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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아나운서의 언어의 스윙] ‘루키’의 언어는 다르다

  • 김미영
  • 입력 : 2026.07.22 17:42
  • 수정 : 2026.07.22 18:07

루키는 나이가 아니라 태도다. 도전을 선택하는 말 한마디로 우리는 다시 성장한다.

사진설명

“저는 일단 거리가 되면, 끊어 가는 것을 몰라요. 무조건 질러야죠.” LPGA에서 활약 중인 김세영 선수가 첫 우승 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역시 ‘루키의 패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챔피언을 만나며 알게 됐다. 이 말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를 ‘루키’로 만드는 언어에서 나온다는 것을.

메이저 대회에서 만난 루키들, 그들의 언어도 ‘루키’였다

올해 상반기 중계방송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루키’라는 두 글자를 떠올릴 것이다. 특히 메이저 대회가 몰려 있었던 6월은 잊을 수가 없다.

15년 동안 KPGA 선수권대회 중계 시상식 진행을 맡아 왔지만, 최연소 기록이 경신되는 순간은 유독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챔피언 인터뷰를 나누다가 더 놀랐다.

“최연소 우승인 줄 몰랐어요. 앞으로 더 도전하고 싶어요.” 20세 2개월 만에 우승한 문동현 선수에게는 ‘최연소’라는 수식어보다 더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였다.

그리고 다음 주, 제40회 메르세데스-벤츠 한국여자오픈 시상식 중계 현장에서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파이널 라운드는 ‘슈퍼 루키’라 불리는 김민솔 선수와 현재 아마추어 신분인 국가대표 양윤서 선수의 접전이었다. 최종라운드를 앞둔 양윤서 선수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마추어라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챔피언조 경험 자체가 소중하고요. 우승하면 영광이겠지만 결과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승한 김민솔 선수의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 역시 ‘성장’이었다. 세 선수의 말은 약속이나 한 듯 닮아 있었다.

사실 골프에서 메이저 대회는 경험의 무대라 불린다. 큰 무대일수록 압박이 상당해 산전수전 겪은 베테랑들이 유리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일주일 차이로 열린 두 메이저 대회의 우승 트로피가 모두 루키들에게 돌아갔다. 어쩌면 그 답은 완벽한 스윙이 아니라 언어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루키의 언어’ 그리고 1998년 US 오픈 박세리 선수

루키의 언어란 나이가 어린 선수의 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능성을 먼저 보는 언어를 말한다.

그래서일까. 현장에서 선수들과 인터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박세리 선수가 떠올랐다. 모두가 기억하는 1998년 US여자오픈, 맨발로 물가에 들어가 공을 쳤던 바로 그 장면 말이다. “와…. 이거는 불가능할 수 있겠구나. 확률적으로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도 그때는 그 샷을 그냥 도전하고 싶었어요.” US여자오픈 특집 방송에서 했던 박세리 선수의 인터뷰였다.

이어진 박세리 선수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경험으로 인해서 내가 두 번 다시는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했죠. 그때는 그 중요한 순간임에도 경험을 하고 도전을 해보고 싶었던 이유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 말 속에 루키의 언어가 있었다. 완벽해서가 아니라 경험하기 위해, 안전해서가 아니라 배우기 위해 선택한 마음이었다.

박세리 선수는 그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그리고 나서 샷을 했는데, 딱 공을 맞는 순간 나는 공이 어디로 나갔는지 못 봤어요. 그런데 내 손에 느껴진 감은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각이었어요. 그게 최고의 나의 샷이었던 거지. 인생샷이라고 해야 되나.” 나는 이 대목이 참 좋았다. 박세리 선수는 그 샷을 점수나 우승으로만 기억하지 않았다. 손에 남은 감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무대, 가장 어려운 순간, 가장 낮은 확률 앞에서 남은 것은 결국 “도전하고 싶었다”는 마음과 “처음 느껴본 감각”이었다.

50대 챔피언, 최경주에게서 들은 루키의 언어

그렇다면 나이가 들고 구력이 쌓이면 우리의 언어는 반드시 조심스러워질까. 꼭 그렇지는 않다. 최경주 선수가 그 답을 보여준다. 54세, KPGA 최고령 우승을 기록했던 SK텔레콤 오픈 대회 현장에서 나는 그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저는 여전히 필드에서 계속 배웁니다.” 그리고 얼마 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물었다. “54세 최고령 우승 기록을 다시 경신할 의지가 있나요?”

이어진 답변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동안 우승을 많이 해봤지만, 대회 시작 전에 한 번도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이전에는 환갑까지 선수 생활을 하겠다고 했는데 수정하겠습니다. 인생은 70살부터라고 합니다. 꿈나무들과 오래도록 현역으로 뛰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 말에 답이 있었다. 챔피언은 경험이 쌓여도 스스로에게 루키의 언어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도전하고 싶었다”라고 말한 20살의 박세리. “계속 배운다”라고 말하는 50대의 최경주. 한 사람은 전설이 되기 전의 루키였고, 한 사람은 전설이 된 베테랑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언어는 닮아 있다. 경험을 핑계로 닫히지 않는 언어. 나이를 한계로 말하지 않는 언어. 다음 샷 앞에서 여전히 배우는 사람의 언어.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루키의 언어이다.

내 안의 루키를 깨우는 말

김세영 선수의 “무조건 질러야죠”, 박세리 선수의 “그 샷을 그냥 도전하고 싶었다”, 최경주 선수의 “계속 배운다”라는 말은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 있다. 끝났다고 말하지 않는 것. 안 된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 이 말들은 모두 다음으로 가는 문을 열고 있었다.

우리는 살면서 자주 반대의 말을 한다. “이 나이에 뭘 새로 시작해.” “괜히 했다가 망하면 어떡해.” 이 말들은 현실적인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일 때가 많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도전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접어두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루키의 언어가 필요하다. “이 나이에 뭘 해” 대신 “지금부터 하나 배워보자.” “괜히 했다가 망하면” 대신 “이 경험에서 하나는 얻겠지”라고 바꿔보자.

말은 내가 어디를 보고 서 있는지를 바꾼다. 같은 상황 앞에서도 한 사람은 끝을 보고, 한 사람은 다음을 본다. 그 차이가 스윙을 바꾸고, 선택을 바꾸고, 결국 삶의 방향까지 바꾼다. 내 안의 루키를 깨우는 일은 오늘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 하나를 바꾸는 것, 그 작은 방향 전환에서 다시 시작된다.

[writer 김미영(아나운서·영 스피치 컨설팅 대표)]

JTBC Golf 아나운서 출신으로 KPGA·KLPGA·LPGA 정규투어 현장에서 골프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영 스피치 컨설팅(Young Speech Consulting)’ 대표이며 스피치 및 미디어 인터뷰 코칭, KPGA 투어 프로 입문 교육과 클래스 A 커뮤니케이션 과정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15년 차 골프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골프와 말의 리듬이 만드는 심리의 균형을 탐구한다.
JTBC Golf 아나운서 출신으로 KPGA·KLPGA·LPGA 정규투어 현장에서 골프 전문 아나운서로 활동해왔다. 현재는 ‘영 스피치 컨설팅(Young Speech Consulting)’ 대표이며 스피치 및 미디어 인터뷰 코칭, KPGA 투어 프로 입문 교육과 클래스 A 커뮤니케이션 과정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15년 차 골프 아나운서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서 골프와 말의 리듬이 만드는 심리의 균형을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