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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 COLUMN] 아버지와 아들 골프대회

최근에 루첼라이 정원이란 모임에서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의 몸뚱이는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기 위한 수단,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에 불과합니다. 유전자는 불멸(Immortal)이지만 육신의 사용 시기는 유한합니다. 인생이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프 의류나 신발을 보면 해골 디자인이 자주 등장합니다. 서양미술사에서 해골은 종종 이러한 덧없는 인간의 삶을 상징하는 소재로 사용됐습니다. 해외 미술관에 가면 ‘Still Life’라고 적혀 있는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로는 정물화라고 번역합니다.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소재를 그림으로 표현했는데 바니타스 정물화가 대표적입니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공허’란 뜻입니다. 세속적인 쾌락을 상징하는 술잔, 사치를 상징하는 보석과 금화, 값비싼 옷감과 함께 시든 꽃, 썩은 과일이나 해골, 시계가 단골 소재입니다. 삶의 즐거움이나 부는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경고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해골은 용맹함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합니다. 미국 프로풋볼(NFL) 탬파베이 버커니어스의 상징도 해골을 넣은 해적 깃발입니다. 하지만 골프라는 게 용맹함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지요. 오히려 ‘삶의 유한함을 생각하고 항상 경계하라’라는 바니타스 정물화 속 해골의 의미가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흔히들 골프 코스의 18홀에는 삶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살다 보면 벙커에 빠지기도 하고 질긴 러프가 스윙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어쩌다 보면 삶의 궤도를 벗어나 패널티를 받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매경GOLF> 10월호를 준비하기 위해 던롭스포츠코리아를 이끄는 홍순성 대표를 인터뷰하면서 ‘삶’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던롭스포츠코리아는 아버지와 아들이 참가하는 ‘젝시오 파더앤선(Father&Son)’ 골프대회를 개최합니다. 미국 골프장에선 골프 가방을 등에 짊어지고 필드를 걷는 아버지와 아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자가 함께 골프 치는 모습이 낯선 풍경이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라고 부자지간이 미국하고 크게 다를 게 있겠습니까. 젝시오 파더앤선 골프대회는 그런 아버지 또는 아들의 마음을 자극하는 포인트가 있는 대회입니다. 아들과 둘이 여행하는 게 처음이라는 참가자들도 의외로 많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삶은 왜 그렇게 바빴을까요.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이란 용어도 소개했습니다. 밈은 유전자(Gene)처럼 문화가 모방과 변이를 통해 사람들 사이에 확산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에 출간됐지만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이 등장하면서 최근에야 본격적으로 밈이란 용어가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던롭스포츠코리아가 시작한 아버지와 아들 골프 문화가 ‘밈’처럼 우리 사회에 퍼졌으면 합니다. 삶은 유한하면서 또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