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뉴
  •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 매경GOLF로고
    • 정기구독
  • 검색

김재식·장종필의 법을 알면 부동산이 보인다 - 스크린골프와 저작권, 창작과 혁신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 김재식
  • 입력 : 2026.07.24 15:03

현실 공간을 디지털로 옮기는 시대, 골프코스 설계도면은 어디까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최근 대법원은 스크린골프에 구현된 실제 골프코스를 둘러싼 저작권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이번 판결은 골프 산업을 넘어 디지털트윈 시대의 창작과 기술 혁신이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다.

사진설명

스크린골프는 이제 낯선 산업이 아니다. 골퍼들은 실내에서 실제 골프장을 옮겨 놓은 듯한 코스를 돌고, 화면 속 페어웨이와 벙커, 그린을 보며 전략을 세운다. 그런데 이 디지털 공간에 구현된 골프코스가 단순한 데이터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창작물을 다시 옮긴 것인지에 대한 법적 질문이 제기됐다.

지난 2월 26일 대법원은 국내 스크린골프 산업과 지식재산권 분야에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 판결을 내놨다. 골프 코스 설계업체들이 골프존을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이날 대법원은 국내 설계사들이 낸 사건과 미국 설계사가 낸 사건을 함께 같은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쟁점은 단순하지 않다. 스크린골프 회사가 실제 골프장을 디지털 공간에 구현하는 과정에서 골프코스 설계자의 창작적 권리를 침해했는지 여부다. 이번 판결은 단순히 스크린골프 이용요금이나 특정 기업의 손익 문제를 넘어, 현실 세계를 디지털로 재현하는 기술이 어디까지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지에 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진설명

골프코스를 둘러싼 권리관계, 오래된 숙제

그동안 법원은 골프코스를 둘러싼 권리관계에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다. 실제로 과거 골프장 운영사들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골프코스가 저작권법상 보호될 수 있는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보면서도, 그 저작권은 운영사가 아니라 설계자에게 귀속된다고 보아 운영사의 저작권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골프장이 투입한 상당한 투자와 노력을 무단으로 이용한 행위에 대해서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책임을 인정한 바있다. 골프코스라는 결과물을 둘러싸고 누가, 어떤 근거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가 오랫동안 정리되지 않은 채남아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결이 다르다. 이번에는 골프장 운영사가 아니라 설계업체들이 직접 원고로 나섰다. 국내 설계사들과 미국 설계사가 각각 별도로, 자신들이 창작한 골프코스 설계도면과 설계 결과물이 독자적인 창작성을 가지며, 이를 디지털 공간에서 구현하는 과정에서 저작권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급심의 엇갈린 판단, 대법원은 창작성 판단을 다시 요구했다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각 골프코스가 설계자의 창조적 개성을 담은 저작물에 해당한다고 보아 설계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항소심은 결론을 뒤집었다.

항소심은 골프코스가 경기의 묘미를 끌어올리기 위한 기능적 요소에 의해 좌우되고, 클럽하우스나 진입로, 홀의 배치 순서 역시 이용객의 편의와 안전, 운영의 효율을 우선해 정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자연 경관과 어우러진 코스의 아름다움도 설계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빚어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요컨대 기능과 제약이 표현을 압도하는 영역이라는 판단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대법원의 판단이다. 대법원은 골프코스 설계가 경기 규칙이나 지형 조건 등 다양한 제약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창작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설계자의 선택과 배치, 구성 방식에 창조적 개성이 반영될 수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은 저작권법상 보호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골프코스 설계자는 골프 규칙 등에 따른 제한이나 조성 부지의 지형에 따른 제약 등을 고려하면서도, 골프코스를 이루는 여러 구성요소들을 다양하게 선택·배치·조합하는 등으로 다른 골프코스나 개별 홀과는 구별되도록 창조적 개성을 발휘하여 골프코스를 설계할 수 있다”라고 판시했다.

또 “골프코스 설계에 수반되는 실용적·기능적 요소에 따라 골프코스 설계자의 창작적인 표현에 현실적인 제한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골프코스 설계도면의 창작성이 일률적으로 부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보았다.

같은 기능적 제약 아래에서도 설계자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면, 그 선택의 폭에 창작이 깃든다는 것이다. 기능에 종속된 영역이라는 이유로 창작성을 일괄적으로 부인해 온 그간의 시각에, 대법원이 분명한 단서를 단것으로 읽힌다.

