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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와인 이야기] - 칠레 아이콘 와인 돈 멜초, 사랑도 블렌딩이 필요할까?

  • 김기정 기자
  • 입력 : 2025.09.29 11:30
  • 수정 : 2025.09.29 15:51

최근 1~2년 새 국내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된 와인이 ‘돈 멜초’(Don Melchor)입니다. 돈 멜초는 칠레의 ‘오퍼스 원’(Opus One)이라 불리는 아이콘급 와인으로 2024년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 ‘TOP 100’에서 돈 멜초 2021이 1위에 오르면서 한국 소비자들로부터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1등 와인을 마셔보자’는 수요가 몰리면서 소매가도 급등했습니다.

여기에 한국에서는 한국 추상 미술계 대가 김환기 작가와 협업한 ‘돈 멜초 2021X김환기 우주(Universe)’가 롯데백화점을 통해 3000병 한정 출시되며 가격대가 40만 원 가까이 치솟았습니다. 물론 그전에도 돈 멜초는 2018년 빈티지가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100점을 받아 가히 칠레 최고급 와인의 반열에 올라있었지요.

DM/01 와인을 소개하는 돈 멜초의 CEO이자 수석 와인메이커인 엔리케 티라도.
DM/01 와인을 소개하는 돈 멜초의 CEO이자 수석 와인메이커인 엔리케 티라도.

와인 스펙테이터 1등, JS ‘100점’ 받은 돈 멜초

돈 멜초가 어떤 와인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돈(Don)은 스페인어의 존칭어로 영어의 미스터(Mr)처럼 사용합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에 나오는 돈 키호테(Don Quijote),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많이 등장하는 돈 후안(Don Juan, 이탈리아어로는 돈 조반니 Don Giovanni)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멜초(Melchor)는 실제 사람 이름입니다. 멜초르 콘차 이 토로(Melchor Concha y Toro)라는 칠레 귀족 출신 사업가이자 정치인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그는 칠레 와인 산업을 세계에 알린 개척자 중 한 명으로, 칠레 최대 와이너리인 콘차이토로(Concha y Toro) 와이너리를 설립한 인물입니다. 어느 와이너리이건 파운더(founder), 즉 설립자의 이름을 붙인 와인은 그 와이너리의 최고급 라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야말로 설립자에 대한 헌정 와인의 의미가 담겼기 때문입니다.

돈 멜초는 레드 와인으로 카베르네 소비뇽 중심의 보르도 블렌딩 와인입니다. 돈 멜초의 흥미로운 점은 파슬 블렌딩(parcel blending)이란 개념입니다. 돈 멜초는 칠레 마이포 밸리(Maipo Valley) 푸엔테 알토(Puente Alto)의 단일 포도밭에서 생산됩니다. 보통 단일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와인은 ‘싱글 빈야드’라는 이름의 마케팅을 사용합니다. 이 포도밭, 저 포도밭의 포도를 섞어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 포도밭에서 생산되는 포도라는 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런데 돈 멜초는 푸엔테 알토 포도밭을 다시 7개의 작은 구획(파슬, parcel)으로 나누고 7개의 구획에서 나온 와인을 블렌딩해 만든다고 합니다.

돈 멜초 포도밭의 7개 파슬(구획) 지도.
돈 멜초 포도밭의 7개 파슬(구획) 지도.
▲ 돈 멜초 포도밭의 7개 파슬(구획)에서 생산된 와인들.
▲ 돈 멜초 포도밭의 7개 파슬(구획)에서 생산된 와인들.

포도밭을 7개 구획으로 나눠 블렌딩

최근 돈 멜초 와이너리 비냐 돈 멜초의 CEO이자 수석 와인메이커인 엔리케 티라도가 한국을 방문해 7개 구획의 와인을 따로 시음해보는 파슬 테이스팅 행사를 열었습니다. 먼저 1번 파슬(구획)에서 수확한 포도로만 만든 와인을 시음했습니다. 1번 파슬 와인은 피니시가 긴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여운이 길게 남았습니다. 1번 파슬은 푸엔테 알토 포도밭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가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돈 멜초의 핵심 역할을 하는 포도밭으로 1979년 조성됐습니다. 그래서인지 구조감도 좋고 부드러우면서 밸런스도 훌륭했습니다. 타닌이 튀지 않으면서도 힘이 있고 동시에 섬세함이 돋보이는 것이 올드바인의 특징들이 잘 살아났습니다.

2번 파슬 와인은 스파이시함이 특징입니다. 피니시에서 스파이시한 맛이 강하게 올라왔습니다. 전반적으로 세고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3번 파슬 와인은 1번과 2번의 중간 성격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약하다고 생각됐었는데 한 라운드를 다 돌고 다시 마셔보니 첫 번째 마셨을 때의 테이스팅 노트와 느낌이 달랐습니다. 3번 파슬 와인도 아주 강했습니다. 아마도 첫 라운드 때 강했던 2번 와인을 마시고 바로 마시다 보니 3번 와인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습니다. 4번 파슬 와인은 산미가 좋았습니다.

