 흐르는 것, 이른바 ‘마가 뜨는 상황’은 방송 사고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늘 빈 시간을 말로 꽉 채우는 훈련을 해왔으니까. 하지만 골프 중계에서는 그 ‘멈춤’의 시간도 언어였다. 시청자들이 선수의 호흡과 샷의 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캐스터인 나조차 숨소리를 줄여주는 것. 그때 알게 됐다. 적절한 때에 비워주는 것도 소통임을 말이다. 미리 판정하지 않고, 감정을 섞지 않고, 그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그것이 내가 골프 중계석에서 배운 언어의 첫 번째 규칙이었다.

말이 문제일까? 아니다, 순서가 문제다

이 원칙은 중계석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필드 위 동반자 관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가 필드에서 소통이 어긋나는 이유는 말을 잘못해서가아니라,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같은 말도 샷 전에 나오면 판정이 되고, 샷 후에 나오면 응원이 된다.

“이거 꼭 넣어야 해. 그래야 우리 팀이 이겨”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은 응원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반면 샷이 끝난 뒤, “진짜 아까웠다” “어려운 라이인데, 선택이 좋았다”라고 말하면, 그건 비로소 공감이 된다. 결론은 단순하다. 샷 전에는 말을 비우고, 샷 후에는 응원을 마음껏 채우는 것이다.

최고의 응원은 ‘기다릴 줄 아는 태도’

우리는 필드 위에서 종종 감독이 되려 한다.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하지만 최고의 응원은 기다릴 줄 아는 태도다. “들어갔다!”라는 환호는 공이 땡그랑 소리를 낸 직후에 외쳐도 늦지 않다. 중요한 샷과 퍼팅 앞에서는 그저 따뜻한 눈빛으로 ‘나는 네 선택을 존중하며 지켜보고 있다’는 신호만 보내도 충분하다. 그 기다림이 동반자에게는 가장 편안한 BGM이 된다.

writer 김미영(아나운서·영 스피치 컨설팅 대표)

JTBC Golf 아나운서 출신으로 KPGA·KLPGA·LPGA 정규투어 현장에서 골프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영 스피치 컨설팅(Young Speech Consulting)’ 대표이며 스피치 및 미디어 인터뷰 코칭, KPGA 투어 프로 입문 교육과 클래스 A 커뮤니케이션 과정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15년 차 골프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골프와 말의 리듬이 만드는 심리의 균형을 탐구한다.
JTBC Golf 아나운서 출신으로 KPGA·KLPGA·LPGA 정규투어 현장에서 골프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영 스피치 컨설팅(Young Speech Consulting)’ 대표이며 스피치 및 미디어 인터뷰 코칭, KPGA 투어 프로 입문 교육과 클래스 A 커뮤니케이션 과정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15년 차 골프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골프와 말의 리듬이 만드는 심리의 균형을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