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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준의 GOLF & CULTURE] 오후피 매치클럽에서 본 미국 프레스티지 골프 문화의 정점

  • 유희경 기자
  • 입력 : 2026.05.06 17:15

오후피 매치클럽은 단지 세계적인 코스를 품은 프라이빗 클럽이 아니다. 이곳은 매치플레이 본연의 정신, 과시를 덜어낸 절제된 미감, 그리고 골프를 하나의 문화로 완성하려는 미국 상류층의 취향이 응축된 공간이다. 1박 2일 동안 경험한 오후피는 미국 골프가 왜 여전히 세계 골프 문화를 이끄는지 보여주는 철학과 라이프스타일까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진설명

오후피 매치클럽(Ohoopee Match Club, 이하 OMC)은 그 이름부터 독특하다. 오후피는 아메리카 원주민(미국에선 1990년대부터 인디언 대신 Native American이란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이 조지아주 서배너 공항에서 서쪽으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위치한 지금의 골프장 부지 근처에 흐르는 강에 붙인 이름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라는 뜻을 품은 이름은 최근 설립되고 있는 미국 프라이빗 클럽의 최신트렌드를 그대로 보여준다. 군더더기와 가식이 없는 지역성을 반영하는 이름과 함께 양파 농장이었던 코스 부지에서 따온 심플한 클럽 로고 밑에 뱀 세 마리가 있는 듯 없는 듯 붙어 있다. 이 역시 문명에서 동떨어진 광활한 야생의 땅을 상징한다.

OMC는 지난 20년간 미국의 최상위 프라이빗 클럽 문화가 진화한 과정의 최정점에 서 있다. 부의 과시 대신 ‘순수한 철학’을 공유하고, 대중적 명성보다 ‘공통의 문화적 가치’를 존중하며, ‘자연과 골프의 근본정신’을 추구하는 취향을 지닌 극소수(80명) 회원들의 공간이 OMC이다. 세련된 캐주얼함과 탄탄한 인문학적 요소들이 녹아 있는 공간에서 1박 2일 동안 그들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

사진설명

골프 매치플레이 본연의 정신을 살려 만든 클럽

내가 OMC에 초대받았다고 하니, 대단한 골프 인맥을 갖고 있는 미국 친구들도 빈자리가 있으면 꼭 끼워달라고 부탁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들이 왜 여길 그토록 오고 싶어했는지 알게 되었고, 이런 클럽 하나 정도는 한국에 꼭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설립자 마이클 월래스(Michael Walrath)는 예일대 출신 테크 기업가로 디지털 마케팅이 전문 분야였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상업적 리조트가 아닌 골프 본연의 정신을 살리는 매치플레이가 가능한 클럽을 구상했다.

매치플레이에선 스코어 카드에 적힌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 홀마다 벌어지는 경쟁에서 누가 더 좋은 전략을 펼쳐 더 많은 홀에서 승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매치플레이에 어울리는 코스가 필요했고, 월래스는 플로리다로부터 조지아와 사우스캐롤라이나를 거쳐 노스캐롤라이나 파인허스트까지 이어진 골프에 최적화된 샌드벨트(모래토양) 지역 중 이곳 오후피를 찾아내 세계적인 설계자인 길 핸스에게 코스 설계를 의뢰했다. OMC의 회원이자 아웃포스트 클럽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윌 스미스(Will Smith)는 길 핸스와 함께 코스 설계에 관여했는데, 그는 나와 함께 작년 10월 한국에 왔던 다른 아웃포스트 클럽 회원들도 초대해서 OMC에서 재회할 기회를 만들어 줬다.

첫날 갑자기 불어닥친 한파와 호우를 무릅쓰고 8명이 두 팀으로 나뉘어 코스로 나갔다. 티잉 그라운드에는 그 흔한 티마커가 없었다. 과거의 전통을 살려 전 홀에서 이긴 팀이 적당한 위치를 골라 티샷을 하면 나머지가 따르는 방식이었다.

