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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준의 GOLF & CULTURE] 그녀는 왜 히코리 골프채를 들었나

  • 유희경 기자
  • 입력 : 2025.11.04 15:42
  • 수정 : 2025.11.04 16:23

매년 10월 첫째 주,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는 월드히코리오픈 챔피언십 대회가 열린다. 히코리 골프는 스틸샤프트가 공인되기 이전에 사용된 히코리 골프채를 사용하기 때문에 거리와 스코어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더 멀리, 더 빠르게’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히코리 골프를 즐기는 골퍼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또 히코리 골프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단체전 한국·스코틀랜드팀의 티샷 모습.
단체전 한국·스코틀랜드팀의 티샷 모습.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2025 라이더 컵 종료 후, 유럽팀의 로리 매킬로이는 A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뜨거웠던 승부에 대한 이야기에 앞서 미국 팬들의 과열된 응원문화를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골프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인생 교훈을 줍니다. 골프는 예절을 가르쳐주고, 규칙에 따라 플레이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이번 주에 우리가 목격한 광경은 골프가 지켜야 할 더 높은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골프는 그보다 더 높은 품격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국 팀을 응원하는 대신 상대팀에 욕설을 퍼부은 일부 미국인 갤러리들을 향한 로리 매킬로이의 따가운 일침은 승패를 넘어, ‘골프가 우리에게 전달할 수 있는 게임 이상의 그 무언가’를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골프를 ‘잘 치는 법’에 집중하지만 ‘골프 본연의 마음가짐’을 배울 기회가 드물다. 그럼 매킬로이가 얘기했던 골프 본연의 마음가짐은 무엇인가?

월드히코리오픈 배너.
월드히코리오픈 배너.
(위) 월드히코리오픈이 열린 스코틀랜드 프레이저버러 골프클럽. (아래) 대회 참가자들의 히코리 골프채.
(위) 월드히코리오픈이 열린 스코틀랜드 프레이저버러 골프클럽. (아래) 대회 참가자들의 히코리 골프채.

거리와 스코어를 손해 보면서 히코리 골프를 치는 이유

앞으로 12회에 걸쳐 독자들과 함께할 ‘골프와 문화’는 그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기 위한 시도다. ‘기술의 시대, 속도의 시대’ 속에서도 골프가 여전히 ‘배움의 스포츠, 건강한 스포츠’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와 앞으로 골프가 변화해갈 필연적인 모습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려 한다.

그 첫 번째로, 내가 최근 참가했던 스코틀랜드에서 열린 골프대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이 대회는 예사로운 골프대회가 아니다. 매년 10월 첫째 주, 골프의 본고장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월드히코리오픈 챔피언십 대회가 바로 그것이다. 20년 전통의 이 대회에서는 전 세계에서 모인 아마추어와 프로 히코리 골퍼들이 나흘간 경합한다.

히코리 골프채는 1929년 R&A가 스틸샤프트를 공인하기 이전에 세계적으로 사용된 장비다. ‘히코리’는 북미산 참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단단하고 탄성이 좋아 19세기부터 골프채의 샤프트로 애용되었다.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이런 채를 수집하던 사람들이 1980년대부터 단체를 결성해 실제로 플레이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 유럽, 아시아와 대양주에서 약 2500명 정도가 히코리 골프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코리 골프채는 감나무를 깎아 만든 드라이버 헤드를 쓰고, 아이언은 그루브가 없는 단조 헤드이기 때문에 현대 클럽이 주는 관용성이 전혀 없다. 드라이버의 경우 40~50m 이상의 거리를 손해 보게 된다. 그래서 일반 골프채로 기록하는 평균 스코어보다 7~10타 정도 더 높은 점수가 나오는 게 예사다.

드라이버를 조금이라도 더 보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에서 엄청난 거리와 스코어를 손해 보면서까지 히코리 골프를 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 멀리, 더 빠르게’를 지향하는 현대사회에서 흐름을 역행하는 히코리 골퍼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위)이탈리아에서 온 에비타 클로틸데 트리뷰아니. (아래) 필자와 함께 라운드 한 에비타 그리고 한국의 신민경 씨.
(위)이탈리아에서 온 에비타 클로틸데 트리뷰아니. (아래) 필자와 함께 라운드 한 에비타 그리고 한국의 신민경 씨.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과정

대회를 통해 나는 처음 출전했던 202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 각국에서 온 히코리 골퍼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링크스 코스를 누볐다. 그 이야기를 통해 위에 던진 두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보려 한다.

개인전 첫날, 클럽하우스에서 주최 측 대표가 나를 부르더니 곤혹스러운 표정과 함께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이탈리아에서 온 여자가 있는데, 골프 실력도 왕초보 수준이라 어제 단체전 경기에서 동반자들이 너무 힘들어 했어. 한 홀에서 8타 이상을 치게 되면 그대로 공을 집어 들고 다음 홀로 이동하라고 미리 얘기했으니, 그렇게 진행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에비타 클로틸데 트리뷰아니, 그녀는 대체 어떤 이유로 혈혈단신 스코틀랜드 하이랜드의 히코리 골프대회에 온 걸까? 나는 그녀와 한국에서 출전한 여성 골퍼 신민경 씨와 함께 셋이서 경기장으로 나갔다.

