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GOLF 김기정 편집장이 만난 사람] 볼빅의 도전과 혁신을 이끄는 홍승석 대표
-“컬러볼의 대명사 볼빅, 이젠 ‘빛’으로 승부한다”
-축광기술 이용한 비비드 루미나 출시
-골프볼이 저장된 빛을 서서히 방출
-글로벌 야간 골프 ‘게임 체인저’ 될 것
하늘에 빛이 두 개인 시간이 있다. 해와 달이 동시에 뜨는 시간대다. 영어로 트와일라이트(Twilght)라고 부른다. 쌍둥이(twins)처럼 둘(twi-)을 의미하는 접두사와 빛(light)이 합쳐진 단어다. 미국 골프장 상당수가 ‘트와일라이트’ 요금제를 운용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랜초파크(Rancho Park) 골프장의 주말 요금은 53달러인데 오후 4시부터 적용하는 트와일라이트 요금은 35달러, 오후 6시부터 적용하는 슈퍼 트와일라이트 요금은 24달러다. 그린피가 일반가격의 절반 수준이라 트와일라이트 시간대가 인기다.
하지만 야간 골프의 문제는 ‘빛’이다. 조명탑을 설치해 놓은 골프장이 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야간에는 볼을 찾기 쉽지 않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K–골프의 대표업체인 ‘볼빅(volvik)’이 신제품을 들고 나왔다. 축광(蓄光)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다. 볼이 스스로 빛을 내서 조명탑이 없는 야간 라운드에도 손쉽게 볼을 찾아 경기를 진행할 수 있다.
컬러볼로 ‘K–골프’를 알린 볼빅이 이번엔 ‘빛’으로 또 한 번 글로벌 골프 시장을 흔들 ‘게임 체인저’를 선보인 것이다. 볼빅의 홍승석 대표를 만나 축광기술을 이용한 신제품 ‘비비드 루미나’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홍 대표와 일문일답.
금융·제조업 경험을 갖춘 경영인
먼저 본인 소개를 해달라. 골프업계에 오기 전 금융과 제조 분야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5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장기신용은행의 은행원으로 사회 첫발을 내디뎠다. 국민은행이 장기신용은행을 합병할 때 직원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때 벤처캐피털로 갔다. 이후 솔브레인 저축은행에서 대표가 됐고, 솔브레인이 제닉이라는 화장품기업을 인수하면서 제닉에서 제조업 경험을 쌓았다.
볼빅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나. 후배와 같이 골프를 치는데 볼빅이 인수합병(M&A) 매물로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의 볼빅 대주주인 TS인베스트먼트와 볼빅 인수에 나서게 됐다. TS인베스트먼트가 인수 성공 수수료를 주는 대신 볼빅 대표를 맡아서 수수료를 가져가라고 하더라.(웃음) 2022년 3월 볼빅 대표에 취임했다.
취임 당시 볼빅의 상황은 어땠나. 어려웠다. 여러 곳에 주어야 할 돈을 주지 못해 미지급금이 많았다. 2020년 재무제표를 보면 외부감사에서 의견거절을 당해 2021년에는 신규 자본 차입이 어려웠다. 이에 긴급한 부채 정리 및 사업 운영을 위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새로운 자본을 유치하여야 했고, 결국 TS인베스트가 인수하게 됐다. 투자금을 이용하여 취임 이후 미지급을 정리하고 이후 거래처와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한 결과 시장의 신뢰를 회복했고 금융기관과의 거래도 정상화됐다.

굴러가지 않으면 멈춘다
금융권에서의 경영과 볼빅의 경영은 어떻게 다른가. 볼빅은 직접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B2C 영업이다. 미래 시장에 대한 전망이 필요하다. 리스크(위험)도 봐야 하지만 기회도 봐야 한다. 금융 쪽은 다소 보수적으로 판단한다. 볼빅에선 위험을 감수하고 성장과 기회에 집중해야 한다. 소비 흐름을 잘 읽고 사업계획에 반영해야 한다. 후행적으로 가면 영원한 팔로어밖에 될 수 없다. B2B 영업은 특정 업체를 상대로 하지만 B2C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해서 더 어렵다.
볼빅이라는 브랜드가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비전은 무엇인가. 도전과 혁신이 볼빅이 성장할 핵심 가치다. 골프 시장은 글로벌 기업이 점령하고 있다. 한국의 작은 기업인 볼빅이 생존하려면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야 한다. 또 우리만의 만족이 아닌 소비자 만족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창의적인 제품을 출시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직원들에도 이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굴러가지 않으면 멈추는 구조다. 고객이 찾는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해야 한다.
