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STYLE
배우 장미희와 함께한 라운드, 세월의 품위가 깃든 우아함의 결
정확한 폼, 흔들림 없는 템포, 그리고 중심을 잃지 않는 멘털. 라운드에서 만난 배우 장미희는 오묘한 빛을 가진 거대한 다이아몬드 같았다.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빛을 내는 골퍼, 장미희
배우 장미희와 만남을 약속한 그날, 식사 시간에 늦지 않으려 서둘러 골프장 여성 라커룸에 종종걸음으로 들어섰다. 문이 열리자마자 귓가에 들려온 매혹적이고 부드러운 톤의 목소리. “여기 거미가 있어요.”
라카룸 벽을 기어가는 작은 거미를 발견한 장미희가 놀라움과 감탄을 우아하게 표현했다. 거미조차도 그녀의 품격 있는 말투와 태도 앞에서는 마치 행운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공을 치기 전, 새나 나비가 눈앞을 스치듯 날아들 때면 ‘버디의 전조인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던 나에게, 그날의 작은 거미는 특별한 징조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와 함께 걷는 필드는 잔잔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드라마 촬영으로 오랜만에 라운드에 나섰다는 장미희는 환복을 마친 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걸음으로 티잉 그라운드에 올랐다. 인사를 건네는 말투 하나, 볼을 준비하는 손짓 하나에도 세월의 깊이와 품위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티샷을 날리는 순간, 동반자들의 표정이 변했다.
“어라, 거리가 엄청 나는데요.” 누군가가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폼, 흔들림 없는 템포, 그리고 무엇보다 중심을 잃지 않는 멘털. 그녀는 그날 보기플레이를 기록하며 단 한 번의 큰 실수 없이 경기를 마쳤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자기 자신을 지키는 골프’를 그대로 보여준 라운드였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 수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온 배우지만, 그 뒤에 감춰진 내면의 단단함과 성숙함, 그리고 인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명품’, ‘팔색조’ 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그녀는 그 이름에 걸맞게 라운드 내내 차분하면서도 강렬한 빛을 내는 존재였다.

배우와 영화인으로서 쌓아온 예술의 길
장미희는 1976년 박태원 감독의 신인배우 공채 모집에서 276:1의 경쟁률을 뚫고 영화 <성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을 맡으며 데뷔했다. TBC 드라마 <해녀 당실이>, 1977년 <겨울여자>, <청실홍실> 이후 거의 반세기 가까운 시간 영화와 드라마,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다.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사의 찬미>, <사랑도 미움도>, <육남매>, <엄마가 뿔났다> 등 92편의 영화, 수많은 히트작에서 세련되고도 강인한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녀가 보여준 개성 있는 연기와 섬세한 감정 표현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연기의 반열에 올랐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명품배우로 손꼽힌다.
장미희는 수상 경력 역시 화려하다. 1976년 TBC 연기대상 신인상을 시작으로, 은곰상 여우주연상, TBC 연기대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 1981년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영화제 KBS 연기대상 등에서 여우주연상과 대상을 다수 수상하며 연기자로서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991년 청룡 영화상 시상식에서의 “아름다운 밤이에요”라는 짧은 멘트는 한국 영화 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회자되었다. 그녀는 배우로서뿐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양한 문화훈장과 표창도 받았다.
배우의 화려한 커리어 외에도, 장미희는 영화계 후진 양성 및 산업 발전을 위한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1996년부터 명지전문대 연극영상과 교수로, 현재까지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5년 영화진흥회 위원, 2006년 고양어린이국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2025년부터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조직위원장으로 위촉되어, 국내 대표 장르 영화 축제인 부천영화제를 이끌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서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예술적 통찰력이 이제 영화 산업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리더십으로 확장되고 있다.
“배우란 내가 선택한 인생의 길이고, 좋은 배우란 내 삶의 목표다. 이건 장미희라는 개인의 노력의 범주다. 하지만 스타는 그런 배우 장미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스타란 단어는 어떤 의무와 책임감을 동반하다. 이건 관객과 나를 사랑한 세대가 나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장미희의 프로 근성을 드러낸 인상 깊은 이야기다.
골프장 라커룸에서 거미와 함께 마주한 그녀의 우아한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진중한 플레이. 그날의 배우 장미희는 정말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오묘한 빛을 가진 거대한 다이아몬드 같았다.
개성 있고 실험적인 장르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며 한국 영화계의 지평을 넓혀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오는 7월 3일부터 13일까지 부천아트센터, 부천아트벙커 B39 등 부천시 일대에서 만날 수 있다.
[writer 이지희]

현재 국가유산디지털보존협회 부회장. 기획자, 프로듀서, 마케터 등으로 문화예술계 다방면에서 일했다. 베스트 스코어 2 오버 기록을 가진 골프 마니아로 골프와 사랑에 빠진 예술인들의 활동과 에피소드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