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상준의 GOLF & CULTURE - 저마다 다른 맛을 품은 베트남 골프
베트남 국수가 지역과 재료에 따라 서로 다른 맛을 내듯, 베트남 골프장들 역시 부지의 자연조건과 설계 방식에 따라 저마다 다른 개성을 드러낸다. 최근 베트남 전역의 골프장을 답사하며 느꼈던 각기 다른 코스의 맛과 완성도, 플레이 경험을 전한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베트남 음식 중에 쌀국수가 있다. ‘포(phở)’라고 부르는 베트남 국수의 현지 발음은 ‘퍼’에 가깝다.
닭고기 국물 쌀국수는 ‘퍼가 (phở gà)’, 소고기 국물은 ‘퍼보(phở bò)’라 부르는데, 그 외에도 베트남 국수의 종류는 다양하다. 우동 면 같은 국수도 있고 달걀노른자를 넣은 노르스름한 면과 칼국수 면발처럼 넓적하고 쫄깃쫄깃한 국수도 있다.
그 위에 올리는 고명도 뻔한 닭고기, 소고기가 아니라, 튀긴 생선, 어묵, 심지어 선지를 올린 국수도 있다. 이렇듯 베트남 국수의 종류는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나는 지난 7월, 20일간 현지의 골프 전문가들과 베트남의 곳 곳을 답사했다. 중국 땅이 내려다보이는 북서쪽 고산지대 사파(Sa Pa)에서 하노이, 천년고도 후에에서 다낭, 남서쪽 휴양지 푸꾸옥과 호짬과 호찌민 시티를 들러, 남부 항구도시 붕타우에서 여정을 마쳤다.
베트남 <골프&레저> 매거진에서 자국 내 최고의 골프장 톱 10을 선정하는 답사에 2022년에 이어 두 번째로 초대받은 것이다. 이번에는 특히 지난 2년간 개장한 신규 골프장 6곳을 둘러볼 수 있어 기대가 컸다. 다낭의 ‘호이아나 쇼어’와 호짬의 ‘더 블러프스’가 베트남 코스 랭킹 1, 2위를 다투는 최고의 골프장이라면, 이에 대적할 만한 곳이 신규 코스들 중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커졌다. 이번에 답사한 19개 골프장 중에 기억에 남는 신규 골프장 4곳을 소개한다.
닉 팔도 디자인의 하이엔드 골프클럽, 실크패스 골프 리조트(Silk Path Golf Resort)
팬데믹 직후 2022년에 방문했던 베트남은 지난 4년간 어떻게 변했을까? 인천공항을 떠나며 했던 질문이다. 하노이 서쪽 두 시간 반 거리, 꽝닌에 위치한 실크패스 골프클럽에서 변화의 모습을 찾았다. 해안선의 백사장을 따라 멋진 코스들이 들어설 가능성이 가득한 나라인 베트남. 반대로 내륙으로 한참을 들어간 곳에 만든 골프장은 어떤 모습일까?
실크패스는 닉 팔도가 디자인해서 기대가 컸다. 비슷비슷한 코스를 찍어내는 니클라우스 디자인에 비해, 닉 팔도는 이미 베트남 후에의 라구나 랑코 코스로 실력을 입증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베트남 하이엔드 골프클럽의 가능성을 봤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장원 스타일의 건축 양식이 코트야드와 건물 곳곳에 전시된 베트남풍 오브제와 예술품들과 묘한 조화를 이뤘다. 건축과 인테리어 디자인뿐 아니라 직원들의 서비스와 레스토랑 메뉴의 수준이 베트남의 타 골프장과는 다른 높은 수준을 선보였다.
