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식·장종필의 법을 알면 부동산이 보인다 - 월세 시대를 사는 ‘법’: 내 집이라는 ‘소유’에서 주거라는 ‘서비스’로
전세 중심의 주택 시장이 빠르게 재편되면서, 주거를 바라보는 법적 관점도 ‘소유와 자산’ 중심에서 ‘거주와 서비스’ 중심으로 옮겨 가고 있다. 이제 월세 시대의 법은 임차인의 주거 안정과 임대인의 재산권을 대립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양자의 권리와 책임을 균형 있게 조정하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 주택 시장에서 ‘전세’는 단순한 계약 이상의 의미를 지녀 왔다. 서민에게는 무이자로 자산을 불리는 거의 유일한 사다리였고 임대인에게는 규제를 우회해 자금을 조달하는 무이자의 사금융 창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 견고한 구조가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전세사기는 이 시스템이 사실상 수명을 다해가고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징후였다. 이제 주택은 ‘소유하여 시세 차익을 기대하는 자산’에서 ‘거주하며 품질을 따지는 서비스’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우리는 이제 ‘내 집 마련’이라는 오랜 집단적 인식에서 벗어나 주거를 넷플릭스나 유튜브처럼 일종의 ‘구독’ 서비스로 받아들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월세 시대의 법은 더 이상 보증금을 돌려받느냐 마느냐를 다투는 사후적 처방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임차인의 주거권과 임대인의 재산권이 정당하게 맞교환되는 ‘주거 서비스 계약’을 다루는 법이어야 한다. 월세 시대라는 거친 변화 속에서 우리가 새롭게 세워야 할 법적 평형점은 무엇인가.
임차권의 금융 자산화
주거권은 어디까지 보호되어야 하는가
과거 월세는 등기부상에 흔적도 남지 않는 ‘그림자 권리’에 가까웠다. 하지만 월세가 주류가 된 지금 임차인의 월세 납부 이력은 신용평가의 핵심 지표가 되는 ‘금융 자산’으로 변모하고 있다. 성실한 월세 납부자가 우대받는 시대가 반가운 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새로운 법적 쟁점이 놓여 있다. 바로 임차권과 주거권을 어디까지 재산권적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의 문제다.
채권자가 임차인의 거주권 자체를 압류하거나 강제집행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의 최소한을 해치는 것인가, 아니면 정당한 채권 행사의 일환인가. 법은 주거권 보호와 채권 실현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임차인의 주거권을 보호하면서도 임대인의 차임 채권이 금융시장에서 정당하게 유동화될 수 있도록 하는 ‘신용의 법리’가 월세 시대의 첫 번째 과제가 될 것이다.
거주 연속성
징벌적 손해배상인가, 임대인의 경영권 침해인가
현행 ‘2+2년’ 계약갱신청구권을 넘어 ‘3+3년’이나 최대 9년까지 거주를 보장하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임대인의 허위 실거주를 방지하기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자는 논의는 임차인에게 강력한 방패가 될 수 있다. 다만 제도의 칼날이 임차인 보호에만 치우쳐서는 시장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실거주라는 정당한 사유로 자기 재산을 활용하려는 임대인까지 잠재적 위반자로 취급하게 되면, 임대차 시장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 규제 일변도의 법은 결국 임대 매물의 감소를 초래하고 그 부담은 다시 임차인에게 돌아간다. 법은 갱신 거절 사유를 보다 구체적으로 정비하되, 장기 임대를 유지하는 임대인에게는 보유세 감면과 같은 실질적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규제만이 아니라 ‘상생의 유인’이 거주 연속성을 보장하는 보다 현실적인 해법이다.
