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아나운서의 언어의 스윙] 질문의 에임② 대화는 질문의 세컨드샷에서 갈린다
첫 질문은 대화를 시작한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은 대화의 방향을 바꾼다.
우승 소감, 그 다음 질문
얼마 전 나는 KPGA-JGTO 공동 주관 제42회 신한동해오픈 시상식 사회를 맡았다. 우승자는 일본의 스나가와 고스케 선수였다. 그에게 내가 건넨 첫 질문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우승 소감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신가요?” 그런데 스나가와 선수의 대답에 특별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이번이 프로 데뷔 첫 우승입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에 아내가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왔는데요. 아내 앞에서 첫 우승을 보여줄 수 있어서 더 행복합니다.”
그 순간 나의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게 ‘우승’이 아니라 ‘아내’로 향했다. “혹시 아내분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카메라는 이제 혼자 서 있는 챔피언만이 아니라 행복해하는 가족들의 모습까지 함께 담기 시작했다. 이어서 나는 다시 물었다. “아내분께 꼭 하고 싶은 말씀 있으세요?”
첫 질문이 대화를 열어주었다면, 두 번째 질문은 챔피언 옆에 가족들을 데려다 주었다. 이 두 질문의 차이는 무엇일까. 차이는 시작점에 있다. 첫 질문은 나에게서 출발했지만, 두 번째 질문은 스나가와 선수의 대답에서 출발했다.
세컨드샷은 공이 놓인 자리에서 시작한다
티샷은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조건에서 시작할 수 있다. 방향을 정하고, 티의 높이를 맞추고, 내가 원하는 샷을 준비한다. 하지만 세컨드샷부터는 다르다. 공이 어디에 떨어졌는지부터 봐야 한다. 페어웨이 한가운데 놓였는지, 러프에 잠겼는지, 남은 거리는 얼마인지에 따라 다음 선택이 달라진다. 내가 원래 치고 싶었던 샷보다 지금 공이 놓인 자리가 먼저다.
질문도 비슷하다. 첫 질문은 내가 준비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질문부터는 상대가 방금 한 말이 출발점이 된다. 스나가와 선수에게 미리 준비했던 질문만 차례대로 했다면 우승 소감과 경기 이야기를 듣고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한국에 왔다”라는 한마디를 잡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이야기가 열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묻느냐가 아니라, 어느 지점에서 다시 묻느냐에 있다.
샷과 샷 사이의 대화
특히 골프장에서는 이 두 번째 질문이 더 중요할 때가 많다. 골프장의 대화는 대부분 스몰토크다. 길게 앉아 서로를 알아가는 자리가 아니라 샷과 샷 사이,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잠깐씩 열리는 대화의 창에 가깝다.
긴 대화라면 첫 질문이 조금 어색해도 만회할 시간이 있다. 하지만 골프장에서는 몇 마디를 나누다 보면 금세 자기 공 앞에 도착한다. 거리를 재고 클럽을 골라야 하고, 누군가 어드레스에 들어가면 대화도 잠시 멈춘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두 번째 질문을 어떻게 건네느냐에 따라 대화의 느낌이 꽤 달라진다.
“이 코스는 자주 오세요?” “회사 골프 모임 때문에 몇 번 왔어요.” 여기에서 곧바로 “핸디가 어떻게 되세요?” “드라이버는 얼마나 나가세요?” “레슨은 받고 계세요?”라고 내가 궁금했던 질문을 계속 꺼낼 수도 있다. 그러면 질문은 계속되고 있지만 묘하게 이야기는 이어지지 않는다. 마치 한 홀에서 티샷만 계속 새로 치는 것과 같은 셈이다.
반대로 상대가 남긴 말에서 하나를 짚어 이야기를 나누면 달라진다. “회사 분들과 자주 라운드하세요?” “몇 번 오셨군요. 어디가 제일 까다로우셨어요?” 새로운 화제를 꺼낸 것이 아니다. 방금 나온 이야기에서 한 걸음만 더 간 것이다.
다음 질문은 귀에서 나온다
좋은 두 번째 질문이라고 해서 대단한 화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한 말 가운데 무엇이 조금 더 궁금했는지, 어떤 단어가 귀에 남았는지를 따라가면 된다.
누군가 “요즘 골프를 거의 못 쳤어요”라고 말했을 때 곧바로 “핸디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넘어가기보다 “요즘 많이 바쁘셨어요?”라고 한 번 더 물어보는 것이다. 그 짧은 질문 하나 때문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결국 두 번째 질문은 질문을 만드는 기술이기보다 듣는 힘에 더 가깝다. 다만 여기에도 거리 조절은 필요하다. 상대 이야기를 잘 듣겠다고 질문을 계속 이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대화가 아니라 인터뷰가 된다. 골프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라운드의 리듬도 있고 각자의 샷에 집중해야 하는 순간도 있다. 좋은 세컨드 질문은 길고 깊은 질문이라기보다, 짧지만 정확하게 한 번 더 받아주는 질문에 가깝다.
두 번째 질문은 물음표가 없어도 된다
때로는 꼭 질문을 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가 꺼낸 말의 의미를 잘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다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스나가와 고스케 선수가 “아내 앞에서 첫 우승을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라고 했을 때, “그럼 오늘 이 우승은 아내분께도 정말 특별한 선물이겠네요”라고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다음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물음표의 개수가 아니다. 상대의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질 자리를 남겨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더 자주 경계해야 하는 것은 상대가 들고 있던 마이크를 너무 빨리 가져오는 일이다.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골프를 거의 못 쳤어요”라는 말에 “저도요. 저는 지난달에…”라고 곧바로 내 경험을 얹는 순간, 상대가 들고 있던 마이크는 어느새 내 손에 와 있다. 공감한다고 시작했지만 상대가 꺼낸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못한다.
대화에서 한 번쯤 더 상대 쪽에 머무르는 것. 어쩌면 좋은 두 번째 질문은 거창한 질문법보다 거기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첫 질문은 내가 던지지만, 두 번째 질문의 자리는 상대가 정한다. 공이 놓인 자리를 읽듯, 상대가 남긴 말의 자리부터 읽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