다만 저작권 침해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이 곧바로 저작권 침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저작물성을 보다 면밀히 심리하라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했으며, 실제 침해 범위와 책임의 구체적 내용은 환송심에서 다시 판단하도록 했다.

결국 설계도면과 골프코스가 어느 범위까지 창작적 표현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 그리고 디지털 구현 과정이 실제로권리 침해에 해당하는지는 환송심에서 다시 가려질 전망이다.

나아가 침해가 인정되더라도 보상의 크기를 어떻게 매길지는 또 다른 숙제다. 그간의 재판에서 설계자의 기여도는 사건에 따라 영업이익의 1%에서 30%까지 폭넓게 엇갈렸다. 창작의 몫을 어떻게 계량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환송심이 떠안은 가장 까다로운 과제 가운데 하나다.

디지털 트윈 시대, 현실 공간은 어디까지 복제될 수 있나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골프 산업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골프장의 권리 다툼이 좀처럼 결판나지 않았던 데에는 현실적인 사정도 있었다. 설계의 가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실제 골프장을 그대로 옮겨 담을 기술이 마땅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정밀한 항공 촬영과 3차원 그래픽이 현실 공간을 거의 그대로 복제해 내면서, 그동안 묻혀 있던 질문이 비로소 표면으로 떠올랐다.

오늘날 디지털 트윈,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자율주행 시뮬레이션 기술은 현실 공간을 정밀하게 재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미 제조 현장에서는 공장 전체를 가상 공간에 복제해 생산 라인을 미리 시험하고, 도시행정에서는 도로와 건물을 그대로 옮긴 디지털 모형 위에서 교통과 재난을 시뮬레이션한다.

자율주행차는 실제 도로를 정밀하게 본뜬 가상 환경에서 수많은 주행 상황을 미리 학습하고, 게임과 영화는 실재하는 거리와 건축물을 배경으로 빌려 온다. 도시와 건물, 도로와 지형, 산업시설과 문화유산까지 현실 세계 전체가 데이터로 측정되어 디지털 공간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핵심적인 문제는 이러한 재현이 어디서부터 타인의 창작에 대한 침해가 되는가이다. 똑같은 건물을 찍은 사진과 그 건물을 3차원으로 정밀하게 복원한 모형은 법적으로 같은 행위인가. 누군가 설계하고 조성한 공간을 데이터로 옮기는 일이 측량과 기록의 영역인지, 아니면 창작물의 복제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경계는 아직 또렷하지 않다.

골프코스를 둘러싼 이번 다툼은 그 경계가 정면에서 시험대에 오른 사례다. 골프장이라는 좁은 무대에서 내려진 판단이, 머지않아 도시와 산업 전반의 디지털 재현에 적용될 기준의 원형이 될 수 있다.

창작 보호와 기술 혁신, 균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가치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창작자와 설계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이다. 창작적 노력과 전문성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면 혁신의 토대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과도한 독점권이 기술 발전과 산업 혁신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현실 세계를 디지털로 구현하는 행위 자체가 지나치게 제한된다면 새로운 산업의 성장 가능성 역시 위축될 수 있다. 어느 쪽으로든 지나치게 기울면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작지 않다.

결국 이번 사건의 본질은 어느 한쪽의 승패가 아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에 창작의 보호와 기술 혁신이 어떤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의 출발점에 가깝다. 앞으로 진행될 환송심은 단순한 스크린골프 소송을 넘어, 대한민국이 디지털 트윈 시대의 지식재산권 질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writer 김재식 변호사]

사진설명

김재식 변호사는 법조계 24년차로, 주택정책과 부동산 분야에 정통한 ‘생활 밀착형’ 전문가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동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국토부 장관정책자문위원,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공동주택우수관리 심의위원 등 부동산과 주택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현재 법무법인 에이펙스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한국주택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설명

장종필 변호사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UC 데이비스 로스쿨에서 연수(LL.M.)를 마쳤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인천도시공사 등 주요 공기업의 자문 및 소송을 맡았으며, 현재 법무법인(유한) 에이펙스의 파트너 변호사로서 건설·부동산 기업과 신탁사, 상장 법인 등의 법률 자문 및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