글로벌 골프 시장 게임 체인저
축광(蓄光)기술을 사용한 비비드 루미나 볼은 볼빅이 추구하는 ‘도전’과 ‘혁신’의 상징 같다. 비비드 루미나에 사용된 축광기술이란 무엇인가. 축광기술은 빛을 저장했다가 어두운 환경에서 서서히 빛을 방출하는 기술이다. 빛이 없는 곳에서도 한동안 빛을 낼 수 있다. 범죄현장 조사나 위조지폐 감별에도 사용되며 일상에서는 오징어나 한치 등을 잡기 위해 밤낚시에서 에기(Egi)라는 인조미끼에 사용된다.
골프볼에 축광기술이 어떻게 적용되나. 비비드 루미나는 일반 골프볼에 ‘축광’ 안료를 입혀 야간 골프에서 공을 쉽게 치고, 찾을 수 있게 했다. 자외선(UV) 축광기에 5분 정도 골프볼을 넣었다 빼면 된다. 볼이 자외선을 흡수했다가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을 내보내는 원리다.

일반 골프볼이 카멜레온처럼 ‘변신’
기존의 야광 골프볼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야간 골프를 치는 골퍼들 상당수가 인터넷에서 중국산 저가 LED볼 및 야광볼을 사서 이용했다. 기존 중국산 야광볼은 플라스틱볼에 가깝다. 저가형 볼이라 코어 탄성도 좋지 않고 타구감도 딱딱해서 퍼포먼스가 안 나오고 볼이 잘 깨지는 단점이 있었다. 비비드 루미나는 정규볼에 ‘축광’ 안료를 입힌 제품이다. 축광 안료를 비비드의 아름다운 컬러와 매칭하는 조색기술이 필요하다. 주간에는 예쁜 비비드 컬러, 야간에는 ‘빛’을 발하는 카멜레온 같은 볼이다. 컬러볼로 골프볼 시장에 혁신을 가져온 볼빅이 이제는 ‘빛’으로 새로운 시장을 만들려 한다. 한국의 야간 골프 시장뿐 아니라 미국 등 해외에서도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축광기는 따로 구매해야 하나.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서 축광기를 판매하는데 볼빅 골프용 축광기를 따로 제작해 보급할 예정이다.
외유내강’ 코어가 볼빅의 강점
볼빅 하면 컬러 골프볼이 떠오른다. 하지만 다른 브랜드도 다양한 컬러볼을 출시하고 있다. 볼빅만의 강점이라면. 볼빅은 최고의 컬러를 낼 수 있는 기술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염료도 가장 비싼 것을 쓴다. 염료 소싱 능력, 배합기술, 염료 코팅 기술력도 디테일에서 타 브랜드와 차이가 있다. 골프볼은 코어(core)와 이를 둘러싼 커버로 구성돼 있다. 골프채로 볼을 치면 힘을 내는 추동력은 코어에서 나온다. 볼빅은 듀얼코어라는 기술이 있다. 코어가 이중구조다. 안의 코어는 딱딱하고 겉을 감싸는 코어는 부드럽다. 외유내강형 코어다. 강한 힘이 이너 코어에 전달돼 볼이 멀리 나가는 동시에 외부 코어는 소프트해 부드러운 타구감을 선사한다.
최근 골프볼 시장의 추세는. 미국프로골프(PGA)에서는 2028년부터 골프볼의 비거리를 제한하는 규정이 도입된다. 골프장의 면적은 한정돼 있는데 선수들의 비거리는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다. 클럽에 대한 비거리 제한이 먼저 도입됐다. 골프공도 비거리를 내는 기술을 개발하면 안 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지금이 비거리 기술의 최고점에 와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비거리보다는 퍼포먼스 향상이나 다양한 디자인의 볼을 개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깔끔한 퍼팅라인을 제공, 정렬이 잘돼서 퍼팅할 때 편한 볼이 대표적이다. 360도 띠를 두르는 등 골프볼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볼도 실력에 맞게 사용해야
골프볼 시장에서 타이틀리스트 프로v1이 부동의 1위다. 볼빅 볼과 타이틀리스트 볼의 차이점은. 장단점이 있다. 타이틀리스트 프로v1은 선수용 볼이다. 선수는 전체 골퍼의 1% 미만이다. ‘스피드가 빠르거나 스핀을 걸 수 없으면 선수용 볼을 치는 게 맞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있다. 실력에 맞지 않는 볼을 치는 게 맞을까? 타이틀리스트 프로v1은 볼에 388개의 딤플이 있다.
