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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GOLF 편집장 칼럼] 소비자도 안 만나고 골프 용품을 팔겠다니

  • 김기정 기자
  • 입력 : 2025.09.29 08:48
  • 수정 : 2025.09.29 09:03
사진설명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교수가 될 줄 알았습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런 꿈을 꾸던 때가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직장이 대학보다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25살에 미국 남가주대(USC)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당시로서는 생소한 석박사 통합과정이라 이론적으로 4년 안에 박사를 마치고 20대에도 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도교수도 아낌없이 지원해 주셨어요. 그 비싼 학비도 모두 내주고, 심지어 스타이펜드(Stipend)라고 월 2000달러의 생활비도 주셨어요. 대신 지도교수의 연구조교로 일하면서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통계’에 빠지면서 인생이 삐딱선을 타기 시작했어요. 연구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 보니 설계, 측정, 분석 등 다양한 통계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통계는 저한테는 무척 매력적인 학문으로 다가왔습니다. 회귀분석보다 난이도가 높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힙’(hip)했던 구조방정식을 설계해서 분석할 수 있는 사람이, 과는 물론 전체 학교에서는 많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우쭐한 기분도 들고,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싶다는 열정도 강했습니다.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그런 연구는 나중에 교수가 돼서 하고, 우선 박사학위부터 따라고 조언했을 텐데 그때는 그런 걸 잘 몰랐습니다.

아쉽게도 전통적인 ‘통계’ 방식은 역시 전통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통계의 한계라기보다는 통계를 이용하는 당시 학풍의 한계일 수도 있었는데 통계를 주로 확증적 접근(Confirmatory approach)에 사용했습니다. 가설을 먼저 세우고 데이터를 수집해 통계를 돌려 이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통계가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하면 소위 페이퍼를 쓸 수 있었고 그걸로 학위 논문도 쓸 수 있었죠. 하지만 애써 수집해서 분석한 데이터가 가설과 안 맞으면 연구가 길어집니다. 미국의 명문 시카고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는 데 10년이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요즘은 인공지능(AI)이 나오면서 확증적 접근의 반대 방법인 탐색적 접근(Exploratory approach)도 많이 합니다.

학업의 꿈을 접고 언론사에 취직해 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경영인들을 만났습니다. ‘운칠기삼’이 대세라는 한국 사회에서 ‘숫자’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최고경영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특히나 자수성가해서 사업을 일군 분들은 통계에 의존하기보다는 본인의 ‘감’ 또는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CEO들이 절대 놓치지 않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물건을 팔더라도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수요를 확인하는 작업만큼은 철저했습니다. 그들은 물건을 사는 수요자의 표정을 읽었고, 대화를 통해 기존 서비스나 품질의 아쉬움을 찾아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 숫자만 보는 게 아니고 현장을 돌며 직접 소비자를 만났습니다.

반면 국내 골프용품업계는 이상하리만치 소비자와의 대화에 인색합니다. 소비자들이 무시당한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이는 국내 골프용품의 유통구조 때문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골프용품사가 해외 제품을 수입해 한국 소비자에게 파는 ‘수입업체’입니다.

브랜드 마케팅을 해외 본사에 의존합니다. 용품사들은 소비자를 직접 만날 기회도 제한적입니다. 유통과 판매를 메이저월드(딜팡), 골프존, AK골프,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롯데백화점 등 유통업체들이 합니다. 용품사와 소비자 중간에 유통사들이 끼어 있으니 용품사들은 누가 어떤 물건을 사는지, 왜 샀는지 알기 어렵습니다. 유통업체나 시장조사업체로부터 판매 데이터를 받아보지만 소비자 데이터는 파악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다행히 골프용품업계가 소비자를 직접 만나 소통할 기회가 열립니다. 내년 2월 20일(금)부터 22일(일)까지 강남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KPGA 매일경제 ‘골프엑스포’입니다. 수만 명의 골프 소비자를 한자리에서 만나 소통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골프엑스포입니다. 올해 열렸던 골프엑스포에선 약 3만 명의 진성골퍼들이 운집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내년 코엑스에서 열리는 골프엑스포도 소비자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표정을 읽는 기회로 적극 활용하기 바랍니다.

김기정<매경GOLF> 편집장
김기정<매경GOLF>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