코스는 장엄한 산맥이나 푸른 바다의 경치는 없었지만 자연지형을 잘 이용해 홀마다 개성이 뛰어났고, 다양한 실력의 골퍼 모두 즐길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닉 팔도와 그의 디자이너들이 다시 한번 베트남 내륙지역에 좋은 코스를 남긴 사례이자, 안목 있는 오너가 좋은 설계자를 선택해서 수준 높은 골프 파라다이스를 만든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완성도 높은 클럽하우스와 숲속 정원 같은 코스, 에스추리 골프 리조트(Eschuri Golf Resort)
‘에스추리(Eschuri)’라는 이름은 처음 듣는 순간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리조트 직원들도 정확한 뜻을 알지 못했지만,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세련된 울림을 지니고 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를 뜻하는 ‘에스추어리(Estuary)’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푸꾸옥이라는 섬의 입지와도 묘하게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클럽하우스는 이번 여정에서 단연 손꼽을 만한 수준이었다. 실크패스가 이탈리아 토스카나 건축 양식에 베트남의 섬세한 감성을 조화롭게 담아냈다면, 에스추리는 특정 지역의 건축 언어에 얽매이지 않는 현대적인 감각을 보여줬다. 세계 어느 프리미엄 골프 리조트에 자리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세련되고, 시간이 지나도 쉽게 질리지 않을 디자인이다. 건축의 비례와 공간감, 그리고 마감의 완성도까지 모두 높은 수준을 보여주었다.
코스는 시각적으로도 매우 인상적이다. 오랜 세월 자라온 아름드리 교목들이 홀마다 깊이 있는 풍경을 만들어 내며, 라운드 내내 숲속 정원을 걷는 듯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다만 카트 도로를 따라 일렬로 식재된 열대 관목은 플레이에 지장을 주는 불필요한 요소로 판단되었다. 전통적으로 ‘스루 더 그린(through the green)’이라 불리는 플레이 공간은 시각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며, 전략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불필요한 요소는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페널티 구역, 특히 저수지 주변의 관목과 수풀, 갈대류는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식재는 플레이 측면에서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한다. 골퍼가 자신의 볼이 페널티 구역의 어느 지점으로 들어갔는지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공정한 플레이가 가능하며 경기의 흐름과 플레이 만족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절한 가지치기와 식재 정비만으로도 코스의 개방감은 한층 살아나고, 설계자가 의도한 전략성 또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코스는 전반적으로 다양한 수준의 골퍼들이 즐길 수 있도록 균형 있게 설계돼 있다. 적절한 도전 의식을 제공하면서도 과도한 벌칙을 강요하지 않아, 라운드 내내 즐거움을 잃지 않게한다.
한 가지 제안하고 싶었던 점은 전반 9홀의 시작과 마무리, 특히 1번 홀의 구성이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첫인상이 중요하듯, 골프장 역시 첫 홀이 방문객에게 깊은 기억을 남겨야 한다. 에스추리가 보여주는 뛰어난 건축과 높은 투자 수준을 고려한다면, 첫 홀은 더욱 강렬한 개성과 상징성을 담을 필요가 있다. 시각적으로 한눈에 기억되는 풍경과 전략적인 흥미를 동시에 갖춘 오프닝 홀은 라운드 전체의 기대감을 높이고, 이어지는 18홀의 경험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그 정도의 완성도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골프장이 바로 에스추리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요소 살린 정통 링크스 스타일, BRG 골든 샌즈(Golden Sands)
BRG 골든 샌즈는 골프장 조성에 가장 이상적인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천연 모래 위에 자리 잡고 있다. 호이아나 쇼어와 함께 아시아에서는 드물게 정통 링크스 스타일을 지향하는 코스로, 바다와 모래, 바람이라는 자연의 요소를 최대한 살려 진정한 링크스 골프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다낭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반 거리의 후에 근교에 위치한 부지 활용 또한 인상적이다. 비교적 콤팩트한 대지 안에 18개 홀이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지만 홀 간의 연결은 자연스럽고 답답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호이아나 쇼어처럼 극적인 지형 변화나 한눈에 기억될 만한 시그니처 홀은 많지 않지만, 각각의 홀은 저마다 다른 전략과 개성을 지니고 있어 라운드 내내 새로운 재미를 선사한다. 화려함보다는 균형감과 플레이의 즐거움으로 승부하는 코스라는 인상을 받았다.