반면 볼빅 볼은 딤플 수가 322개다. 볼빅은 딤플 수가 적은 대신 딤플 하나당 크기가 커서 고탄도 샷이 나온다. 타이틀리스트 볼은 저탄도 샷에 적합하다. 선수들은 스윙 스피드가 빠르기 때문에 저탄도 볼을 쳐도 적합한 비거리가 나온다. 반면 아마추어들은 볼이 가다 중간에 떨어질 수 있다. 볼빅은 아마추어 중에 잘 친다고 여겨지는 로싱글 골퍼들이나 보기 플레이어들을 위해 더 멀리 가고 더 적합한 볼을 개발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위탁판매 중단해 수익 개선
볼빅에 취임 후 추진한 변화나 혁신은. 위탁판매를 중단했다. 그전에는 위탁영업을 통해 볼빅 골프볼을 판매했다. 먼저 볼을 매장에 깔아 놓고 실제 판매가 돼야 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초기에 유통채널에 볼 제품을 배포하기에는 좋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제품이 훼손되고 판매가 안 된 제품이 악성 재고로 쌓이는 관리 문제가 있었다. 실질 매출과 외형적인 매출이 달랐던 거다.
위탁판매 중단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나. 지방의 작은 골프숍까지 거래처가 2000곳이 넘었다. 영업사원도 3~4개월에 한 번씩 바뀌니 재고 관리가 안 됐다. 종이 케이스는 장마철이 지나면 훼손됐다. 위탁판매를 중단하고 제품을 전량 회수했다. 돈을 주고 사는 거래처에만 제품을 공급했다. 판매채널이 줄었다. 아무도 안 사면 망하는 구조였다. 지금은 200~300개의 거래처에 집중하고 있다. 볼빅이라는 브랜드의 저력과 제품에 대한 우수성을 믿었다. 소비자가 볼빅을 찾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지금은 수익성이 많이 안정화됐다. 볼빅 제품은 사서 팔아야 한다는 인식의 변화가 생겼다.

온라인 매출이 70% 차지
이커머스가 유통채널의 대세다. 골프볼은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쉬울 것 같다. 볼빅도 온라인 매출이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한다. 온라인에선 주로 중저가 볼이 많이 팔린다. 예전에는 골프 판매채널이 지역별 단골 장사 중심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단골을 상대하는 지역 거점 오프라인 골프숍들이 최근 문을 많이 닫고 있다. 이커머스 영향도 크다. 볼빅은 기존 거래처와 충돌하지 않게 온라인 소비자 판매가를 지키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기획상품 위주로 히트 상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골프볼 외에 다른 시장으로 사업다각화를 고려하고 있지는 않나. 골프 시장은 크게 클럽, 볼과 용품, 어패럴(의류)로 나뉘는데 어패럴은 별도로 볼 수 있다. 볼빅은 클럽을 시도했다 빠져나왔고 볼과 용품은 다 하고 있다. 볼빅 매출의 80%가 골프볼에서 나온다. 캐디백 등 가방류, 모자, 골프 액세서리로 소비자들에 사랑받고 있다. 골프 외에 다른 사업은 생각 안 하고 있다. 배드민턴 사업, 마스크 사업을 정리했다.
볼빅을 어떤 기업으로 만들고 싶나. 재무적으로 또 조직문화가 좋은 기업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이다. 어떤 경영자가 와도 기업이 지속 가능하려면 기업으로서 안정적인 유지와 성장이 필요하다.
벤처기업처럼 이것저것 하다가 안 되면 쉽게 접는 게 아니고 직원들이 평생직장으로 안정되게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단기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하거나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보다는 원칙을 가지고 공동의 기준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업이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스포츠 마케팅의 핵심은 선수 마케팅이다. 지금보다 자금 사정이 좋아지면 유망 골프선수를 발굴해 볼빅 마케팅을 하고 싶다.
패션은 파리, 골프 패션의 메카는 서울
골프 시장에 대해 진단해달라. 시장에 풀린 재고들이 소화되려면 내년 상반기까지는 어려울 것 같다. 현재 한국의 골프 시장은 많이 안 좋고 어렵다. 코로나 기간 한국 골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가 골프인구가 빠졌다. 단순 경기 사이클의 문제만이 아니고 인구구조의 변화도 능동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고령화되는 추세다.
중국 골프 시장은 어떤가. 중국은 이제 여명기다. 5~10년 후 중국의 부상으로 새로운 골프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한다. 중국의 골프인구는 2000만~3000만 명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550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골프인구의 4~6배다. 무엇보다 중국의 유소년 골프 시장이 커지고 있다. 골프 특기생으로 대학 진학을 위한 수요가 있다. 이들은 다른 소비재처럼 골프용품도 한국 제품을 선호한다. K–골프의 대명사인 볼빅에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시장을 보고 그때까지는 기업이 살아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유지·발전시켜야 한다.
중국 골프 시장은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중국 골프 시장은 하이엔드 마켓이 먼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무비자 방문으로 한중 교류가 활발해질 것이다. 한국에서 열리는 매경·KPGA 골프엑스포에서 골프 패션에 대한 기획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한국적인 요소를 고려한 기획이 필요하다. 패션은 파리지만 골프 패션의 메카는 서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