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GOLF 편집장 칼럼]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뒤늦게 보게 됐습니다. 이른바 ‘모자무싸’에는 폭력이나 선정성 같은 도파민 터지는 장면은 없습니다. 대신 시기·질투·열등감 같은 보편적 감정을 ‘무가치함’이라는 키워드로 묶어내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온 건 주인공들이 건널목 앞에섰을 때 화면에 무심히 잡히는 차단기 문구, “갇혔을 때 돌파하세요”였습니다.
차단기 안에 차량이 갇혔을 때 차단봉을 부수고서라도 빠져나오라는 실제 안전 문구라고 합니다. 평소에는 지켜야 할 차단봉이지만 생존을 가로막는 순간에는 돌파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골프 업계도 ‘돌파’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 기간 골프장으로 몰려왔던 2030세대가 러닝과 등산, 테니스로 이동했습니다. 골프용품 수요가 감소하고 골프웨어 소비도 급격히 줄었습니다. 한때 골프장 인증사진을 올리던 젊은이들이 이제 러닝 기록과 완주 메달을 공유합니다.
2030세대가 운동을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운동합니다. 다만 비싼 그린피와 장비,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하는 라운드, 복잡한 예약과 엄격한 예절에 갇히기 싫어진것입니다. 반면 러닝은 신발만 있으면 집 앞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록은 즉시 숫자로 남고, 러닝크루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만납니다. 골프 업계의 ‘돌파’ 전략은 젊은 세대를 다시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젊은 세대가 골프를 외면하게 만든 차단봉부터 걷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장비보다 성취를 팔 것을 제안해 봅니다. 제품이 아니라 이야기와 커뮤니티를 파는 겁니다. 새 드라이버의 비거리만 광고 할 것이 아니라 첫 파, 첫 버디, 100타 돌파를 기록하고 공유하게 하는 겁니다. 앱을 통해 개인과 크루의 미션을 제공한다면 골프도 러닝처럼 성취가 축적되는 스포츠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골프 친구’도 만들어 줘야 합니다. 러닝 열풍의 중심에는 러닝화가 아니라 러닝크루가 있습니다. 골프 브랜드와 골프장은 초보자끼리 실력과 연령, 생활권을 기준으로 연결해 주는 커뮤니티의 운영자가 돼야 합니다. 제품을 사면 할인쿠폰을 주는 대신 레슨과 라운드, 대회에 참여할 자격을 주는 방식으로 마케팅의 중심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골프용품을 처음 사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골프장서 첫 라운드를 함께 하는 ‘머리 올리기’ 대회를 개최할 수도 있습니다.
가격의 차단봉도 부숴야 합니다. 2030세대에게 처음부터 풀세트와 고가 의류를 권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클럽 구독과 렌털, 인증 중고, 입문용 하프세트와 골프·러닝·일상을 넘나드는 기능성 의류가 골프 시장의 불황을 돌파 할 새로운 출구 전략이 돼야 합니다. 또한 러닝의 5㎞처럼 골프도 18홀 완주 대신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입문용 경기가 필요합니다. 도심형 9홀 경기, 퇴근 후 90분 라운드, 스크린과 쇼트게임을 결합한 리그처럼 짧고 자주 즐기는 골프 문화가 형성돼야 합니다.
세대별로 다른 차단봉을 부숴야 합니다. 2030에게는 도심형 9홀과 짧은 라운드를, 4050에게는 성취와 기록을 공유하는 앱과 리그를, 5060에게는 건강·사교 중심의 저부담 프로그램을 각각 설계해야 합니다. 4050세대는 여전히 골프 소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가장 두꺼운 고객층이고, 은퇴를 앞둔 5060세대에게 골프는 건강과 사교를 겸한 노후 설계의 축입니다. 여성 골퍼, 기업 접대 수요, 해외 골프 관광까지 시야를 넓혀야 진짜 차단봉이 보입니다.
갇혔을 때는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 골프 업계에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신제품이 아니라, 골프를 더 짧고 가볍고 함께 즐기는 스포츠로 다시 설계하는 ‘돌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