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에서 뛰고, 춤추고, 자전거 탄다
페어웨이의 재발견…골프장이 문화·레저 플랫폼으로 변신
골프장은 더 이상 골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최근 골프장들은 이용객 다변화와 수요 정체라는 과제 속에서 라운드 중심의 운영을 넘어 새로운 공간 활용에 나서고 있다. 잘 관리된 자연환경과 카트도로, 클럽하우스 등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콘서트와 러닝, 카트 투어, EDM 파티, 자전거 라이딩 등 다양한 문화·레저 콘텐츠를 선보이며 골프장을 스포츠와 관광, 라이프스타일이 공존하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확장하는 모습이다. 골퍼뿐 아니라 일반 방문객까지 끌어들이며 지역 관광과 상권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는 골프장의 대표적인 변신 사례를 소개한다.
서원밸리 자선 그린콘서트
골프장을 시민에게 돌려주다
골프장이 하루 동안 거대한 야외 공연장으로 변신한다. 회원제 골프장인 서원밸리CC는 매년 코스를 일반에 무료 개방해 자선 콘서트를 여는 국내 유일의 골프장이다. 2000년 첫 행사를 시작한 ‘서원밸리 자선 그린콘서트’는 올해로 22회를 맞으며 골프장을 대표하는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그린콘서트는 골프장 개방을 넘어 나눔의 의미까지 담고 있다. 콘서트와 함께 운영되는 바자회와 먹거리 부스의 수익금은 전액 자선기금으로 사용되며,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과 지역 축제를 결합한 대표 사례로 평가받는다. 지금까지 누적 관람객은 62만 명, 누적 자선기금은 약 7억3000만원에 달한다.
행사 당일 골프장은 공연장뿐 아니라 가족형 축제 공간으로 꾸며진다. 본 공연에 앞서 마술쇼와 에어바운스, 씨름대회, 페이스페인팅, 댄스 챌린지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전미라 테니스 아카데미와 경품 이벤트도 함께 마련된다. 골프를 치지 않는 방문객도 하루 종일 머물며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축제인 셈이다.
무대 역시 화려하다. 올해는 장민호, 손태진, 백지영, 슈퍼주니어 L.S.S., 딘딘, 알리, 정동하 등 트로트와 K-팝, 발라드, 포크를 아우르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참여했다. 해외 팬들도 찾는 행사로 성장하면서 이제는 골프장을 대표하는 한류 콘텐츠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서원밸리 그린콘서트가 20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골프장은 골퍼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라는 철학이 있다. 하루 동안 회원제 골프장을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공연과 나눔, 체험을 결합한 이 행사는 골프장의 공간 활용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여준 대표 사례로 꼽힌다.
오크밸리 힐스 나이트 레이스
골프장 카트도로가 러닝 코스로
라운드가 끝난 밤, 골프장 카트도로는 수백 명의 러너들이 달리는 마라톤 코스로 바뀌었다. 오크밸리는 지난해 국내 최초로 야간 골프장을 활용한 러닝 이벤트 ‘힐스 나이트 레이스’를 열며 골프장 공간 활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행사는 러닝 인구 증가와 함께 차별화된 코스를 찾는 수요에 주목해 기획됐다. 일반 도로나 공원이 아닌 골프장의 능선과 카트도로를 정식 러닝 코스로 활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낮에는 골퍼들이 이용하던 공간이 밤에는 스포츠와 축제를 즐기는 무대로 변신하며 색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지난 4월 열린 첫 행사에는 총 824명이 신청해 755명이 참가하며 91.6%의 높은 참가율을 기록했다. 러닝 외에도 브랜드 체험부스와 웜업 프로그램, 가수 션의 축하 공연, 럭키드로우 등을 함께 운영해 단순한 달리기 대회가 아닌 스포츠 페스티벌 형태로 꾸며졌다.
참가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업다운이 살아있는 골프장 지형과 야간 조명이 어우러진 코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러닝 대회”라는 평가를 받았고, 관련 콘텐츠는 SNS와 온라인을 통해 최대 336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오크밸리는 이번 행사를 계기로 골프장을 스포츠와 문화, 웰니스가 결합된 복합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확장하겠다는 계획이다. 앞으로 참가 규모와 콘텐츠를 확대해 힐스 나이트 레이스를 오크밸리를 대표하는 시그니처 스포츠 이벤트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태기산CC 카트 투어 프로그램
라운드 대신 카트 타고 골프장 여행
골프장을 꼭 라운드를 해야만 즐길 수 있는 공간일까. 태기산CC는 이 같은 고정관념에서 출발해 비골퍼도 골프장을 경험할 수 있는 ‘카트 투어’를 선보인다. 행사는 카트를 타고 골프장 곳곳을 둘러본 뒤 잔디를 직접 걸어보고, 퍼팅 체험과 포토타임까지 즐기는 체험형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약 40분 동안 진행되는 투어는 최대 5명까지 함께 이용할 수 있으며, 8kg 미만 반려견도 동반할 수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해에는 하루 두 차례 운영하며 약 800건의 이용 실적을 기록했고, 특히 골프를 치지 않는 가족과 반려동물 동반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골프장을 경기장이 아닌 자연과 휴식을 즐기는 공간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꼽혔다.