‘제2의 월세’ 관리비
꼼수 인상과 실비 정산 사이
임대료 상한제 5%를 비웃듯 치솟는 관리비는 월세 시대의 대표적 회색지대다. 월세는 동결하되 관리비를 20만~30만 원씩 올리는 행태는 법의 취지를 우회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크다. 법은 관리비의 성격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관리비는 공용 부분 유지에 들어가는 ‘실비’여야지, 임대인의 수익을 보전하는 ‘우회된 월세’여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관리비 세부 내역 공개를 의무화하고 임대료 대비 관리비 비중이 비정상적으로 높을 경우 임대인에게 증빙 책임을 지우는 장치가 필요하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이나 에너지 비용 급등으로 인한 정당한 관리비 상승까지 일률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임대인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 결국 투명한 비용 공개는 임차인에게는 신뢰를, 임대인에게는 정당한 운영 수익을 보장하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정보의 대칭성
임차인의 신용도 임대인의 담보력만큼 중요하다
전세사기의 본질은 ‘깜깜이 정보’였다. 월세 시대에도 임대인의 세금 체납이나 재정 상태는 임차인의 거주 안정성을 위협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계약 시 국세·지방세 완납증명 제출을 의무화하는 일은 이제 법률적 상식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임대인 역시 ‘어떤 임차인이 들어오는지’ 알 권리가 있다. 매달 차임을 지급해야 하는 월세 계약에서 임차인의 신용 상태나 차임 지급 능력은 임대인의 자산 가치와 직결되는 핵심 요소다. 악성 체납 임차인으로 인해 임대인이 심각한 손해를 입는 사례 역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임대인과 임차인이 서로의 재정 건전성을 확인하는 ‘쌍방향 고지 의무’가 확립될 때, 비로소 시장은 투기장이 아니라 합리적인 거래의 장으로 작동할 수 있다.
수선 의무의 현대화
‘고쳐 쓰는 집’에서 ‘관리받는 주거 서비스’로
전세 시대의 분쟁이 “보증금을 돌려받느냐”에 집중됐다면, 월세 시대의 분쟁은 “이 집이 내가 지불한 돈만큼의 가치를 하느냐”로 옮겨 간다. 월세는 단순히 공간을 빌리는 행위가 아니라 주거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다. 고장 난 보일러를 방치하거나 벽지에 핀 곰팡이를 외면하는 임대인은 법적으로 보자면 적정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민법 제623조의 추상적인 수선 의무만으로는 더 이상 현실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소모품은 임차인이, 보일러나 누수 등 구조적 결함은 임대인이 책임지는 ‘표준 수선 책임 리스트’를 보다 명확히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임대인이 의무를 방기할 경우 임차인이 월세 지급을 거절하거나 수선비만큼 상계할 수 있는 권한도 보다 분명히 정비할 필요가 있다. 대신 임차인의 과실로 인한 훼손에는 엄격한 원상회복 책임을 물어야 한다. 품질은 서비스의 대가이며 책임은 그 사용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임대료 5% 증감
고정된 상수가 아니라 요동치는 변동값
많은 이들이 ‘5% 제한’을 임대료 인상의 천장으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보유세 부담과 고금리는 임대인에게 자산 유지 비용의 증가로 작용한다. 시장 논리에 따라 운영 비용이 오르면 임대료가 조정되는 것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 법은 이를 일방적으로 억누르기만 할 것이 아니라, 시장 상황을 반영해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조율자’가 되어야 한다.
반대로 시세 급락기에는 임차인의 감액청구권이 실질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지금처럼 감액청구권이 유명무실한 상태에 머문다면, 법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셈이다. 이제 임대료는 한 번 계약하면 끝나는 고정값이 아니라, 세제·금리·주변 시세와 맞물려 움직이는 ‘변동값’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조정할 수 있는 보다 신속한 사법적·행정적 패스트트랙이 마련돼야만 임대차 시장의 경직을 막을 수 있다.
소유의 시대에서 거주의 시대로
법의 그릇이 바뀌어야 한다
월세 시대는 우리가 선택한 미래라기보다 경제의 논리가 강제한 현실에 가깝다.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낡은 전세 시대의 법전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법은 더 이상 일방향적인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틀에만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 임차인의 안정적 주거권이 존중받는 만큼, 양질의 공간을 제공하는 임대인의 투자 수익과 재산권 역시 공정하게 보장받아야 한다.
김재식 변호사는 법조계 24년 차로, 주택정책과 부동산 분야에 정통한 ‘생활 밀착형’ 전문가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동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국토부 장관정책자문위원,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 공동주택우수관리 심의위원 등 부동산과 주택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현재 법무법인 에이펙스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한국주택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시장은 쉽게 왜곡되고 그 부담은 결국 우리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월세 시대의 법은 보호와 규제의 언어를 넘어 균형과 책임, 그리고 지속 가능성의 언어로 다시 쓰여야 한다.
[writer 김재식 변호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