아직 개장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아 잔디는 성장 과정에 있다. 특히 페어웨이의 잔디 밀도는 앞으로 더욱 좋아질 여지가 충분해 보인다. 토양의 유기물 함량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보습제와 효율적인 관수, 그리고 소량을 자주 시비하는 관리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치밀하고 건강한 잔디를 갖춘 코스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베트남 대기업 빈그룹이 개발한 레만 쿠치 골프 클럽(Leman Cu Chi)
처음 ‘레만’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스위스의 아름다운 레만호(Lake Léman)였다. 이름만으로도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하지만 호찌민 시에서 두 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곳곳이 물웅덩이로 가득한 평탄한 대지였다. 주변 풍경으로 미루어 보아 이곳은 과거 농경지였던 땅을 개발한 것으로 보였다. 베트남 최대 기업 가운데 하나인 빈그룹(Vingroup)이 개발한 이 프로젝트는 총 36홀 규모로 계획되었으며, 현재는 18홀만 완성돼 운영되고 있다. 골프장은 수천 세대의 주거단지를 포함한 대규모 신도시 개발사업인 빈홈 사이공 파크(Vinhomes Saigon Park)의 핵심 시설 가운데 하나다.
그동안 베트남의 대기업들이 개발한 여러 골프장과 리조트를 둘러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이들은 종종 섬세한 완성도보다는 규모와 스케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과 미국의 부동산 개발회사에서 일하면서 내가 경험한 것은, 진정한 하이엔드 호스피털리티는 규모가 아니라 취향과 절제, 그리고 디테일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골프 리조트는 골프장만으로 평가되는 공간이 아니다. 궁전이나 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클럽하우스가 반드시 골퍼의 기대감을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건축은 테마파크에는 어울릴지 몰라도, 골프는 본질적으로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일상의 번잡함을 벗어나는 경험이어야 한다. 북미와 영국, 그리고 유럽의 세계적인 골프 리조트들은 건축과 운영의 모든 요소가 이러한 철학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레만 쿠치처럼 골프장이 대규모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의 부속시설로 조성될 경우, 골프장은 기능적으로는 만족할 수 있지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개성을 갖추기 어려울 수 있다. 골프 코스 자체만 놓고 보면 충분히 훌륭한 코스다. 홀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린 주변의 설계 역시 라운드 내내 다양한 전략을 요구해 플레이의 재미를 더한다. 실제로 즐겁게 라운드를 마쳤지만, 다시 찾고 싶을 만큼의 독창적인 개성이나 차별화된 경험은 부족하다고 느꼈다.
운영 측면에서도 라커룸의 평면 구성이나 어메니티의 수준, 직원과 고객의 동선 분리 등 몇 가지 매우 기본적인 호스피털리티 요소가 미비한 점을 발견했다. 자동차까지 생산하는 베트남 최고의 기업에서 운영하는 골프장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번 베트남 일주에서 다시 한번 느낀 점은 골프장에서 감동을 받으려면 우선 코스 부지가 감동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프코스를 평가할 때 코스 부지가 위치한 자연조건이 95%를 차지하고, 그리고 이를 잘 살려 설계한 골프장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 다시 찾고 싶은 골프장이 탄생한다. 그리고 하이엔드 호스피털리티 시설로서 골프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를 잘 이해하는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베트남에서는 대기업이 자본을 많이 투자했지만 전문성과 안목이 부족한 매니지먼트에 의해 수준 이하의 결과물이 나온 사례를 여럿 발견했다. 베트남은 1인당 GDP 5000달러 수준으로 우리의 1985년대 수준이다. 하지만 골프장 수는 1985년 한국 대비 두 배에 이르고 그 수준도 상당히 높으며 우리나라 골프장들과는 다르게 내장객의 절반 이상을 골프 관광객으로 채우고 있다. 미래가 기대되는 베트남. 향후 10년 이내 80개에서 150개를 넘어서는 골프장이 개발될 것으로 현지에서 예상하고 있다. 시행착오가 줄어든 좋은 사례, 아름다운 골프장이 많이 생겨 한국 골퍼들도 방문하고픈 곳들이 더해지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