올해는 운영 방식도 일부 달라진다. 해발 700m에 위치한 태기산 나인CC의 자연경관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문화·라이프스타일 콘텐츠 성격을 강화했다. 운영 시간은 오후 5시 한 차례로 조정하고 당일 전화 예약제로 운영해 보다 여유로운 체험을 제공할 계획이다.
골프장 관계자는 “골프를 치지 않아도 누구나 골프장의 자연과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카트 투어의 취지”라며 “앞으로도 골프장을 다양한 체험 콘텐츠가 가능한 공간으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라비에벨CC 듄스야 댄스파티
페어웨이가 클럽으로
골프장 페어웨이가 음악이 흐르는 야외 파티 공간으로 변신했다. 라비에벨CC는 재작년 처음 선보인 ‘듄스夜! 댄스야’를 통해 골프와 EDM 공연을 결합한 이색 콘텐츠를 선보이며 골프장을 스포츠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일반적인 라운드를 넘어 음악과 축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골프장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행사는 오후 2부 샷건 방식으로 라운드를 마친 뒤 페어웨이 특설무대에서 EDM 공연을 즐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단순히 공연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골프와 음악, 축제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참가비 일부는 지역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해 나눔의 의미도 더했다.
지난해에는 DJ R2를 비롯해 키썸, 김창열, 박군, R.ef, 정동하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무대에 올라 골퍼들과 함께 한여름 밤 축제를 만들었다. 희망자에게는 일반 18홀이 아닌 20홀 라운드를 제공하고, 5인승 카트의 페어웨이 진입을 허용하는 등 라운드 자체의 재미를 높인 점도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라비에벨CC는 ‘듄스夜! 댄스야’를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골프장을 대표하는 여름 문화 콘텐츠로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젊은 골퍼와 신규 고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통해 골프장의 공간 활용 범위를 지속적으로 넓혀나갈 방침이다.
중문CC ‘제주&교촌 미니벨로 페스타’
PGA 코스를 미니벨로로 달린다
골프장 공간 활용은 제주에서도 이어진다. 골프장 카트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이색 축제가 제주에서 열린다. 중문CC는 오는 9월 제주관광공사와 교촌치킨이 함께하는 ‘제주&교촌 미니벨로 페스타’를 개최하는 것. 골프장 코스를 미니벨로 라이딩 무대로 개방하는 행사로, 골프장을 스포츠와 관광,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 공간으로 활용하려는 새로운 시도다.
이번 행사는 골프장 코스의 특성을 적극 활용한 것이 특징이다. 참가자들은 중문CC의 카트길을 따라 라이딩을 즐기며 평소 골퍼들만 경험할 수 있었던 필드를 색다른 방식으로 만난다. 한라코스는 약 1.7㎞의 경쟁 라이딩 코스로, 해안코스는 제주 바다 풍경을 감상하는 4㎞ 힐링 라이딩 코스로 운영된다. 클럽하우스 주변에는 미니벨로 전시와 시승, 이벤트 게임존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될 예정이다.
중문CC가 골프장을 문화·레저 콘텐츠에 개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골프장 카트길을 활용해 개최한 ‘포켓몬런’은 참가자 모집 2시간 만에 4000명이 마감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행사 이후 11월 골프장 내장객은 전년 대비 9%, 도외 방문객은 23% 증가하는 등 관광 홍보 효과도 확인했다. 이번 미니벨로 페스타 역시 골프장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확장하려는 시도의 연장선에 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자전거 라이딩과 K-푸드 콘텐츠를 결합한 1박 2일 체류형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참가자들의 지역 숙박과 상권 소비를 유도해 중문관광단지 활성화에도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된다. 골프장을 단순한 스포츠 시설이 아닌 지역 관광의 거점으로 활용하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고윤철 중문골프장 총지배인은 “중문골프장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체육시설인 만큼 다양한 세대와 취향을 아우르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자 한다”며 “앞으로도 중문관광단지 활성화와 골프장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콘텐츠라면 적극적으로 협업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