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뉴
  •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투브
  • 매경GOLF로고
    • 정기구독
  • 검색

구관이 명관? 프로들이 낡은 클럽을 계속 쓰는 이유

  • 진규성
  • 입력 : 2026.08.12 11:21
  • 수정 : 2026.08.12 11:23

프로의 백은 늘 최신 제품으로만 채워져 있을까. 의외로 답은 ‘아니다’. 매년 새로운 기술과 모델이 등장하지만, 투어 현장에는 여전히 이전 세대 클럽을 믿고 사용하는 선수들이 있다.

스코티 셰플러(AFP 연합뉴스)
스코티 셰플러(AFP 연합뉴스)

골프 장비업체들은 해마다 신기술로 포장한 고가의 신제품을 앞다투어 내놓는다. 대부분의 프로도 이 흐름을 따라간다. 하지만 그 최신 클럽을 누구보다 먼저 받아볼 수 있는 정상급 선수들 중에도, 몇 년 혹은 십수 년 된 구형 클럽을 백에서 빼지 않는 이들이 있다. 계약사가 새 모델을 안겨줘도 마다한다. 이유는 하나다. 손에 익은 감각과 신뢰다.

저스틴 토머스(AFP 연합뉴스
저스틴 토머스(AFP 연합뉴스

원하는 구질 맞춰 구형 드라이버 사용 중인 스코티 셰플러

세계 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는 2025년 테일러메이드가 신형 Qi35 드라이버를 내놨지만 2024년형 Qi10을 그대로 썼다. 2026시즌에도 후속작Qi4D를 시험 삼아 백에 넣었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Qi10으로 돌아갔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이유는 이렇다. 그는 “새 드라이버에서 분명 나아진 부분을 봤다. 다만 내가 코스에서 구사하는 여러 샷들, 특히 티샷에서만큼은 아직 그 클럽을 믿고 휘두를 수가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신형 드라이버는 스핀양이 훨씬 일정했고 볼 스피드도 더 빨랐다. 수치로는 분명한 진화였다. 그런데 신형 드라이버로 오른쪽으로 밀어치는 페이드샷을 시도하면, 페이스 정중앙에 정확히 맞혀도 공이 자꾸 왼쪽으로 감기며 의도한 것과 다른 구질이 나왔다는 것이다. 스펙상 수치가 좋아졌다고 해서, 자신이 원하는 구질을 정확히 구현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PGA투어 통산 3승의 악샤이 바티아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는 2026시즌 첫 대회에서 캘러웨이의 신형 드라이버 퀀텀 트리플 다이아몬드 맥스를 시험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2022년형 캘러웨이 로그 ST로 돌아왔다. 그리고 로그 ST와 함께 2026년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했다.

유현조(KLPGA)
유현조(KLPGA)
김민솔(KLPGA
김민솔(KLPGA

무조건 긴 비거리보다 정확도 택한 저스틴 토머스

두 번의 PGA 챔피언십을 포함해 통산 16승을 거둔 저스틴 토머스는 2015년형 타이틀리스트 915Fd 5번 우드를 10년째 백에 넣고 있다. 그가 밝힌 이유는 신형 5번 우드가 오히려 자신이 원하는 거리보다 더 나가버린다는 것이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정확한 거리를 내주는 것은 타이틀리스트의 낡은 우드였다. 롱게임에서 거리보다 정확도를 택한 셈이다.

여자 골프 세계 랭킹 1위인 넬리 코다도 마찬가지다. 그는 2026시즌을 앞두고 드라이버를 최신 2026년형 테일러메이드 Qi4D로 바꿨지만, 2021년형 핑 G425 하이브리드만큼은 그대로 뒀다. 백에서 가장 오래된 클럽이다. 그는 롱 어프로치나 정교함이 필요한 좁은 홀 티샷에서 이 클럽을 쓴다고 밝혔다.

검증된 이전 세대 아이언을 사용 중인 유현조와 김민솔

현조는 2026년 DB 위민스 챔피언십에서 우승 당시 드라이버는 최신 핑 G440 LST였지만, 아이언만큼은 이전 세대 모델인 2023년형 핑 i230(5번~웨지)을 그대로 썼다. 유현조는 KLPGA 2026시즌 그린 적중률 77.0833%(7월 7일 기준)로 2위에 올라 있을 만큼 그린 공략 능력이 돋보이는 선수다. 신형 드라이버로 거리를 늘리면서도, 어드레스 안정감과 거리감이 검증된 아이언은 굳이 바꾸지 않은 것이다.

이전 세대의 아이언 모델을 고집하는 건 유현조만이 아니다. KLPGA투어의 초신성 김민솔은 최신 우드를 쓰면서도, 아이언만큼은 2019년형 타이틀리스트 620 CB를 사용한다. 그는 이 아이언으로 한국여자오픈골프선수권대회에서 첫 메이저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 밖에 빅토르 호블란(2018년형 핑 i210 아이언), 렉시 톰슨(2009년형 코브라 S2 포지드 아이언)도 오래된 아이언으로 투어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민지(KLPGA)
박민지(KLPGA)

10년 된 퍼터로 20승 기록한 박민지

퍼터는 감각이 가장 예민하고 선수들마다 선호가 가장 갈리는 클럽이다. 박민지는 이미 오래전 단종된 2015년형 핑 카덴스 TR 케치 미드 퍼터를 10년째 사용하고 있다. 2017년 프로 데뷔 이후 쌓은 KLPGA투어 통산 20승을 전부 핑골프 클럽과 함께 만들어 냈고, 그 중심에 이 퍼터가 있다. 지난 Sh수협은행·MBN 여자오픈에서 통산 20승 고지에 오른 뒤, 그는 단종된 퍼터를 계속 만들어 준 용품사에 고마움을 전하며 말했다. “10년 동안 연습한 퍼터만큼 새로운 퍼터로 감을 익히려면 10년 치 연습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퍼터는 익숙함과 신뢰가 중요한 클럽이다.”

구형이든 신형이든, 자신에게 맞는 클럽 선택해야 프로들이 구형을 놓지 않는 건 신제품이 안 좋아서가 아니다. 오래 써온 클럽에 대한 확실한 믿음, 그리고 어드레스에서 느끼는 편안함과 자신이 원하는 구질을 정확히 구현해 주는 감각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건 신형이든 구형이든 ‘내 손에 맞느냐’다. 최신 스펙에 끌리는 것도, 검증된 구형을 오래 쓰는 것도 모두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신제품의 화려한 기술이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그것대로 좋고, 오래 써서 믿음이 쌓인 클럽이 편하다면 그 또한 훌륭한 선택이다. 프로들이 그러하듯, 아마추어도 결국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클럽을 찾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