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파리, 골프 패션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K-컬처의 성지’가 됐습니다. 지난 7월 관람객 수가 74만2000여 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36만1000여 명)의 두 배를 넘어섰습니다. 박물관 공식 굿즈(상품) 매장의 ‘뮤지엄 굿즈’도 연일 매진되고 있습니다.<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케데헌>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닮았다는 이유로 호랑이, 까치 배지는 4만 개가 넘게 팔렸습니다.
<케데헌>은 K-팝을 주제로 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케데헌>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골든(Golden)’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에 올랐습니다. ‘골든’은 영국 오피셜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 미국과 영국을 동시에 석권하며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김밥을 자르지 않고 한 줄째 먹거나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기 전에 냅킨을 식탁에 까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면 <케데헌>의 인기를 실감하게 됩니다.
또 <케데헌> 얘기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사업을 하는 경영자라면 무조건 <케데헌>을 한 번쯤은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케데헌>은 K-팝 아이돌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한 어쩌면 단순한, 그래서 또 신선한 시도입니다. 아이돌 한 명을 키우는 데는 어마어마한 노력과 자금이 필요합니다.
현실 세계의 아이돌은 데뷔해서 성공까지 불확실성도 큽니다. 실제 <케데헌> OST ‘골든’의 작곡가이자 노래를 부른 이재는 SM엔터테인먼트 연습생 출신으로 10년 동안 아이돌 데뷔를 꿈꿨다고 합니다. <케데헌>은 K-팝 아이돌 산업의 고정관념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골프업계에도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K-골프기업 ‘볼빅’이 그 주인공입니다. 골프볼은 흰색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무너뜨린 회사입니다. 이번에 볼빅이 새롭게 승부하는 볼의 특징은 ‘색’이 아니고 ‘빛’입니다. 빛을 저장했다가 서서히 방출하는 축광기술을 적용한 제품으로, 야간 골프에 특화된 상품 ‘비비드 루미나’입니다.
칼럼을 작성하는 현재 비비드 루미나는 아직 시장에 정식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는 다소 진부한 강박관념 때문에 시제품을 받아 집에서 사용해봤습니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에 외부 불빛을 차단하기 위해 창문 커튼을 치고 집 안의 모든 불을 소등했습니다. 자외선(UV) 축광기에 비비드 루미나를 넣고 몇 분 지난 후 볼을 꺼내봤습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비비드 루미나는 반딧불처럼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놀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이 정도면 글로벌 골프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볼빅의 도전과 혁신을 이끄는 홍승석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여러가지 인사이트를 공유했습니다. 하나는 중국 골프 시장이었습니다. 홍 대표는 “중국 골프 시장은 여명기”라며 “중국 골프인구가 2000만~3000만 명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는 한국 골프인구의 4~6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홍 대표는 중국 골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국적인 요소’를 꼽았습니다. 그는 “다른 소비재처럼 골프용품도 한국 제품을 선호한다. K-골프의 대명사인 볼빅에 큰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패션은 파리지만 골프 패션의 메카는 서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 국내 골프 패션(의류) 시장 규모는 6조 원으로 골프 패션 시장만 놓고 보면 한국이 미국과 일본을 합친 시장보다도 크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K-골프 패션도 내수용이 아닌 K-팝, K푸드, K-뷰티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K-컬처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골프산업을 ‘K-라이프 스타일’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프산업에서 K-컬처를 적극 활용하려는 시도는 낯설지 않습니다. 지난 5월 한국에서 열린 리브(LIV) 골프에서는 마지막 라운드를 마치고 지드래곤 콘서트 등을 열며 골프장을 시끌벅적한 축제로 만들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K-컬처의 성지가 된 것처럼 한국 골프장도 K-컬처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