자연 그대로의 지반을 살린 덕에 두세 개의 홀만 빼고는 페어웨이가 편평했다. 하지만 다양한 홀의 생김새와 코스 밖의 사질토양으로 자연스레 연결된 벙커와 웨이스트 지역, 섬세하게 설계된 그린과 그 주변 공간이 코스의 재미를 극대화시켰다. 홀이 거듭될수록 지금까지 경험한 길 핸스의 코스 중(스트림송 블랙, 캐벗 하일랜드, 레보르드 뉴코스, 발리스히어) 오후피가 최고라는 생각이 커졌다.

OMC 클럽하우스 바 전경.CMC
OMC 클럽하우스 바 전경.CMC

올드머니 룩 같은 절제된 상류층의 감각이 담긴 공간

한때 골프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에도 올랐던 이런 세계적인 코스와 함께 세워진 클럽하우스와 숙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올드머니 룩’이라 할 수 있다. 매스컴이나 패션잡지에서 이런 표현을 쓰기 시작한 지도 꽤 됐다. 대대로 부를 이어온 상류층의 절제된 옷차림을 가리키는 표현인데, 단순히 비싼 옷을 입는다는 뜻이 아니라, ‘돈을 과시하지 않는 익숙한 여유’가 핵심이다. 명품 로고가 없는 차분한 색상에 클래식한 소품을 곁들인 옷차림, 유행보다는 지속성을 추구하고 좋은 소재를 선호하는 취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갑자기 떼돈을 벌어 살 수 있는 감각이 아니라 대대로 보고 경험해서 익숙해진 라이프스타일이다.

절제된 건축 스타일과 로컬 자재의 선택, 실용적인 공간 구성과 운영 방식은 뻔하지 않고 유니크하지만 디테일과 스토리가 살아있는 소품과 가구로 절묘하게 매치되어 ‘올드머니 룩’, 혹은 ‘햄튼 스타일’을 대변하는 미국의 디자이너 랠프 로런도 울고 갈 만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한국 클럽하우스는 이와 정반대다. 불필요하게 거대한 건물에 화려한 조명, 골프와는 전혀 상관없는 값비싼 예술품과 가구를 들여놓고 치장을 했는데 전체적인 조화는 찾아보기 힘들고 어딘지 모르게 촌스럽고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거나 무언가를 과시하려는 분위기가 허다하다. 마치 각기 다른 명품 로고가 박힌 옷과 핸드백으로 온몸을 휘감은 모습이다.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을 많이 다녀서 감각을 키우거나 전문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해서 꾸미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클럽하우스도 그런 모습을 한 곳이 많다.

미국의 OMC나 뉴질랜드의 타라이티(Tara Iti)처럼 월스트리트나 실리콘밸리 출신 억만장자들이 설립한 클럽은 그들이 자라왔거나 동경해 온 ‘절제된 상류층의 취향’을 제대로 보여준다. 올드머니 룩은 ‘콰이어트 럭셔리(Quite Luxury)’ 또는 ‘프레피(Preppy)’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기도 하는데, OMC가 예일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들의 ‘Preppy’한 문화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설립자 월래스와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한 콜린 시핸(Colin Sheehan)과 윌 스미스(Will Smith) 모두 예일대 출신이고, 회원 중 다수가 그렇다. 특히 콜린은 예일대 골프팀의 코치를 맡기도 했는데, 미국 코스 설계의 대부라 불린 찰스 블레어 맥도널드(C. B. Macdonald)가 설계한 예일대학 골프 코스가 지금까지도 세계적인 명문 코스로 평가되는 걸보면 예일대는 미국 골프 코스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콜린은 시종일관 클럽하우스와 코스를 누비며 끊이지 않는 만담으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위기 메이커로 좌중을 압도 했는데, 나를 마주칠 때마다 내가 입고 있던 영국식 복장을 칭찬하며 “Look at this guy and the way he dresses. It’s so classic”이라고 치켜세웠다.

난 그런 그에게, “예일대 졸업생들이 예일대 골프장과 오후피 같은 곳에서 플레이할 수 있는 걸 진즉 알았다면 그 대학을 갈 걸 그랬어”라고 농담을 했다. 뭐 그렇게라도 맞장구를 쳐야 잠시라도 그를 조용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좌) OMC 이정표 (우) OMC 클럽하우스 예일대 골프팀
(좌) OMC 이정표 (우) OMC 클럽하우스 예일대 골프팀
둘째 날 아웃포스트 클럽 멤버들과 함께.
둘째 날 아웃포스트 클럽 멤버들과 함께.