5번 파슬 와인은 1번 파슬 와인과 맛이 비슷했습니다. 다만 영하다는 느낌이 강했는데요. 역시 피니시가 1번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6번 파슬 와인도 역시 피니시가 짧았습니다. 1번, 5번, 6번 파슬 와인이 모두 맛은 비슷했는데 피니시의 길이에서 차이가 났습니다. 와인메이커는 6번 파슬 와인이 전체의 구조를 잡아주는, 뼈대를 담당하는 와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살짝 단맛이 느껴져서 산도를 중요시하는 이탈리아 소비자들은 싫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번 파슬 와인은 강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1~6번 파슬 와인과 달랐는데 카베르네 프랑, 메를로 등 카베르네 소비뇽이 아닌 무언가 다른 포도 품종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 돈 멜초 DM/01. 1번 파슬(구획)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들었다.
▲ 돈 멜초 DM/01. 1번 파슬(구획)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들었다.

1번 구획 포도만으로 만든 ‘DM/01’ 출시

이렇게 길게 파슬에 대한 느낌을 자세하게 설명한 이유는 돈 멜초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1번 파슬 와인으로만 만든 ‘DM/01’ 2022 빈티지를 출시했기 때문입니다. 돈 멜초 DM/01 2022는 카베르네 소비뇽 88%에 카베르네 프랑 12%를 블렌딩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파슬 블렌딩을 해서 만드는 돈 멜초와 달리 DM/01은 1번 파슬이라는 싱글 파슬 전략을 쓰면서 동시에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한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제가 시음했을 때는 DM/01이 1번 파슬 와인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7번 파슬 와인과 좀 더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DM/01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풀 향, 피망 향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와인평가에서 최고 등급의 점수를 받은 돈 멜초 와인들.
와인평가에서 최고 등급의 점수를 받은 돈 멜초 와인들.

‘카베르네 프랑’ 섞어 칠레 와인 특성 살려

칠레 카베르네 소비뇽은 특유의 풀 향이 납니다. 마치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에서 느껴지는 그런 풀 향입니다. 예전에는 칠레 와인메이커들이 ‘풀 향’이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포도가 미성숙된 상태에서 와인을 만들었을 때 생기는 특성이란 시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토착 포도품종과 각 지역 테루아의 특성을 살린 와인에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칠레 와인메이커들도 ‘이게 우리의 특성이다’라는 자부심이 커졌습니다. 그래서인지 DM/01은 칠레 와인의 특성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위스키도 유사합니다. 한 증류소에서 나오는 원료로만 만드는 싱글 몰트 위스키와 여러 증류소에서 나온 원액을 섞어 만드는 블렌디드 위스키는 차이가 있습니다. 맥캘란, 라프로익, 글렌피딕 등은 보리 맥아(몰트) 100%로 한 증류소의 원액만 사용해 만들어 싱글 몰트 위스키라고 불립니다.

반면 조니 워커 발렌타인 등은 보리 맥아 외에도 여러 다른 곡물들을 섞어 만들어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합니다. 개인 취향 차이기 때문에 어떤 위스키가 다른 위스키보다 더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돈 멜초 와인들을 위스키에 비유하자면 와인 스펙테이터 1등을 차지한 ‘돈 멜초’가 여러 파슬을 블렌딩한 블렌디드 위스키, 1번 파슬 와인은 싱글 몰트 위스키, DM/01은 한 증류소에서 만들었지만 몰트와 그레인을 섞어 만들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랑도 블렌딩이 필요할까

돈 멜초 파슬 테이스팅에서 처음으로 마신 1번 파슬 와인은 첫사랑의 느낌입니다. 그 강렬함을 가지고 평생을 삽니다. DM/01은 잘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 같습니다. 코도 오똑하고 눈도 크게 만들어 전체적인 밸런스를 조화롭게 꾸몄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딘가 모르게 DM/01보다는 1번 파슬 와인에 더 마음이 갔습니다. DM/01이 1번 파슬의 포도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1번 파슬 와인과 DM/01은 이론적으로는 같은 맛의 와인이어야 하는데도 말이죠. 와인메이커가 DM/01을 만들면서 1번 파슬의 카베르네 소비뇽과 카베르네 프랑을 블렌딩한 데는 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이 힘과 구조감을, 카베르네 프랑이 허브 향, 신선함, 섬세한 타닌을 담당합니다.

갑자기 든 생각입니다. 사랑도 블렌딩이 필요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