무릎 높이의 황금색 페스큐 잔디가 넘실대는 프레이저버러(Fraserburgh) 골프클럽의 거대한 모래사구를 배경으로 1번 홀 티잉그라운드 위에 섰다. 첫 티샷을 20m 정도 보낸 에비타는 당당하게 앞으로 걸어나가서는 같은 스윙을 반복했다. 나는 되도록 그녀의 사정권 밖에 머물며 경기를 이어갔다. 말이라도 통하면 좀더 편했을 텐데…. 하지만 골프이기 때문에 이런 어색한 상황도 묵묵히 견뎌내며 함께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신민경 씨의 캐디로 참가한 스코틀랜드인 스튜어트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며, 그녀의 공을 찾아주기도 하고 샷 방향을 양팔로 알려주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함께 반나절을 보내게 된 인연으로, 그렇게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해 보였다. 이탈리아 말을 쉴 새 없이 해가며 스튜어트가 던지는 영어로 된 뻔한 조언을 못 알아듣고 고집을 부리는 모습에 기가 막힌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용감했다. 66세의 나이에 집을 떠나 이 먼 곳까지 히코리 골프채 대여섯 개를 들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 어울려 말도 안 되는 골프 실력으로 대회에 참가한 그녀의 머릿속엔 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그러던 중 4번 홀에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오르막 파4홀, 맞바람이 거센 페어웨이에서 그녀는 수도 없이 반복했던 자치기와 같은 스윙을 했다. 녹슨 히코리 아이언 헤드가 공에 맞는 순간. “떴다. 드디어 공이 떴다!” 그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았는지, 그녀는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며 또다시 앞으로 걸어나갔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다가가 내가 아는 이탈리아 말을 건넸다. “에비타, 벨리시마(아름다워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라치에(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4시간 넘게 그녀의 고군분투를 관찰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이 대회에 홀로 참가한 건 어떤 미션이 있어서가 아닐까? 아무도 모르는 가장 낯선 공간에서 처음 잡아보는 히코리 골프채를 들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려는 과정은 자신만이 아는 어떤 역경을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프레이저버러 골프클럽에서 라운드하는 히코리 골퍼들.
프레이저버러 골프클럽에서 라운드하는 히코리 골퍼들.

동반자를 배려하고 자신의 미스샷에도 껄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사람

골프는 동반자와 함께, 하지만 동시에 필드 위에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상반된 매력이 있다. 다른 구기 종목은 함께 몸을 부딪치며 싸우거나, 맞서서 공을 주고받는 성격 때문에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골프는 함께 할 수도, 혼자 할 수도 있는 유일한 공놀이가 아닌가? 남녀노소, 실력에 관계없이 자연 속에서 함께 반나절을 즐길 수 있는 스포츠가 골프 외에 또 있나?

하지만 골프를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중요한 덕목 중 다른 스포츠에는 없는 요소가 있다. 이는 동반자들의 배려와 인내심이다. 그날 에비타의 지칠 줄 모르는 인내심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끝낸 투지도 대단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나를 포함한 그녀의 동반자가 불평 없이 그녀 곁을 지키며 함께 플레이해줬기때문이다.

히코리 골프는 일반 클럽에 비해 관용성의 부족과 거리의손실로 필연적으로 미스샷이 더 많이 나온다. 나는 유럽과 미국, 아시아에서 온 히코리 골퍼들에게 물었다. “대체 어떤 사람들이 히코리 골프 협회에 모이는가?”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의 미스샷에도 껄껄거리며 웃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했던 그들도 난생처음 히코리 골프채를 잡아본 에비타와 함께하기를 두려워했다. 아마도 1년에 단 한 번 열리는 세계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었을 수도 있고, 귀중한 시간과 돈을 들여 멀리까지 와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건 에비타를 동반한 나와 신민경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우리는 에비타를 버리지 않았고, 그녀와 함께 보조를 맞춰가며 끝까지 결승선을 넘었다.

누구에게나 초보였던 순간은 있다. 그때 나와 함께 동반했던 골퍼들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에비타는 한국에서 온 히코리 골퍼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그녀를 응원하고 배려하며 함께해줬는지 알고 있을까?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 더 발전된 히코리 골퍼가 되어 타인을 배려하는 골퍼가 될 수 있을까? 아마 그녀가 히코리 골프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런 골퍼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오상준
오상준 한국인 최초로 영국에서 골프코스 설계학 석사를 취득한 코스설계자이자 골프 인문학자다. 미국 <골프다이제스트>, <골프매거진> 세계 100대 코스 선정위원을 역임했으며, <Golfweek> 코스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현재 아시아골프인문학연구소 소장과 한국히코리골프협회(www.hickorygolfing.com) 회장으로 골프문화와 코스 미학을 탐구하는 강연과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