코스를 넘어 문화가 완성되는 순간

둘째 날 아침 일찍 연습장엔 아무도 없었다. 쇼트 아이언으로 천천히 몸을 푼 후 드라이버를 부드럽게 휘둘러 보니 어제 빗속에서 플레이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가끔전날 과음하고도 다음날 희한하게 골프가 잘될 때가 있는데, 그날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잠시 후 내 앞뒤에서 연습을 시작한 친구들이 내가 휘두르고 있는 히코리 클럽을 경이로운 눈으로 쳐다본다. 최신 기술로 1야드라도 더 보내려는 그들의 눈엔 나는 유별나 보일 것이다.

첫날과 달리 둘째 날 아침에는 ‘위스키 루팅(Whiskey Routing)’이라 부르는 코스를 플레이했다. 윌 스미스에 의하면, 설계자 길 핸스와 그의 파트너인 짐 와그너가 최종 18홀의 위치를 정한 후 코스로 쓰기에 너무 좋은 땅이 부지 곳곳에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기존 홀을 전혀 다른 각도에서 공략할 수 있는 티잉 그라운드, 기존 코스의 페어웨이 일부를 활용해서 새로운 그린에 연결시킨 홀 등 구성이 다른 8개 홀을 만들어 ‘위스키 루트’라 부르기로 했다. 회원들은 이틀에 걸쳐 ‘일반 루트’와 ‘위스키 루트’에서 확연히 다른 매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다. 가히 미국적인 실용성이 가득한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었다.

(위) 위스키 루트 매치 플레이 (아래) 드라이빙 레인지
(위) 위스키 루트 매치 플레이 (아래) 드라이빙 레인지

흔치 않은 내륙 샌드벨트 지역을 코스 부지로 선택한 덕에 전날 내린 호우에도 불구하고 배수가 완벽한 코스는 단단하고 빠른 페어웨이와 그린을 자랑했다. 롱 아일랜드에서 온롭 드리스컬과 한 팀을 이뤄 윌 스미스와 크리스 윌슨 팀과 매치플레이를 했다. 엎치락뒤치락하던 경기는 우리 팀이 16번 홀을 이기며 2UP으로 도미(Dormie)가 되었다. 어제 호우 속에 뼈아픈 패배를 했는데 설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17번 파4에서 양팀 모두 보기를 기록하며 매치가 승리로 끝났다.

가벼운 점심식사 후 나를 보러 OMC까지 와준 아웃포스트 클럽 멤버들은 각자 길을 떠났다.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롱 아일랜드, 찰스턴과 워싱턴DC로 돌아갈 그들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마치 내가 양양으로 골프 치러 가는 것처럼 부담 없이 대륙을 횡단해 골프를 치러 온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미국이란 나라가 기막히게도 새삼 크게 느껴졌다.

1994년 네브래스카의 황무지에 건설된 샌드힐스GC가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을 계승한 새로운 형태의 트렌드와 클럽문화를 개척했다면, OMC는 모던 미니멀리스트의 정제된 골프 철학이 완성된 정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들의 골프문화가 여기서 멈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조만간 미국, 혹은 세계의 또 어딘가에 마이크 월래스, 마이크 카이저(밴던 듄스 리조트 설립자)나 릭 케인(타라이티·테 아라이 리조트 설립자) 같은 인물이 새로운 형태의 코스와 문화를 창조할 것이다. 이것이 아직까지 미국식 골프 문화를 이끌고 지탱하는 힘이며 미국을 세계 최고의 골프 국가로 만든 원동력이다.

writer 오상준(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소장)

한국인 최초로 영국에서 골프코스 설계학 석사를 취득한 코스설계자이자 골프 인문학자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골프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을 역임했으며, <Golfweek> 코스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소장과 한국히코리골프협회(www.hickorygolfing.com) 회장으로 골프문화와 코스 미학을 탐구하는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영국에서 골프코스 설계학 석사를 취득한 코스설계자이자 골프 인문학자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골프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을 역임했으며, <Golfweek> 코스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소장과 한국히코리골프협회(www.hickorygolfing.com) 회장으로 골프문화와 코스 미학을 탐구하는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