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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식·장종필의 법을 알면 부동산이 보인다 - 공시가격의 착시와 법적 허점
집값은 그대로인데 세금은 늘고, 건강보험료도 올라갔다. 그 중심엔 늘 ‘공시가격’이 있다. 그런데 이 숫자는 정말 믿을 수 있는 걸까? 실거래가와 괴리된 기준, 불투명한 산정 과정, 그리고 법원의 판단까지 공시가격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들여다본다.

“작년보다 공시가격이 20%나 올랐어요.” 말끝에 웃음이 섞였다. 정말 기쁜 일일까. 집값이 올랐다는 건 자산이 불어났다는 뜻이니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세금과 건강보험료까지 덩달아 오르니 속은 편치 않다. 괜히 묘한 표정이 나오는 게 아니다.
공시가격은 세금 부과 기준이다. 재산세, 종부세는 물론 건강보험료, 복지 수급 자격, 장학금 지급, 심지어 대출 한도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쯤 되면 ‘경제생활 기준가격’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숫자의 주인은 누구인가
2020년 정부는 공시가격과 실제 거래가의 격차가 너무 크다며 현실화 정책을 밀어붙였다. “실거래가의 90%까지 맞추자!”라는 구호는 정의롭게 들렸지만, 결과는 달랐다. 보유세는 치솟고, 건강보험료가 올라 복지 대상에서 탈락하는 사람도 늘었다. “내가 언제 이렇게 부자였지?” 라는 말이 나왔다. 지갑은 그대로인데, 내야 할 돈만 늘어난 것이다. 2023년 들어 현실화 정책은 급제동이 걸렸고 현재는 다시 조정 중이다. 오락가락하는 정책 속에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 숫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공시가격이 오르면 사람들은 ‘집값이 올랐다’고 생각한다. 뉴스 헤드라인도 그렇게 나온다. 하지만 정작 실거래가는 정체되거나 하락세다. 공시가격은 시장 움직임과는 별개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숫자에 흔들린다. 가령 공시가격이 내려갔다는 이유로 은행이 대출 한도를 줄이는 경우도 있다. 담보가치가 떨어졌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곧 자금 조달 계획에도 영향을 미친다. 보유세가 덜 걷히면 정부의 세입 계획도 틀어지게 된다. 공시가격은 세금의 기준도, 시장의 기준도, 국민의 기준도 되지 못한 채 ‘기준인 척하는 숫자’가 되어간다.
숫자가 기준이 되려면
공시가격은 ‘공(公)’ 자 덕분에 믿을 만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 ‘공’ 자의 실체는 정부다. 정책 방향, 가중치 조정, 해석이 덧붙는 과정에서 정치적 해석이 개입된다. 결국 중요한 건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다.
올해도 우리는 새로운 공시가격을 받아들었다.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걱정한다. 하지만 어떤 감정도 이 질문은 피할 수는 없다. “이 숫자,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공시가격이 기준이라면 그 기준은 제대로 서 있는가. 우리 삶을 바꾸는 숫자라면, 우리가 그 숫자를 바꿀 권리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법은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때도 있다. 공시가격의 문제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목격할 수 있다.
공시가격, 이의가 있다면?
공시가격에 불만이 있다면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가격 공시일로부터 30일 이내, 온라인·방문·우편 등으로 신청 가능하며 온라인 접수가 가장 빠르다. 공동명의라면 대표자 1명이 신청하면 된다. 답변 기한은 기존 45일에서 30일로 단축되었다. 단, 신청했다고 해서 무조건 반영되는 건 아니다. 자료가 부족하거나 비교 기준이 불분명하면 기각될 수 있다. 실거래가, 감정평가서, 하자 증명서 등 구체적 자료가 필요하다. 꼼꼼한 준비가 성공의 열쇠다. 공시가격 이의신청은 보통 4월 말에서 5월 말까지 진행되며 결과는 6월 하순에 통보된다.
관련 판례로 본 법적 해석 공시가격 문제는 법정에서도 자주 다뤄진다. 다음은 대표적인 판례다.
[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8두19987 판결]
개별공시지가에 이의가 있는 자는 곧바로 행정소송을 제기하거나, 이의신청 또는 행정심판을 거쳐 제기할 수 있으며, 재결서를 송달받은 날부터 제소 기간을 산정한다는 판결이다.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7두20140 판결]
건설교통부장관이 표준지 공시지가를 결정·공시하는 절차에서 감정평가서가 추상적이고 평가 요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면, 그에 따른 공시지가 결정은 적정가격을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writer 김재식]

김재식 변호사는 법조계 24년 차로, 주택정책과 부동산 분야에 정통한 ‘생활 밀착형’ 전문가다. 광주 출신으로 광주대동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으며, 국토부 장관정책자문위원,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 공동주택우수관리 심의위원 등 부동산과 주택 분야를 두루 경험했다. 현재 법무법인 에이펙스의 파트너 변호사이자 한국주택협회 부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장종필 변호사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제4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UC 데이비스 로스쿨에서 연수(LL.M.)를 마쳤다. 한국토지주택공사, 인천도시공사 등 주요 공기업의 자문 및 소송을 맡았으며, 현재 법무법인(유한) 에이펙스의 파트너 변호사로서 건설·부동산 기업과 신탁사, 상장 법인 등의 법률 자문 및 소송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