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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 펼쳐지는 필드의 마법

  • 김훈환
  • 입력 : 2025.09.11 15:36

해가 저물고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질 즈음, 골프장은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한낮의 열기와 소음이 사라지고, 은은한 조명이 페어웨이를 감싸안을 때, 필드는 마치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변신한다. 이 특별한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야간 골프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선 감성의 향연이다.

로제비앙GC 야간 코스 전경
로제비앙GC 야간 코스 전경

한국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야간 골프가 활발하게 운영되는 나라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제한적으로 야간 라운드를 운영하기도 하지만, 한국처럼 전국 곳곳의 골프장에서 체계적인 조명 설비를 갖추고 9홀 또는 18홀 전체를 밤 늦도록 운영하는 사례는 드물다.

현재 전국 530여 개 골프장 가운데 238개가 야간 라운드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4~5년 사이에는 80여 개가 추가되면서 증가세에 있다. 또한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퇴근 후에도 도심 접근성이 높은 골프장을 찾아 야간 라운드를 즐기는 여가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특히 여름철 무더위를 피하고, 더 쾌적한 공기 속에서 플레이할 수 있다는 점은 많은 골퍼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야간 골프의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야외 활동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고, 골프는 그 중심에 섰다. MZ세대의 진입과 함께 ‘해가 진 후 시작하는 골프’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새로운 일상으로 정착되고 있다.

골프와 낭만이 공존하는 밤, 별빛과 함께  스윙이 가능한 블루원 용인의 야간 라운드.
골프와 낭만이 공존하는 밤, 별빛과 함께 스윙이 가능한 블루원 용인의 야간 라운드.

골프와 콘서트, 불꽃놀이 등 축제처럼 즐기는 골프

최근에는 라운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부 골프장은 주말 저녁을 활용해 야외 콘서트와 불꽃놀이, 푸드트럭 축제를 연계해 일종의 ‘야간 골프 페스티벌’로 진화하고 있다. 대중가수의 라이브 무대가 펼쳐지고, 잔디 위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수제 맥주를 마시며 가족·연인과 별빛을 감상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골프장은 밤이 되면 단지 운동을 하는 장소를 넘어 문화와 낭만이 공존하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어느 직장인은 동료들과 퇴근 후 조용한 야간 9홀 라운드를 마친 뒤, 그린 옆에서 열린 재즈 공연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낮에는 그저 골프장이었지만, 밤에는 음악과 대화가 있는 무대가 되었어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야간 골프는 일과 삶 사이에 존재하던 단단한 벽을 허물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자연스레 좁혀주는 특별한 접점이 된다.

친구들과의 라운드는 또 다른 매력을 전한다. 한여름 밤, 대학 동기 셋이 모여 야간 골프 정기전을 펼치기도 한다. 누군가는 초보이고, 누군가는 싱글 골퍼지만, 그날만큼은 그저 웃고 떠들며 걷는 동반자일 뿐이다. 공을 못 찾아도 괜찮고, 파를 놓쳐도 즐겁다. 조명 아래서 셀카를 찍고, 티잉 그라운드에서 장난처럼 춤을 추는 그들의 모습은 진지한 낮의 골프보다 훨씬 자유롭다.

연인과 함께하는 야간 라운드는 또 하나의 로맨틱 데이트가 된다. 달빛이 비추는 페어웨이를 나란히 걸으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낸다. 클럽보다 손을 먼저 잡고 싶은 마음, 공보다는 그 사람의 눈빛이 더 신경 쓰이는 시간. 조명이 연인의 옆모습을 부드럽게 감싸고, 벙커샷에 실패한 순간마저 웃음으로 바뀐다. 밤의 골프장은 사랑을 고백하기에도, 오래된 사랑을 다시 확인하기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무대다.

가족과 함께하는 야간 골프는 세대와 시간을 연결하는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낸다. 퇴직 후 골프에 빠진 아버지, 이제 막 골프를 배우는 손자, 카트를 타고 함께 이동하는 어머니까지….

해가 진 후 조용해진 필드는 오히려 가족 간의 대화가 더 깊이 스며들게 만든다. 한 홀 한 홀이 인생의 페이지처럼 쌓이고, 스코어카드는 그날의 기억이 되어 오래도록 간직된다. 손자의 첫 파, 딸의 칩인 버디, 아버지의 조용한 칭찬 한마디는 사진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제 골프문화가 된 야간 라운드

야간 골프가 주는 매력은 그 어떤 대회나 성적, 기술보다 사람과 시간, 관계에 있다. 시각이 줄어든 대신 감정은 풍부해지고, 소리는 조용해진 대신 마음의 소통은 활발해진다. 어두운 필드에 반짝이는 조명, 벙커 위에 떨어지는 불꽃놀이, 그리고 살랑이는 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은 밤의 골프장을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이제 골프는 낮의 스포츠가 아니라, 밤의 추억이자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야간 라운드는 한때 정부로부터 영업 중지 명령으로 중단된 적도 있다. 예비 전력 위기가 거의 일상화된 2010년 초반, 한 고위층이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도중 비행기 안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야간 영업을 하는 골프장을 보고 야간 영업을 중지시킨 것이다. 골프장 업계와 많은 갈등을 빚었던 정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빠르게 사라지고, 이제는 야간 골프가 없어서는 안 될 문화로 자리 잡았다.

야간 골프는 무엇보다 골퍼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준다. 주중 70~80% 수준의 그린피, 셀프 라운드, 카트 운전과 클럽만 전달하는 저렴한 마샬 캐디, 로봇 캐디 운영 등으로 합리적인 비용으로 라운드가 가능하다.

어느 밤,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라운드를 돌고 싶은가? 달빛이 드리운 페어웨이를 함께 걷고 싶은 그 사람을 떠올리는 순간, 야간 골프는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writer 김훈환(한국골프장경영협회 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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